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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06 09:32
장성만 동서학원 설립자 - 내 인생의 멘토 선교사 마크 맥시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455  

[내인생의 멘토-장성만 동서학원 설립자 편] 선교사 마크 지 맥시

'믿음 위에 굳게 서면 어떤 시련도 극복' 마음에 새겨 줬죠
임원철 기자
입력 : 2015-03-10 [20:27:06] | 수정 : 2015-03-13 [19:00:33] | 게재 : 2015-03-11 (26면)

 

그리고 사역적 연령은 100세라고 말할 수 있다. 목회자로 40년, 교육사업 50년, 정치 경력 10년을 합치면 모두 100년이 되기 때문이다. 100년간의 사역적 인생에서 최고의 멘토를 꼽으라면 바로 미국인 선교사인 마크 지 맥시(?~1988)가 단연 1위다.

한국전쟁 당시 첫 만남
목회 활동·교육 사업·정치 입문
삶의 전환점 맞을 때마다
격려하고 의논 상대 되어 줘

'만남 잘 하는 사람이 성공'
젊은이들 꼭 명심하기를…

그는 고비 때마다 나의 멘토가 되어 방향을 제시해 삶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목회활동을 할 때, 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할 때, 정치를 할 때마다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나를 격려하고 의논 상대가 되어주었다.

맥시 선교사는 내게 "믿음 위에 굳게 서라"고 항상 강조했다. 아무리 성공해도 믿음이라는 터전, 인격의 바탕이 없으면 이는 모래 위의 집처럼 쉽게 무너진다, 믿음 위에 굳게 서면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쳐도 끄떡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50년대다. 당시 부산은 피란민과 실업자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젊은 목사로 교회를 맡고 있었다. 맥시 선교사는 원래 미국 종군목사로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제대한 후 일본 가고시마 현에서 교회를 세우고 전도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때 6·25전쟁으로 인해 한국의 처참한 소식을 듣고 부산을 여러 번 방문해 피란민을 위로하고 고아원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때 처음 그를 만났고,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친분도 쌓게 됐다.

이에 맥시 선교사는 "먼저 (장 목사가) 공부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일본 신학교에 편입해 공부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었다. 그런데 그때는 한일국교 정상화 이전이라 일본 입국 허가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때 맥시 선교사가 일본 법무성을 수십 번 방문해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일본 오사카성서신학교에 입학해 신학과 영어를 동시에 배웠다. 일본 유학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할 무렵 맥시 선교사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이제 더 큰물에서 공부해야 한다. 미국 친구들에게 네 이야기를 모두 해두었다. 미국 신시내티의 신학대학교에서 장학금도 주기로 했다. 생활비를 지원할 후원자도 준비해두었다"는 것이다. 일본 유학도 분에 넘치는데 미국 유학은 정말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1962년 9월 미국에 도착했다. 며칠 후 기숙사로 한 보따리나 되는 우편물이 왔다. 바로 미국의 여러 교회에서 온 초청 편지였다. 맥시 선교사가 사전에 200여 개 교회에 편지를 보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평일에는 공부하고, 주말이면 자동차를 몰고 교회를 방문해 "한국의 실업자를 위해 학교를 세워 기술을 가르치고자 한다. 도와주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미국 교인들은 너도나도 도움을 약속했다. 재미재단이사회를 구성하고 미국에서 모금되는 돈은 이사회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1964년에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다. 학교를 세우기 위해 부산 전역을 찾아다닌 끝에 당시 경남지역의 폐과수원 임야를 구입했다. 미국에서 가져온 블록 기계로 직접 블록을 찍어 2층 건물을 만들었다. 드디어 1965년 경남정보대(당시 동서기독교실업학교)를 설립하고 19명의 학생을 모집했다. 이게 경남정보대의 전신이다.

그 후에도 맥시 선교사는 30년 동안 일본에서 수십 차례 부산을 방문해 특강과 설교를 통해 도움을 주었다.

내가 정치에 입문할 때에도 그와 의논했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며 그는 반대했다. 그러나 주변 환경 때문에 그 분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그는 "기어코 정계에 입문했구먼, 정치란 유혹도 많고 시련도 많은데 믿음을 가지고 잘 해라"고 격려해 주었다. 정치를 하면서 유혹과 시련도 있었지만 여기에 빠지지 않고 성공적인 정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맥시 선교사의 조언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뻗어나갈 수 있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나의 멘토이며,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이다.

나는 인생에서 만남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생에는 세 가지 만남이 있다. 첫째는 친구와의 만남, 둘째 스승과의 만남이요, 세 번째는 신앙과의 만남이다. 특히 대학에 들어오면 수많은 스승을 만나는데 일생의 멘토가 될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이런 만남을 잘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이 점을 젊은이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정리=임원철 기자 wcl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