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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1-24 08:09
왜 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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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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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변해야 하는가◀
미국은 변화를 택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인 바락 오바마가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따라서 바락 오바마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변화와 희망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유세 중에 그가 외친 “그래요, 우리는 할 수 있어요.”(Yes, we can!)는 유명 구호가 되었다. 이 구호가 심각한 경제위기와 국제문제들로 자존심이 깎인 미국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변해야한다’는 각성제가 되고 있다.
우리 자신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금의 이 정체상태를 벗어나 전진하기를 원하고, 침체를 벗어나 발전하기를 원하고, 동면에서 깨어나 활동하기를 원하고,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부활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해야하는가를 잘 모르고 있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고, 변해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고, 변화가 두렵거나 자기 몸을 아끼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안락함이나 타성에 젖어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나혼인잔치의 표적은 변화에 관한 기적으로써 정체를 벗고 전진하기를 원하고, 침체를 벗고 발전하기를 원하고, 잠에서 깨어 활동하기를 원하고, 죽음에서 깨어 부활하기를 원하는 사람과 조직에 주는 교훈이 크다. 이 표적에서 물은 정체와 침체와 수면(睡眠)과 죽음을 상징한다. 버려야할 혹은 벗어나야할 옛 것의 상징이다. 그리고 포도주는 부활을 상징한다. 받아드려서 내 것으로 삼아야 할 새 것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때’에 아주 민감하셨다. 그것을 요한복음은 ‘자기의 때’, 혹은 ‘영광 받으실 때’라고 표현하고 있다. 변화의 때, 희생의 때, 헌신의 때를 말한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고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예수님(누가)은 2천 년 전에(언제) 예루살렘 골고다에서(어디서) 자기 몸을(무엇을) 제물로 바쳐(어떻게) 인류를 구원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왜) 헌신하셨다. 예수님은 그 ‘때’에 대해서 아주 예민하셨고, 적절한 ‘때’에 하나님의 일을 실천에 옮기셨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켄 블랑카드(Ken Blancard)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변화에 대한 호기심과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정작 변화 그 자체는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블랑카드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지식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태도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행동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조직의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했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오만에 빠진 것이고, 자기도취나 자기 우상화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 결과로 인해서 개인이 공동체가 조직이 심지어는 국가까지도 쇠퇴하고 해체되는 것이다. 토인비는 이것을 ‘응보’라고 불렀다. 개인이 됐든, 공동체가 됐든, 조직이 됐든, 민족이 됐든, 모든 쇠퇴와 해체의 원인은 변화에 대한 무신경증에서 비롯된다. 변화에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고, 현실안주에 빠지는 오만과 자기도취는 인간을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가는 무서운 내면의 적이다. 대부분의 쇠퇴와 해체의 원인이 외부의 적이나 힘에서 비롯되기보다는 내부의 병폐 혹은 내면의 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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