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작성일 : 08-08-06 09:51
삼년 반
|
|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908
|
▶삼년 반◀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을 했고,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는,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하였다. 바울의 이 고백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고백이요, 핵심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의 시련기간을 짧게 정하시고, 그 기간을 사랑의 수고와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로 잘 참고 끝까지 이긴 믿음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시련은 짧고 영광은 영원한 것이다. 짧게 표현된 시련의 상황이 영원한 영광의 상황으로 반전(反轉)되고, 회복(回復)되며, 기도와 소망이 이뤄지고, 구원이 이뤄진다.
계시록 11-13장은 박해자와 박해를 당하는 자들에 관한 계시로써 그 기간을 삼년 반으로 묘사하였다. 11장에서는 이방인 군대의 압제기간과 두 증인이 박해를 당하며 활동하는 기간을 각각 삼년 반으로 묘사하였다. 삼년 반에 관한 언급은 12-13장에서도 나온다. 삼년 반은 ‘마흔 두 달,’ ‘일천 이백 육십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란 단어로 각각 다르게 표기하였다. 그러나 문자적인 삼년 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상징적으로 ‘시련의 기간이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년 반은 엘리야 시대에 아합(874-853 B.C.)과 이세벨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숭배를 강요하던 기간에서 유래된 것이다(왕상 18:1). 삼년 반은 다니엘서에도 언급되었는데, 이는 마카비 독립전쟁 시대에 헬라제국의 안티옥커스 4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야훼신앙을 말살하려 했던 삼년 반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 두 가지 사건들은 역사적 사건들로써 모두가 심각한 배교의 위협을 받았던 때였다. 예수님도 공생애 삼년 반 동안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네로 때에도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대략 삼년 반 동안 몹쓸 박해를 받았다.
계시록의 삼년 반은 성도들이 악의 세력에게 당하는 시련의 기간이지, 재앙의 기간은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재앙은 악의 세력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다. 재앙과 환난을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계시록에서 말한 ‘큰 환난’(7:14)은 성도들이 신앙 때문에 당한 시련을 말한 것이고, 나팔재앙이니, 대접재앙이니 하는 것들은 박해세력의 무리를 멸하시고, 그들로부터 성도들을 구출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군사작전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여 내어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신 것과 같다.
군사전술에 ‘공격개시 전 사격’이란 것이 있다. 이 사격은 보병의 진격명령이 있기 전에 소나기처럼 퍼붓는 포사격을 말한다. 보병의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보병의 진격 전에 적의 진지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나팔재앙과 대접재앙은 다름 아닌 악의 무리들에 포로로 잡힌 성도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소나기처럼 퍼붓는 공격개시 전 사격과 같다. 성도들에게 전혀 피해가 없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열 가지나 되는 재앙들을 이집트에 퍼부으신 것과 같다. 그러나 고센 땅에 거주하던 히브리 민족에게는 전혀 피해가 없었다. 따라서 삼년 반은 성도들이 당하는 시련의 기간으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그 기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