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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5 01:47
기독교와 한국의 무교(巫敎)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0,634  
무교를 단지 원시적인 종교로 단정해 버릴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무가(巫歌)는 오랜 역사 속에서 타종교와 통속문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축적된 무당의 노래이며 결코 그 원래의 것을 보존하고자 했던 노력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교가 주술신앙(呪術信仰)일 뿐 교리도 윤리도 없기 때문이다. 무교는 단지 타종교와 혼합하여 신령한 요소들을 그대로  흡수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 뿐 발전된 교리나 윤리를 갖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무교는 타종교와 대중문학을 흡수해서 발전되었으며, 또 그 반대로 타종교와 전통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현대적 감각을 가진 역사적으로 축적된 종교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교의 발전은 불교와 기독교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전통사상과 한국문화를 지배해온 종교는 무교였으며 지금도 그렇다. 이 때문에 무교의 발전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전통 한국문학의 장르에 대한 훌륭한 지식이 필요하며, 무가의 역사와 전통문학과의 관계를 추적해야 한다.


무교는 중국의 영향을 받기 이전 시대 특히 제정일치 시대에는 대중 종교로서의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 유사에 무당 비슷한 인물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기록에서 거듭 등장하고 있고, 유동식은 1450여년전 신라시대의 화랑도에서 이미 무교의 큰 영향을 발견하고 있다. 원래는 무교가 이들 삼국의 주요한 세계관 이였다. 그러나 무교는 불교, 유교, 도교와 같은 중국문화의 소개로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때부터 무교는 점차 하류계층의 종교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계층에 관계없이 여인들의 종교가 되었다. 이는 불교가 성행하던 고려 시대만 하더라도, 단군신화나 팔관회(고려 때 해마다 대궐 안에서 동짓달이면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큰 규모의 의식)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무교가 민중생활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후 이조선의 유교정책의 영향으로 무교는 하류층의 민간신앙으로 전락되었다. 이와 같이 무교는 민간신앙이 되어 한국의 종교적 바탕 또는 정신적 바탕이 되어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는 근저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 유교, 기독교와 같은 대 종교들도 이 무교신앙의 바탕 위에 세워지게 되었다. 유동식은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이 쉽게 수용되는 이유와 기독교신앙이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이유 그리고 교역자들이 무당적인 중재역할을 하게 된 이유를 여기서 찾고 있다[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대한기독교서회, 15-39쪽].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왈러벤(B.C.A. Walraven)은 한국 무교를 원시 종교로 보지 아니하고 오랜 역사 속에서 복잡하게 얽히고 혼합 발전된 종교라고 말한다. 그는 무교의 역사적 발전을 무가의 변천을 통해서 살필 수 있다고 믿는다. 무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큰 변화를 겪어왔고, 그 시대 시대의 영향들을 흡수하여 왔다는 점이 자료들을 통해서 입증된다는 것이다. 무가가 역사 속에서 수정되지 않은 채 수세기에 걸쳐서 변함없이 전래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금세기에 수집된 무가는 역사적 변화를 더욱 뚜렷하게 입증할 뿐이라고 말한다.


왈러벤은 현금의 무가의 문학 형식이 이조선 후기에 등장한 대중문학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18세기에 유행하기 시작한 통속문학의 영향은 무가의 형태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무가의 제문(祭文), 제문구조, 주제들이 이들 문학의 구조와 유사할 뿐 아니라, 무가의 형식이 새로운 통속문학의 등장과 그 영향 아래서 크게 변화를 겪어왔음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가에서 일부 설화 주제들과 또 이들 주제들의 일부 연관성은 상당히 오랜 고대의 것일지 모르나, 무가와 설화문학의 다양한 양식사이의 관계는 무가의 형태가 시대와 함께 변천되어 왔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고 확신한다. 심지어 현대 무가조차도 외부 영향에 개방적이며, 본래 양식을 보존하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무가는 역사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무가가 무당의 직접적인 신앙의 표현일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왈러벤은 무가의 역사가 무당의 역사와 한국 사회와의 관련성을 암시한다고 믿는다. 무당이 18세기와 그 이후의 통속문화의 요소들을 상당히 흡수하였다는 사실이 단순하고 무식한 농부들과 어부들이 아닌 사회의 중간계층인 하급 공무원들과 관리들의 문화가 무당에까지 침투될 수 있는 채널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대개는 광대가 여기서 중간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광대는 사회의 상류계층에 무교적 요소들을 상향전달함으로서 판소리 창작에 공헌하였을 뿐 아니라, 그 요소들을 하향전달하였다. 광대로부터 상류계급의 문화적 요소들을 빌린 무당은 차례로 일반 대중사이에 이 문화를 전파하는 데 공헌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무교는 종교 혼합주의의 관점에서 이해될 것이 아니라, 한국인 심성에 흐르는 또 오랜 역사 속에서 한국문화를 지배해온 무교신앙이란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타 종교나 통속 문학에서 신령에 관한 부분을 받아 들여 무가를 발전시켰거나 그 시대적 상황을 표출하였다 하더라도 교리도 윤리도 없는 무교는 여전히 주술신앙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무교의 변증법적 발전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무교가 타 종교나 문학에서 받은 영향보다는 타 종교에 끼친 영향 특히 기독교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B.C.A. Walraven, Muga: The Songs of Korean Sham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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