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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09 04:51
상록수 최용신의 신앙자취
 글쓴이 : 함동진
조회 : 6,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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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최용신 (2010년 7월 10일)



  

      

           대한민족 말살의 암울한 일제감점기에 한줄기 빛이 된 상록수                              

          몸으로 정신으로 혼신 다 바쳐 대한독립 애국자 새싹가꾸더니  

          과로 영양실조 장중첩증으로 26세의 청춘을 조국에 바치었네.    

      

                                                                  (<상록수 최용신>   함동진 2010. 07. 10)






(1) 012.  (2010년 7월 10일 )   최용신기념관 현관 옆 벽면에 부착된 독립운동가. 농촌계몽운동의 선구자인 최용신의 흉상동판.   사진/함동진







(2) 010.     (2010년 7월 10일 )  최용신기념관(後面) . 기념관전면은 현관 들어가기가 1층과 같이 되어 있고 현판이 걸려있다.    사진/함동진





[상록수의 유래]

상록수(常綠樹)는 심훈의 소설<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인물인 최용신(崔容信) 선생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최용신(1909-19335) 선생은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 후 농촌운동에 뜻을 두고  1931년

10월 수원군 반월면 천곡리 샘골마을(現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천곡강습소를 세우고 야학을 하며

농촌사람들의 문맹을 퇴치하는데 앞장을 섰다.

  당시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최용신은 이에 굴하지 않는 의지로  민족의식을 깨우치는

교육에 힘썼으며, 이러한 선생의 농촌계몽운동에 샘골예배당(現 샘골교회)은 훌륭한

거점이 되어주었다.

최용신은  항일운동과 농촌계몽운동에 청춘을 바쳐 헌신하였으며

불과 26세의 나이로 불꽃 같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최용신의 묘는 안산시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되었으며 당시의 강습소가 있었던 현 본오동 879-4 번지에

선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7년 10월에 <최용신기념관>이 건립되어  1995년 8월에 추서된

건국훈장 애족장을 비롯한 최용신의 얼이 서린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3) 022.  (2010년 7월 10일)   최용신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을 조각한 조형물.   사진/함동진






(4) 058.  (2010년 7월 10일)  현판이 달려 있는 <최용신기념관>(2층).  

사진우측에 보이는 향나무는 최용신 선생 생존시부터 있었던 것이다.   사진/함동진





(5) 062.    (2010년 7월 10일)   <샘골강습소>의 주춧돌(향나무밑을 둘러있는 주춧돌)과 향나무.   사진/함동진

1932년 최용신이 샘골강습소를 세울때에 사용했던 주춧돌인데 당시에는 20개였는데 현재는 15개만이 남아 있다.

   향나무는 1934년에 식재된 것인데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자라고 있다.

향나무 옆의 붉은벽돌 건물은

최용신이 몸담고 교육과 독립운동을 펼친 상록수 터전이었넌 샘골교회이다

사진에 보이는 철망펜스에 정문 출입문이 있다.



[샘골교회]: 교회정문에 세워진 비문에서  

"1907년 7월 3일 한반도의 뜨거운 성령의 역사로 세워진  

<상록수>샘골(泉谷)교회이다.

지난 100년간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선생님(상록수 소설의 여주인공)이

젊음을 불태우며 사역하셨던 유서깊은 교회입니다.  

  -당임목사 김수철-

-(상록수)샘골교회 교우일동-"  





(6) 073.  (2010년 7월 10일 ) 최용신기년관 뜰에 세원진 최용신 유훈비(左)와  심훈(沈熏)의 문학기념비(右). 사진/함동진





(7) 055.  (2010년 7월 10일)    [최용신 선생이 남기신 유훈(遺訓)] 碑.   사진/함동진



[최용신 선생이 남기신 유훈(遺訓)] 내용



겨레의 후손들아

위대한 사람이 되는데 네가지 요소기 있나니

첫째는 가난의 훈련이요

둘째는 어진 어머니의 교육이요

셋째는 청소년 시절에 받은 큰 감동이요

넷째는 위인의 전기를 많이 읽고 분발함이라





(8) 060.    (2010년 7월 10일 )  심훈(沈熏)의 <상록수>문학기념비   사진/함동진



심훈(沈熏 1901-1936)은 우리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쓴 작가이자

<그날이 오면> 이라는 항일 저항시로 유명한  시인이다.

<1996년 문학의 해>에는 한국문학발전에 공헌한 심훈 소설가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상록수>의 작품 무대였던  샘골강습소가 있던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둔 것이다.

비의 제작 모형이 특이하다. 원고지를 모아 세워 펼쳐진 모형이다.



비문에는 소설가 심훈의 사진부조와 함께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아침 저녁 저의 손으로 치는 그 종소리는

저의 가슴뿐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어두운 귀와 혼몽이 든

잠을 깨워주고  이 청석골의 산천초목까지 울리겠지요......

-<상록수> 중에서 "





(9) 063.  (2010년 7월 10일)  주황색으로 보이는 종탑은 (상록수)샘골감리교회이다.  

이는 그 옛날 천곡(泉谷=샘골)교회의 현재의 명칭이다.   사진/함동진



교회 옆에는 별도의 조그마한 오석에 새긴 기념비가 있다.

<최용신양을 기리는 돌>

" 日帝하의 처절하던 民族受難期에

나라의  光復 위해 모든 것 버리고

農村啓蒙의 先驅로 不死鳥 되어

이 고장 이 마을에 生命을 바쳤네

永遠히 歷史에 푸르른 얼이여

꽃다운 處女 싱그러운 常綠樹여

민중의 가슴속에  뿌리 깊이 잡아

지금도 쉬지 않고 사랑으로 자라네 "



<마을 주민들의 추모비> (필자의 가칭)

"자랑하여 긍지를 가지고 신앙으로 하나되어 살아오든 이곳

그이름 생골 상록수 마을 그정신 이겨레에게 심어준

이마을 신도시 개발로 인해 이산의 아픔을 이 글로 대신 하노라

일제압박 어둠의 골짜기를  기독교 신앙의 횃불이 되어

한 알의 씨앗이 되어 이땅에 뭍인 용신 땀과

눈물로 기도하며 수고하진 주의 종들에게

이글로 감사를 대신하노라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어도 그정신은 메마른

이겨레 가슴속에  생수의 분수대가 되어

길이 부흥 발전되기를 기원하노라

언제: 1985년 11월

어디다: 천곡교회정문옆

누가: 샘골부락민

글: 홍석필"





(085) 164. (2010년 7월 10일)  최용신 선생의 묘소(좌측)와 김학준 장로(교수)의 묘소(우측)    사진/함동진

최용신 선생의 묘소 옆에 김학준 장로(1912-1974년)의 묘소가 자리하게 됨은 그의 유언에 따름이다.

유언:  "내가 죽거든 최용신 무덤 옆에 묻어다오."

맨 좌측의 검은 오석의 큰 碑는 최용신 선생을 추모하는 <추모비>이다.



[추모비] 최용신 선생 묘소 옆

"황혼이 저무는 길목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의 글귀를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잠자는자 잠을 깨고 눈먼자 눈을 떠라

살길을 닦아보세

조선에 부흥은 농민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

-농촌계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최용신 선생- "  



[김학준장로의 묘비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편1편)

1975. 3. 11 가심"





(11) 086.   (2010년 7월 10일 )  최용신 선생의 묘소.   사진/함동진



묘소의 맨 우측의 원판은 안산시 향토유적 안내판이다.



[최용신선생 묘]

崔容信先生 墓



                                             (안산시 향토유적 제18호)



국권상실의 암울한 시대에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최용신(1909-1935)선생은 협성여자신학교  농촌지도사업과에

                                                                  재학중이던 1931년 10월 YWCA교사로

이곳 샘골(천곡.泉谷)에 파견되어 마을사람들과 YWCA의 지원으로

1933년 1월 천곡학원 건물을 신축하고, 문맹퇴치와 농업기슬 및 민족혼과

애국심을 심어주는 교육에 헌신적으로 활동하였으나,



1935년 과로와 영양실조로 인한 장중첩증으로

26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 하였으며

학교가 잘 보이고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일리 공동묘지(현 일동 818번지 일원)에 묻혔다가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선생의 농촌계몽과 독립을 위한 눈물겨운 행적은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常綠樹)>에서

실제화 되어 농촌운동의 귀감이 되었으며,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2) 009.  (2010년 7월 10일)    <최용신기념관>으로 오르는 계단.   사진/함동진

계단을 오르다가 좌측으로 오르면 <최용신기념관>에 다다르고, 곧장오르면 기념관현판이 붙은 건물 앞의

광장(공원)에 이른다. 광장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최용신의 묘소가 나온다.



묘소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작은 돌비하나가 노여있다.



[늘푸른 교육의 동산]  



믿음의 얼굴 崔容信 선생님

꽃다운 청춘이 잠든 이곳

겨자씨와 같은  작은 씨앗이

이곳 샘골마을 천곡교회에 묻혔네

그 씨가 싹이 나와 자라고 있는 곳

생수의 흐름 속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가르치시다가

희생의 제물이 되신 우리의 선생님

지금도 계절과 시대에 제한을 받지 않고

늘 푸르고 싱싱한 상록수 되여

우리 모두의 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네

교회여 위대한 상록수 정신을 받들어

영원한 빛을 발하소서....!  





(13) 010.  ( 2010년 8월 30일) <최용신기념관>으로 가는 길 전철역,   전철4호선 오이도방향 <상록수역>.   사진/함동진





(14)  104.  2010. 07.01   심훈의 시비(안산호수공원)      사진/함동진  







                                                                   (시)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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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동진

http://hamdongjin.kll.co.kr/  

http://cafe.daum.net/hamdj
(2010년 7월 10일)



  

      

           대한민족 말살의 암울한 일제감점기에 한줄기 빛이 된 상록수                              

          몸으로 정신으로 혼신 다 바쳐 대한독립 애국자 새싹가꾸더니  

          과로 영양실조 장중첩증으로 26세의 청춘을 조국에 바치었네.    

      

                                                                  (<상록수 최용신>   함동진 2010. 07. 10)






(1) 012.  (2010년 7월 10일 )   최용신기념관 현관 옆 벽면에 부착된 독립운동가. 농촌계몽운동의 선구자인 최용신의 흉상동판.   사진/함동진







(2) 010.     (2010년 7월 10일 )  최용신기념관(後面) . 기념관전면은 현관 들어가기가 1층과 같이 되어 있고 현판이 걸려있다.    사진/함동진





[상록수의 유래]

상록수(常綠樹)는 심훈의 소설<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인물인 최용신(崔容信) 선생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최용신(1909-19335) 선생은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 후 농촌운동에 뜻을 두고  1931년

10월 수원군 반월면 천곡리 샘골마을(現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천곡강습소를 세우고 야학을 하며

농촌사람들의 문맹을 퇴치하는데 앞장을 섰다.

  당시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최용신은 이에 굴하지 않는 의지로  민족의식을 깨우치는

교육에 힘썼으며, 이러한 선생의 농촌계몽운동에 샘골예배당(現 샘골교회)은 훌륭한

거점이 되어주었다.

최용신은  항일운동과 농촌계몽운동에 청춘을 바쳐 헌신하였으며

불과 26세의 나이로 불꽃 같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최용신의 묘는 안산시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되었으며 당시의 강습소가 있었던 현 본오동 879-4 번지에

선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7년 10월에 <최용신기념관>이 건립되어  1995년 8월에 추서된

건국훈장 애족장을 비롯한 최용신의 얼이 서린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3) 022.  (2010년 7월 10일)   최용신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을 조각한 조형물.   사진/함동진






(4) 058.  (2010년 7월 10일)  현판이 달려 있는 <최용신기념관>(2층).  

사진우측에 보이는 향나무는 최용신 선생 생존시부터 있었던 것이다.   사진/함동진





(5) 062.    (2010년 7월 10일)   <샘골강습소>의 주춧돌(향나무밑을 둘러있는 주춧돌)과 향나무.   사진/함동진

1932년 최용신이 샘골강습소를 세울때에 사용했던 주춧돌인데 당시에는 20개였는데 현재는 15개만이 남아 있다.

   향나무는 1934년에 식재된 것인데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자라고 있다.

향나무 옆의 붉은벽돌 건물은

최용신이 몸담고 교육과 독립운동을 펼친 상록수 터전이었넌 샘골교회이다

사진에 보이는 철망펜스에 정문 출입문이 있다.



[샘골교회]: 교회정문에 세워진 비문에서  

"1907년 7월 3일 한반도의 뜨거운 성령의 역사로 세워진  

<상록수>샘골(泉谷)교회이다.

지난 100년간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선생님(상록수 소설의 여주인공)이

젊음을 불태우며 사역하셨던 유서깊은 교회입니다.  

  -당임목사 김수철-

-(상록수)샘골교회 교우일동-"  





(6) 073.  (2010년 7월 10일 ) 최용신기년관 뜰에 세원진 최용신 유훈비(左)와  심훈(沈熏)의 문학기념비(右). 사진/함동진





(7) 055.  (2010년 7월 10일)    [최용신 선생이 남기신 유훈(遺訓)] 碑.   사진/함동진



[최용신 선생이 남기신 유훈(遺訓)] 내용



겨레의 후손들아

위대한 사람이 되는데 네가지 요소기 있나니

첫째는 가난의 훈련이요

둘째는 어진 어머니의 교육이요

셋째는 청소년 시절에 받은 큰 감동이요

넷째는 위인의 전기를 많이 읽고 분발함이라





(8) 060.    (2010년 7월 10일 )  심훈(沈熏)의 <상록수>문학기념비   사진/함동진



심훈(沈熏 1901-1936)은 우리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쓴 작가이자

<그날이 오면> 이라는 항일 저항시로 유명한  시인이다.

<1996년 문학의 해>에는 한국문학발전에 공헌한 심훈 소설가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상록수>의 작품 무대였던  샘골강습소가 있던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둔 것이다.

비의 제작 모형이 특이하다. 원고지를 모아 세워 펼쳐진 모형이다.



비문에는 소설가 심훈의 사진부조와 함께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아침 저녁 저의 손으로 치는 그 종소리는

저의 가슴뿐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어두운 귀와 혼몽이 든

잠을 깨워주고  이 청석골의 산천초목까지 울리겠지요......

-<상록수> 중에서 "





(9) 063.  (2010년 7월 10일)  주황색으로 보이는 종탑은 (상록수)샘골감리교회이다.  

이는 그 옛날 천곡(泉谷=샘골)교회의 현재의 명칭이다.   사진/함동진



교회 옆에는 별도의 조그마한 오석에 새긴 기념비가 있다.

<최용신양을 기리는 돌>

" 日帝하의 처절하던 民族受難期에

나라의  光復 위해 모든 것 버리고

農村啓蒙의 先驅로 不死鳥 되어

이 고장 이 마을에 生命을 바쳤네

永遠히 歷史에 푸르른 얼이여

꽃다운 處女 싱그러운 常綠樹여

민중의 가슴속에  뿌리 깊이 잡아

지금도 쉬지 않고 사랑으로 자라네 "



<마을 주민들의 추모비> (필자의 가칭)

"자랑하여 긍지를 가지고 신앙으로 하나되어 살아오든 이곳

그이름 생골 상록수 마을 그정신 이겨레에게 심어준

이마을 신도시 개발로 인해 이산의 아픔을 이 글로 대신 하노라

일제압박 어둠의 골짜기를  기독교 신앙의 횃불이 되어

한 알의 씨앗이 되어 이땅에 뭍인 용신 땀과

눈물로 기도하며 수고하진 주의 종들에게

이글로 감사를 대신하노라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어도 그정신은 메마른

이겨레 가슴속에  생수의 분수대가 되어

길이 부흥 발전되기를 기원하노라

언제: 1985년 11월

어디다: 천곡교회정문옆

누가: 샘골부락민

글: 홍석필"





(085) 164. (2010년 7월 10일)  최용신 선생의 묘소(좌측)와 김학준 장로(교수)의 묘소(우측)    사진/함동진

최용신 선생의 묘소 옆에 김학준 장로(1912-1974년)의 묘소가 자리하게 됨은 그의 유언에 따름이다.

유언:  "내가 죽거든 최용신 무덤 옆에 묻어다오."

맨 좌측의 검은 오석의 큰 碑는 최용신 선생을 추모하는 <추모비>이다.



[추모비] 최용신 선생 묘소 옆

"황혼이 저무는 길목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의 글귀를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잠자는자 잠을 깨고 눈먼자 눈을 떠라

살길을 닦아보세

조선에 부흥은 농민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

-농촌계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최용신 선생- "  



[김학준장로의 묘비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편1편)

1975. 3. 11 가심"





(11) 086.   (2010년 7월 10일 )  최용신 선생의 묘소.   사진/함동진



묘소의 맨 우측의 원판은 안산시 향토유적 안내판이다.



[최용신선생 묘]

崔容信先生 墓



                                             (안산시 향토유적 제18호)



국권상실의 암울한 시대에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최용신(1909-1935)선생은 협성여자신학교  농촌지도사업과에

                                                                  재학중이던 1931년 10월 YWCA교사로

이곳 샘골(천곡.泉谷)에 파견되어 마을사람들과 YWCA의 지원으로

1933년 1월 천곡학원 건물을 신축하고, 문맹퇴치와 농업기슬 및 민족혼과

애국심을 심어주는 교육에 헌신적으로 활동하였으나,



1935년 과로와 영양실조로 인한 장중첩증으로

26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 하였으며

학교가 잘 보이고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일리 공동묘지(현 일동 818번지 일원)에 묻혔다가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선생의 농촌계몽과 독립을 위한 눈물겨운 행적은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常綠樹)>에서

실제화 되어 농촌운동의 귀감이 되었으며,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2) 009.  (2010년 7월 10일)    <최용신기념관>으로 오르는 계단.   사진/함동진

계단을 오르다가 좌측으로 오르면 <최용신기념관>에 다다르고, 곧장오르면 기념관현판이 붙은 건물 앞의

광장(공원)에 이른다. 광장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최용신의 묘소가 나온다.



묘소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작은 돌비하나가 노여있다.



[늘푸른 교육의 동산]  



믿음의 얼굴 崔容信 선생님

꽃다운 청춘이 잠든 이곳

겨자씨와 같은  작은 씨앗이

이곳 샘골마을 천곡교회에 묻혔네

그 씨가 싹이 나와 자라고 있는 곳

생수의 흐름 속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가르치시다가

희생의 제물이 되신 우리의 선생님

지금도 계절과 시대에 제한을 받지 않고

늘 푸르고 싱싱한 상록수 되여

우리 모두의 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네

교회여 위대한 상록수 정신을 받들어

영원한 빛을 발하소서....!  





(13) 010.  ( 2010년 8월 30일) <최용신기념관>으로 가는 길 전철역,   전철4호선 오이도방향 <상록수역>.   사진/함동진





(14)  104.  2010. 07.01   심훈의 시비(안산호수공원)      사진/함동진  







                                                                   (시)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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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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