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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02 11:47
장성우 목사 자전적 에세이(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123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15): 미국으로 유학길에

미국 신시네티 크리스천 대학교에서 잭 카트렐 교수와 함께

19849. 미국에 도착했다. 가족을 한국에 두고 공부계획을 가지고 미국으로 떠났다. 필라델피아에는 사역하는 처남 김정인 목사가 살고 있다. 참으로 길고 긴 여행이었다. 김포비행장을 출발해 시카고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너무나 피곤하였다. 한국에서는 바나나가 귀한 시절이라 미국에서 싸다는 바나나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일주일간을 아침저녁으로 바나나를 사다 놓고 싫도록 먹었다.

필라델피아에는 평화의 종이 있는 유명한 곳이다. 미국 독립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다. 자유의 종에 선명하게 새겨진 레위기 2510절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proclaim the liberty 자유를 선포하라이 성구야 말로 미국의 정신이요 가치리라. 자유와 독립이 얼마나 좋았던지 너무 많이 울려서 균열이 나 있었다.

훼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는 아름다운 캠퍼스였다. 1937년에 세워진 신학교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훼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로 분열되고 이곳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는 1952년에 옮겼다. 짐을 풀어놓고 오랫동안 피로로 인하여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계속 잠을 잤다.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1주일이 지났는데도 시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낮에는 졸고 밤에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지냈다. 그런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김정인 목사 내외다. 반갑게 맞아 주면서 위로해 주었다. 한인교회 여러 곳에서 설교 부탁이 왔다.

훼이스 총장 메칸타이어 박사와 함께

세계적인 신학자로 존경하던 총장인 멕킨타이어(Carl McIntire) 박사를 찾아갔다.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국에서 공적 자리에서 만났지만 개인적으로 처음이다. 이 학교를 통하여 보수신학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멕킨타이어 박사가 나이가 많아서 활동제약을 받는다고 한다. 총장인 그는 1906517일에 미국 미시간 주의 업실라티(Upsilanti)에서 태어났다. ICCC(국제기독교교회회의,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를 창설하여 총재로 있었다. 그는 2002319일에 사망했다.

"장 목사, 당신을 많이 기다렸다. 당신을 소개해 준 이 교수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장 목사에 기대가 크다. 교수들을 소개해주겠다." 여러 명의 교수들을 소개해줬다. 오랜 친구를 맞이하듯 정겹게 나를 반겼다. "축하한다. 잘 왔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뭐든지 내게 부탁하라."했다. 책방에 들려 책을 구입했다. 이 책들은 신학을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교수들은 자주 초청해 저녁을 대접하고 격려했다.

하나님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서 역사하신다. 왜 생면부지인 내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을까.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준비한 로드맵(road map)에 따라 나의 삶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

미국 신시네티 크리스천 대학교에서 프리슬리 교수를 초청특강

신학공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매일 리포트를 작성했다. 논문을 준비하고, 발표하는 일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허덕이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미국은 넓은 세계로 가는 관문이다.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인에게는 생소했다. 대한민국은 전쟁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 아주 참담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논문을 썼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주말에는 미국교회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했다. 서투른 영어로 열심히 설교를 했다. 그들이 알아듣는 것인지... 그들은 감동을 받고 내 손에 10 달러를 꼭 쥐어 주기도 했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집회를 인도했다.

이때 데니스 존슨(Dennis Johnson) 교수, 밀리건대학교총장 Marshall Legget 박사, 1924년 설립된 신시내티신학교(CCU, Cincinnati Bible Seminary)Johnny Pressley 교수, Jack Cottrell 교수 등과 교제를 가지게 되었다. 후에 내가 미국교수의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는 많은 친구목회자들이 미국에 있다. 과거에 미국에 초청을 받았을 때 8명 중 나만 고국으로 돌아왔고 나머지는 미국에 남아서 영주권을 얻었다. 그들이 미국에서 한인교회를 활발히 하며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미국 방문시 모습

나의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내가 방황할 때도
지비로운
눈빛으로 조용히 보시며
침묵으로 기다리셨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할 때도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끝없는 기도로도
나의 허물이 제하여지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주님은 용서해 주신다고
조용히
대답하십니다

살면서 내가 배신으로 아파할 때도
주님은
손을 잡으시며
내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슬프고
아픈 배신을 맛보았노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잡아 일으키십니다

그것이 배신의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있는 나의 몫이라면,  

눈물을 삼키며 죄없이 십자가를 지신 주님
우리의
슬픈 영혼을 바라보시며
한없는
용서를 하시며

외롭고 고달픈 삶에서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자비의 손길을 펴시겠지요

땅과 세계로 이어지는 영원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승리하며 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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