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힐(Virginia Hill)
힐 요한 선교사의 맏딸로서 미국 미주리 주 조플린 시에 소재한 오자크기독대학(Ozark Christian
College)에서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한국크리스챤밋숀(Christian Mission to South Korea)에서 일하기
위하여 1966년 8월 29일 입국하여 3년만인 1969년 5월 30일 귀국하였다.
한국성서신학교에 머무는 동안 기독교교육, 영어회화, 영어성경을
강의하였고, 여성3중창을 지도하여 조 가맨 선교사의 부흥전도여행(1967년 10월 18일부터 12월 30일까지) 때 찬양을 불렀다. 버지니아
힐의 서신에 의하면, 부흥전도여행기간에 결신하고 침례를 받은 사람이 일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또 충남대학교에서 영어회화를 매주 4시간씩
강의하였고, 매주 화요일 저녁에 6명의 그리스도인 의사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며, 매주 수요일 저녁에 믿지 않는 직업군인 두 명과 몇몇 여성들에게
전도목적으로 영어성경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회심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하였다. 또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30여명의 간호실습생들에게 영어성경을
가르쳤고,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50여명이 참석하는 대학생친목회(University Bible Fellowship Club)에서 영어성경을
가르쳤다. 이밖에도 선교사 자녀들을 가르쳤다.
가르치는 일말고도 틈틈이 영아원, 논산 에덴 보육원, 부산 성광원, 임홍만 목사의 장호원 기독중학교, 교회들을 방문하고,
극빈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신학생들, 목회자들, 영아들, 고아들, 복음중학교 학생들, 대전 수침교 아래 거지들의 의식주를 걱정하며 지속적으로
미국의 형제들에게 목적헌금(임홍만 목사의 기독중학교, 논산 에덴 보육원, 부산 성광원, 한국성서신학교운영기금, 목회자후원기금 등),
특별지원(헌옷가지, 겨울옷가지, 기독교서적, 각종 사전류, 성서지리궤도, 성경, 카메라필름 등) 등을
요청하였다.
버지니아 힐의 서신에 의하면, 1966년에 마크 맥시 일본 주재
선교사가 한국성서신학교를 방문하였고, 한국성서신학교는 1967년 봄 학기에 52명이 등록하였으며, 6월에 남학생 5명, 여학생 1명이
졸업하였다. 동년 8월에 고하도에서 목회자 수련회가 개최되었고, 약 65명의 목회자들과 15명의 여전도사들이 참석하였다. (딕 래쉬에 의하면,
1971년의 목회자 수련회는 부산시 사상구 주례동 경남정보대학에서 있었다.)
버지니아 힐은 1968년 4월 18일에 논산 에덴보육원으로부터 15명의
고아들을 인수받아 대전 크리스천 보육원(Taejon Christian Orphanage)을 개원하였다. 보모로는 김은미, 김부금, 조선희,
김은희, 유문자 등이 수고하였고, 고아원은 세계보건기구 공무원인 엘리자베스 멈이 세내들어 거주하던 선교부의 일층에 있었다. 그 후 한국성서신학교
교내에 ‘스나이더 홀’이라 명명한 단층 주택이 건립되었는데, 대전 크리스천 보육원이 이 건물에 입주하였다.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로버트 스나이더(Robert M. Snyder) 박사는 이 건물이외에도 충남 논산군 연무읍 순의도 중학교 설립기금의 3분의 2와 부산
성광원 법인설립을 지원하였다.
보육원을 설립한 지 만 일 년이 지난 1969년 4월 30일에 버지니아 힐이 쓴 서신에 의하면, 보육원에 아이들이 23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버지니아는 한국에서의 모든 사역을 접고 그해 5월 30일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는 부모인 힐 요한
선교사 내외와 함께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3개월 후 한국에 나온 조와 린다 가맨(Joe and Linda Garman) 부부가 보육원과 신학교
관리를 안식년을 맞은 힐 선교사 내외를 대신해서 10개월간 책임졌다. 미국에 돌아간 버지니아는 하비 벤두어(Harvey Bendure)와
결혼하여 슬하에 세 명의 딸을 두었다.
버지니아 힐은 1967년에 한국의 주일 예배의 특징을 미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그녀가 경험한 독특한 이
한국의 예배문화는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조차, 노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느낌을 줄 수 있고, 또 언젠가는
잊힌 문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에 남기기로 하였다.
주일은 한 시간가량 걸리는 새벽 4시30분 기도회(찬양과 기도)로
시작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밥, 김치(맵게 절인 배추), 김 혹은 콩나물국, 그리고 종종, 운이 좋은 날이면, 계란 또는 말린 작은
생선으로 아침을 준비한다.
오전 9시에 어린이 주일학교가 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성인주일학교가
없다. 대신에 주중에 모임을 갖는다.) 어린이 주일학교는 새신자 그리스도인 고등학교 소녀들 또는 청장년들에 의해 인도된다. 이 예배는 10시까지
이어진다. 대예배가 10시 30분에 시작된다. 그러나 찬양은 10시 15분 혹은 교인들이 오는 대로 곧바로 시작된다. 그들은 목회자를 위해
성미(쌀)주머니들을 들고 와 예배당 뒤쪽 성미상자에 넣는다. 그리고 남성은 예배당 한편 바닥에 그들의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여성들은 다른 편
바닥에 그들의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를 숙여 각자 기도를 한다. 개개인은 아끼고 또 아껴서 마련한 각자의 소중한 성경과
찬송가를 지참한다. 그들은 찬송가를 부른다. “저 멀리 푸른 언덕에.”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짐 맡은 우리 구주,” 기타 다른 자주
부르는 찬송가들을 부른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작은 흙벽 건물이 폭발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고 나면 한 교인이 대표로 나와 기도한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진다. 교인들, 특히 나이든 남성과 여성들은 감동에 따라 요동치며, 아멘으로 화답한다. 설교자는 성경을
봉독한 후 힘 있게 설교하며, 그리스도께 나오라고 초청한다. 초청송을 부른 후, 헌금송과 헌금기도를 드린다. 헌금을 걷기 위해 긴 막대기가 달린
헌금바구니를 남집사와 여집사들이 돌린다. 마지막으로 주의 만찬이 있는데, 대개의 경우 목사들이 집례한다. 장로들은 남성들에게, 여집사들은
여성들에게 분병과 분잔을 제공한다.
침례식은 날씨가 따뜻할 때 (때로는 심지어 겨울에도) 개울이나 강에서
집례된다. 때때로 가까운 목욕탕(‘오프로’ 혹은 커다란 일본식 욕탕)에서 집례된다.
점심식사는 아침식사와 거의 동일하다. 저녁식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7시 30분 혹은 여름인 경우 9시에도 시작되는 저녁예배에 참석한다. 저녁예배는 주의 만찬이 없는 것만 빼고는 오전 예배와 거의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