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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04 11:35
그리스도의 교회가 낳은 사랑의 원자탄 진성구 장로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696  
   http://kccs.info/순교사적지 지정 감사예배 및 관련 자료.pdf [374]
   http://kccs.info/For_Christ_1957_Feb.jpg [281]

그리스도의 교회가 낳은 사랑의 원자폭탄 진성구 장로

진성구는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그리스도의 교회의 창립자이자 장로였다. 6.25동란 때인 1950년 11월 6일에 마을 빨갱이들에 의해서 교인 35명이 신앙 때문에 순교를 당한 교회이다. 1950년대 초에 이동 신학교였던 신화신학성경연구회(그리스도의 교회)가 최요한 목사의 유달교회(당시 순복음교회)에서 모였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진성구 장로가 제공한 목포시 죽교동의 건물 2층이었다. 진성구 장로는 최요한 목사의 목포 그리스도의 교회를 1957년 9월 창립 때부터 교회를 떠난 1968년까지 10여 년간 섬겼고, 김은석 목사가 자주 그의 집에서 묵었다. 김은석 목사와 그의 동료들에게 김교인 장로(전남 함평)와 더불어 진성구 장로의 집(목포)은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 드로아의 가보의 집과 빌립보의 루디아의 집처럼 선교의 허브들이었다. 또 진성구 장로는 1957년 무렵 테일러 선교사가 운영했던 서울성서신학교의 이사로 섬겼다. 해롤드 테일러(Harold Taylor) 선교사가 발행한 선교지 <한국에 그리스도를>(For Christ in Korea) 1957년 2월호에 진성구 장로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성구 장로는 1950년 10월 말 어느 아침에 수확을 앞둔 벼를 살펴보려고 논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나타나 진성구 장로를 에워쌌다. 그리곤 “거만하게 굴지 마라. 세상이 바꿨다. 양키의 똥개들인 너희 그리스도인들을 말살해 버리겠다.”며 주동자가 엄포를 놓았다. 그들의 눈은 살벌했고 강경했으며 냉정했다. 그들의 이 소행은 마을의 나지막한 언덕 너머에 진을 치고 있는 공산군 지도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꾸민 짓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그날 밤 진성구를 작은 방에 가뒀다. 내일 진성구를 인민재판에 세울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성구를 납치하기 전부터 이미 그의 운명을 결정해 놓고 있었다. 진성구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이제 이 땅에서의 내 삶은 끝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진성구는 최후를 잘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주님의 평안이 임했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진성구는 자기 자신이 산중턱 동굴에 버려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곳까지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진성구는 쪼그리고 앉아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연 살아온 지난날이 회상되었다. 특히 그가 결혼직후에 꿨던 꿈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때 그는 꿈에서 두 개의 가지가 돋아난 큰 나무를 보았는데, 한 가지에는 세 개의 열매가 매달려 있었고, 다른 가지에는 다섯 개의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세 개의 열매를 매단 나뭇가지의 열매들이 땅에 떨어지는 꿈이었다.

정신을 차려 진성구는 산에서 기어서 내려왔고, 벌목꾼에게 발견이 되어 그들 부부로부터 수일간 정성스런 간호를 받았다. 그 사이에 공산군들이 쫓겨 북쪽으로 퇴각하였고, 마을은 그들로부터 해방되었다. 진성구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세 아들들이 이미 마을 빨갱이들로부터 살해된 후였다. 마을의 빨갱이들은 곧 체포되었다. 친구들은 진성구에게 총을 건네주면서 그들에게 복수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이 목불인견의 상황에 처한 진성구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세 명의 아들들을 모두 잃은 그의 마음엔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듯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성구는 그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그리스도인인 자신에게 웬일인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자신의 눈앞에는 금지옥엽 같은 아들들을 묻은 세 개의 무덤들이 있고, 또 그들을 죽인 살인마들이 있었으며, 자신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이 일을 어찌해야하는가?

마을 밖에 언덕 주변으로 세 사람이 끌려갔고 또 한 사람이 권총을 들고 그들을 뒤따랐다. 얼마쯤 후에 세 발의 총소리가 났다. 그 총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보복살인이 이뤄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었던 진성구는 그들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6개월 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951년 봄철에 세 사람이 말없이 세 개의 작은 무덤위에 꽃다발을 놓고 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 무덤들은 진성구의 집에서 가까운 언덕비탈에 있었던 것이다.

금년 봄(1957)에 진성구 장로와 그의 부인은 6.25동란이후 낳은 다섯 번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진성구 장로는 적어도 몇몇 꿈들은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Harold Taylor, “Love Your Enemies,” For Christ in Korea, 1957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