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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08 11:35
이춘식 목사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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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식 목사 http://kccs.pe.kr/rmp020.htm

이춘식 목사

이춘식 목사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교육자였다.

첫째, 이춘식은, 선배이자 스승인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 함태영이 1952년 11월 15일에 충남 논산군 부적면 신교리 마을회관을 빌려 복음공민중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1953년 3월과 7월에 각각 부친과 부인을 사별할 뿐 아니라, 재정을 후원하던 동생 함태중까지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고, 경기도 광주군 분원리 소재 숭실중학교의 교장과 교목을 맡아 떠나게 되었을 때, 복음공민중학교를 인수하였고, 장소를 옮겨 이름을 대명중학교로 바꿔서 운영하였다. 이 학교는 이후로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둘째, 이춘식은, <양촌소망교회 104년 역사> 69-70쪽에 의하면, 1956년 11월 13일 충남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 기독교대한감리회 인천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하여 1973년 8월까지 17년간 사역하는 동안 청년사역에 정성을 쏟았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교회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재임 시 그의 영향으로 10여 명의 청년들이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여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셋째, 이춘식은 그가 17년간 담임을 맡았던 충남 논산군 양촌면 인천감리교회(현 양촌소망교회)를 떠나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성서신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73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성서신학교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환원정신을 가르쳤고, 학생들에게 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구원의 15단계 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춘식 목사는 성공적인 목회자였다.

첫째, 그가 김찬영 목사의 권유를 받아들려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하기 직전 인천감리교회에서 17년간 사역하는 동안 한번 기도처를 설립하였고, 두 번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재임기간에 재적인원이 223명까지 늘어나 자립의 기반을 닦았다.

둘째, 1973년 8월 인천감리교회를 사임하자마자 바로 그달 5일에 대전 산성 그리스도의 교회에 담임목회자로 취임하여 1980년 4월 27일까지 시무하였다. 1981년 3월 1일 만목교회에 취임하였고, 같은 해에 인근 어곡리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1985년부터는 한성신학교 교수이자 신흥 그리스도의 교회의 담임 목회자였던 최용호 목사가 미국에 유학을 떠나 있는 동안 최용호 목사를 대신해서 신흥교회를 맡아 보살피던 중 1986년에 소천 하였다.


함동진 05-08-09 21:44
답변 삭제  
  이춘식 목사께서는,  1951년 충남 논산군 부적면 신교리에 함태영 목사가 설립한 복음중학교를  인수하여 다른 장소로 이전 대명중학교로 개칭 운영한 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