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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03 07:05
장성우 목사 자전적 에세이(17-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540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17): 강권적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

창립 3주년 및 출판기념예배에서 최윤권목사가 축사하고 있다

강남제일교회 창립 예배에 참석한 목회자와 장로들

서울 강남에서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어려움을 겪으며 용문산기도원에서 금식으로 기도했다. 옆에서 계신 분에게 물어 보았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았는데, 왜 이렇게 고난이 오는 가’ 그는 나에게 권유했다.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의 잣대로는 잴 수가 없습니다. 고난에는 모두 다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했으면 욥기를 깊이 읽으시기 바랍니다.’하고 권유했다. 조용히 묵상하며 욥기를 다시 읽었다. 왜 의로운 욥은 고난을 당하는가?. 욥의 친구들은 ‘그래도 너의 잘못이 있지 않겠는가. 회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욥기를 읽으며 마지막 장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42:5-6)

섭리 속에는 큰 은혜가 있음을 깨달았다. 방향을 찾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으며 방황하며 해남에서 목회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갔다가 세워진지 15년이 된 동리교회를 소개 받았다. 교인은 어린이를 포함해서 10여명이 모이는 작은 교회였다. 저녁에는 집집마다 고구마를 사택에 가져왔다. 눈이 쌓인 겨울 긴긴 밤에 성도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새로운 사역을 위하여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하기로 했다. ‘주님이 꿈에서 이끌었던 바닷가에 수많은 돛대가 있고 갈매기가 나르는 바닷가’인 것을 생각하며 개척지를 찾았다. 버스를 타고 신월동에 이르렀다. 깜짝 놀랐다. 신월동에 가니 길게 늘어선 고압선이 바다의 돛대들이 있는 것처럼 늘어섰다. 하늘에는 비행기들이 갈매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이곳이 하나님이 준비한 장소이다’ 하고, 신월동 2층 공장을 하다가 비워진 30평을 계약했다. 1978 12 10일 개척 첫 예배를 드렸다. 감격스러운 시작이었다.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이끄신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내 자의로 된 것이 없다. 내가 하는 것 같지만 뒤에서 보이지 않는 큰 힘에 이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4-5)

출판기념회에서 설교집‘일곱촛대의 비밀’을 소개하고 있다.

강남제일교회에서 율동하는 학생들

198335일에는 개척 3년간의 설교를 모아서 ‘일곱촛대의 비밀’ 설교집을 출판하고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모두가 와서 축하해줬다. 감사한 일이다. 두 번째 설교집은 19871015일에 출판한 ‘고독한 승리’이다. 개척교회는 부흥되었다. 날마다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좋은 소식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사역을 하면서 평생 좋은 사람들과 사귐을 가졌다. 최고의 축복이다. 시간과 열정을 허황된 일에 허비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신앙의 힘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무가치하고 소모적인 일에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달려왔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갖게 된 것은 큰 축복이다.

나의 삶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한 손길은 섭리 속에 있었다. 반평생 과거와 씨름한 야곱,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통당한 여인, 예수님께 충성을 맹세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앞장서 핍박하던 사울을 세워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아나니아. 그들을 주님이 사랑하셔서 수치심, 자책, 절망, 육신의 병을 고치시고 쓰셨다. 하나님은 치유하기를 원하신다. ‘거듭남’은 인생의 방향 자체가 바뀌는 기적이다. 내 안에 예수로 산다고 외치는 힘을 얻은 것이다. 나의 삶도 주님의 기적인 인도였다.

십자가의 길, 주님 가신 길
골고다로 가는 길,
십자가의 길은 주님이 가신 길,

오늘도 나의 길, 주님 생각하며 가는 길
내 영혼은 당신과 함께 걸어 갑니다
주님이 가신 길이기에, 나도 가고 있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 저물어 가는 하루가
세파에 밀리여 고통과 탄식으로 얼룩져 있는
고통 받는 영혼이 아픔을 탄식하고 있기에

주여, 당신이 계신 내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길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폐허가 된 땅 위에 석양에 기우는 저녁노을
평화를 잃은 전쟁의 잔해가 흩어져 있는 벌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생의 쪽방
저들의 영혼 깊은 상처 위에 성령님 오셔서
위로와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옵소서

버려졌던 공허한 대지 위에 광명의 빛
놀라운 구원의 소식이 싱그러운 초록을 물들이며
영생의 날에 가득 찰 결실로 기다리는 계절이여

내 가슴에 조용히 울려오는 깊고 강한 소리
그것은 먼지로 덮인 황톳길을 넘어서 오고 있는데,
생명을 잃어버리고 사는 슬픈 사람에게
고난과 고독으로 얼룩진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구원

역사의 흐름 속에 조용히 광명이 내려오고
죄로 인해 썩어져 가는 인간 속에서
영원으로 통하는 생명의 물줄기가 내리고 있는데,
우리의 심령 속으로 영생의 소망이 가득히 쌓이게 하소서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생명을 돌보기 위하여
하늘에 울리는 중보의 기도를 드리겠나이다.

어두움으로 흐려진 버려진 영혼이
소망으로 넘치는 새 생명을 받아서
고요한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깊은 잠, 어두움에서 깨어나기를

주님, 당신도 십자가를 감당하셨기에
나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능력을 주시고
고독한 영혼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소서. 오셔서 은총을 주소서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18): 한하운의 심어준 꿈, ‘시인으로 등단하다’

시인 한하운

나병시인으로 한하운이 처한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작품 하나하나는 불우한 처지와 자유에 대한 갈구를 시로 승화하여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고픈 절실한 마음을 전했기에 애조 띤 가락은 읽는 심금을 울리며 진한 감동을 주었다. 한하운의 시는 헤어날 수 없는 육신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시로 승화시켜 깊은 감동을 준다.

‘원한의 하늘을 찢고 우는 노고지리도/ 험살이 돋힌 쑥대밭이 제고향인데/ 인목도 등 넘어 알아보는 제고향 인정/ 이래도 나는 산넘어 봐도 고향도 인정도 아니더라’

세상을 떠돌던 '천형의 시인' 한하운(韓何雲: 1919.3,30-1975.2,28), 죄명은 문둥이 어처구니없는 벌로 법문 어느 조항에도 없는 삶을 살던 처절한 인생, 한하운은 나에게 시를 쓰게 만든 스승이었다. 나병의 선고를 받던 날, 하늘이 무너지는 무서운 절망으로, 이 마을 저 마을로 어린아이들 놀림의 돌팔매 맞으며, 황량한 황톳길을 떠돌았다. 세상 사람들이 제멋대로 규정한 인간 추방의 잔학성으로 인간조건을 박탈당한 산송장으로 살면서, 피맺힌 절규로 쓴 시를 접하며 나는 애절한 울음을 같이 흐느끼며, 시심을 가슴에 키워왔다.

외로운 고독과 자학의 저주로 이어지는 울음소리, 처절한 슬픈 눈물을 뿌리며, 메마른 황톳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의 길, 비운의 시인 한하운이 남긴 체취에서. 내 가슴에 황토 보리밭 길을 느끼게 만든 것인지 모른다. 나병시인으로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그를 만난 것은, 청량리에서 흥국소년직업학교를 세워 운영할 때였다.

동아일보에 난 기사를 보고 한하운, 그가 격려차 나를 찾아왔다. 천형의 시인 한하운. 그는 나병이 완치된 후였다. 만나는 순간 감동하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얼굴은 조금 일그러지기는 했으나, 볼썽사나운 모습은 아니었다. 보리피리를 불며 눈물의 언덕을 지나 방황하는 모습을 연상하며 반가워했다. 나이 어린 나를 반가워하는 한하운, 시인 정서와 사랑이 가득 찬 인간성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바로 정을 느꼈다.

무조건 그의 시가 좋았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의 인간성을 만나게 된 후에 나의 가슴에는 시가 살아 움직였다. 후에 신앙시를 쓰며, 십자가로 대신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군중 속에서 인간 고독을 뼈저리게 느껴 치를 떠는 천형의 문둥이임에 몸부림치며 애환의 거리를 울며 떠돌고 있는 아픈 영혼이 나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한하운의 호소하는 인간의 억울한 누명에 차라리 자유로운 새의 푸른 노래가 자신이 원하는 숙명이었을는지 모른다. 한하운은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직업소년학교 학생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자상한 상담자였다. 다재다능한 그가 문둥이란 죄명으로 문단의 이방인으로 살았음은 억울한 노릇이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 올시다/ 사람이 아니 올시다 짐승이 아니 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한 세상 한 세월 살면서 태어난 보람을 꿈이라 하오리’하고, 살아생전에 말할 수 있었던 한하운, 1957년 자신의 나병도 완치하고 나환자 구제 운동에 헌신하다가 간 그가 나에게 오늘과 같은 신앙시를 쓰게 했다. , 감사한 일이다.

어떻게 나를 아셨습니까

모였다 흩어지고
흐르고 변하는 아침저녁
누가 알 까마는
당신만은 내 마음 알 것 같기에,

마음을 아실 이
혼탁한 소리에도
깨끗하다, 거룩하다 하시니
내 어찌 감사하다, 않으리까

내 마음 하늘
굳게 잡고 일으키시니
내 어찌 사랑한다, 않으리오

나를 아실 이
내 한탄 들으실 이
굳게 잠근 문, 모르는데

내 마음 알아주는 당신이기에
나다나엘 고백처럼 ‘어떻게 나를 아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