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5-11-24 23:12
정인소(鄭寅笑, 1907.11.11-1977.8.27) 박사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811  

정인소(鄭寅笑, 1907.11.11-1977.8.27) 박사

<대한민국 인사록>, <(사진으로 본) 국회 20년 부록: 역대 국회의원 약력>, <역대 국회 의원 총람> 등에 따르면, 정인소는 소년시절부터 민족해방운동으로 일제 때 특별 고등요시찰인(日帝時特別高等要視察人)이 되어 128회의 검속투옥이 있었다. 특히 세계어(에스페란토)보급, 금주, 단연(斷煙), 아편, 공창(公娼), 축첩(蓄接) 등을 폐지하는 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광복 후에는 군정청 학무국 계몽강사로 활약하였다. 사재를 투자하여 애지세계사(愛之世界社), 국제금주동맹, 한국세계어총연맹 등을 창립하여 총재에 취임하였다.

정인소는 조선행정 사찰관, 아마 세계어 전문학관 관장, 국학대학 교수, 국민대학 교수, 푸람파싸 대학 학장, 국제웅변대학 학장, 청주대대학원 원장, 신생활일보사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자신이 설립한 한국세계어협회(Korea Esperanto-Asocio)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오랫동안 방송설교를 하였다.

정인소 박사는 청주대학대학원 원장을 지냄으로써 보궐선거에서 5대 국회의원(지역구 충청북도 음성, 소속정당 무소속)으로 당선했으나 5·16군사정변으로 인해서 의원선서를 하지 못하였다. 2013년 7월 13일자 경향신문, ‘48시간 국회의원 아시나요?’와 2013년 12월 8일자 중앙일보, ‘48시간 국회의원 괴산 김사만·음성 정인소…DJ도’에 따르면, 정인소는 1961년 5월 13일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충북 음성에서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날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정인소, 김사만, 김성환, 김종길, 김대중(전 대통령) 총 5명이었다. 이들은 선거 다음날인 5월 14일 중앙선관위로부터 의원 당선증을 받았다. 하지만 5월 16일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곧바로 국회는 해산되어버렸다. 이 바람에 이들 다섯 명은 금배지도 달지 못하고, 본회의장 단상에서 의원선서도 하지 못한 채, 세비도 한 푼 받지 못하고 의원직을 마감해야했다. 이들이 의원 신분을 유지한 것은 1961년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이었으나 시간상으로는 48시간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후 정인소는 8번 고향과 서울에서 총선에 도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정인소 박사는 일본 대판 부립중학교, 중국 북경 외국어 전문학교 세계어과, 일본 구주제대(九州帝大) 법대 법문학부 정경과(政經科)를 각각 졸업하였고, 미국 피풀스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정인소는 자주독립국가 건설과 더불어 세계평화 수립에 분투노력하였으나 반민특위가 조선총독부 경무부 촉탁, 황민생활사 사장을 지낸 경력을 문제 삼아 기소한바가 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인해서 재판은 중단되었다.

정인소는 ‘한국에스페란토학회’(Korea Esperanto-Instituto, KEI)와는 별도로 1945년에 또 다른 조직인 ‘한국세계어협회’(Korea Mondlingvo-Asocio, KMA)를 독자적으로 설립하였다. 1947년 4월에는 ‘아마 세계어 전문학관’을 개관하여 관장으로 취임하였고, <세계어 문법>(36쪽, 프린트 판)을 내고, 6월 14일에는 서울 YMCA에서 ‘세계어 대강연회’(주제: 조선의 장래와 세계어)를 개최하였다. 8월 14일에 ‘아마 세계어 전문학관’ 제1기 졸업생이 배출되었고, 9월에 그의 <세계어 사전>(228쪽)과 <세계어 문법>(40쪽)이 애지세계사 출판으로 발행되었다. 시조사가 발행하는 1948년 9월호 <시조>(時兆)에 ‘문명국가의 금주정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52년 한국세계어협회를 사단법인화하고 <세계어의 사명>이란 책도 출판하였다. 1956년에 <세계어 문법 강의>(64쪽, 한국신생활사), 1957년에 <세계어 교과서>(96쪽, 한국신생활사)를 출판하였다.

참고로 ‘에스페란토’는 폴란드의 안과 의사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 목적으로 창안한 세계어, 곧 인공어이다. 자멘호프는 고등학교 때인 1878년에 시험판을 만들었으며, 10여년에 걸쳐 에스페란토의 문법과 어휘를 개량하여 1887년에 <첫 번째 책>(Unua Libro)를 발표하였다.

정인소 박사가 해롤드 테일러 선교사와 서울성서신학교에 얼마나 관여하였는지는 1963년 개교식에 참석한 것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에 정인소 박사는 1960년대 초 존 J. 힐 선교사와 연관된 한국성서신학교 및 한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행사들에 집중적으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인소는 해롤드 테일러 선교사의 동역자이기보다는 존 J. 힐 선교사의 동역자로 분류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아래의 사진들은 그가 한국성서신학교의 이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선교사들과 내국인 동역자들, 특히 충청이남지역 사역자들과 고루 교제하였음을 보여준다. 정인소 박사의 옷차림은 늘 소박하였고, 검정 고무신을 즐겨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