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탄생과 메노라(출 25:31-40)
고대 예루살렘에서 사용되었던 유대인기독교인들의 ‘메시아 인’(印)이 예루살렘 시온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메시아 인은 일종의 상징인데요, 나사렛당(노쯔림, Notzrim)이라 불렸던 유대인기독교인들이 만들어 쓰던 것입니다. 이 상징은 세 가지 상징이 하나로 통합된 것으로써 상단에 등대가 있고, 중앙에 별, 하단에 물고기로 되어 있습니다. 가운데의 별은 상단의 등대받침 정삼각형(△)과 하단의 물고기 꼬리 정삼각형(▽)이 겹쳐지게 해서 다윗의 별인 정육각형별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이 특별한 상징은 메시아의 출현을 고대했던 유대 민중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탄생은 이 상징이 뜻하는 바를 실현시켜 주는 것이 때문에 이 상징에 쓰인 등대와 별과 물고기를 한 가지씩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상징인 메노라, 이 메노라는 활짝 핀 살구나무 줄기에 좌우로 세 개의 가지들이 뻗어 있는 일곱 개 가지 등대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당시에 이 등대의 일곱 개 가지 꼭대기들에는 일곱 개의 등잔을 놓게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촛대라 하지 않고 등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몇 번에 걸쳐서 유대교 회당예배에 참석했었는데요, 그때 강하게 느낀 것은 등대가 유대교의 중요한 상징물이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곱 개의 등잔이 놓인 등대가 처음 사용된 곳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서 생활하던 때에 만든 이동 성막에서였습니다. 이 성막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인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 두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방이 성소인데, 그곳에 분향단과 진설병이라 불리는 떡 상 그리고 34킬로그램의 순금을 두들겨서 만든 등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십계명의 제2계명 때문에 여타의 다른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 수 없었던 유대인들에게 이 순금등대는 이때로부터 그들의 중요한 국가적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주전 605년부터 시작된 바벨론 유배로 더 이상 성전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그곳 바벨론에서 회당을 만들어 공동체의 예배와 교육 및 종교재판소로 사용하였는데, 그곳 예배당에 이 등대가 유대교의 상징처럼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후 70년 로마제국의 손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붕괴되고, 모든 유대인들이 추방되었을 때부터 현재까지 유대인들은 더 이상 성전을 갖지 못했고, 그 대신 회당예배로 대신하게 되었는데, 역시 이 등대가 중요 상징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고대문서들을 보게 되면, 이방나라에 사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이방인 개종자나 혹은 이방인 유력자가 이 등대를 특별히 제작하여 회당에 기증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등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었던 것입니다. 그 어떤 형태의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메노라 곧 등대는 유대교를 상징할 뿐 아니라, 국가를 상징하는 귀중한 기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에 십자가가 있다면 유대교에는 메노라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교 회당에 놓인 등대는 ‘영원한 불꽃’이란 뜻의 ‘네르 타미드’(ner tamid)라 불립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등대의 불꽃을 “열방의 빛이”(사 42:6) 되라는 민족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희생을 통한 구원을 상징한다면, 메노라는 빛을 상징합니다.
등대는 이스라엘 국가의 상징입니다. 1956년 영국 의회는 벤노 엘칸(Benno Elkan)으로 하여금 제작한 거대한 브론즈 등대를 이스라엘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등대를 크너셋트(Knesset)라 불리는 국회의사당 전면부에 세웁니다. 이 등대에는 모세 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있었던 29개의 역사삽화들이 새겨져 있고, 설명문 속에는 “빛의 상징,” “희망의 상징,” “이스라엘 국가의 상징”이란 단어들도 들어 있습니다.
등대는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상징입니다(출 40:24). 일곱 개의 등잔에서 나오는 불빛은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심을 말해주고, 이스라엘을 지키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며(시 121:4) 언제나 자기 백성과 함께 깨어계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등대의 모양은 꼭대기에 놓인 일곱 개의 등잔과 줄기와 가지에 22송이의 살구꽃이 핀 살구나무 형상입니다(출 25:33-34). 살구나무는 생명을 약속하며, 예레미야에게 소명을 일깨워 주었던 나무입니다(렘 1:11-12).
등대는 밤 동안에 성소를 밝혔습니다(출 27:21). 저녁에 등잔에 불을 켜고, 아침에 불을 끈 다음 심지를 갈고 기름을 새로 넣습니다. 스가랴서 4장 1-14절에 보면, 순금 등대 좌우에 두 올리브나무가 서서 그 등잔에 기름을 공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의 의미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된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10절에서 일곱이 상징하는 바는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고 하였습니다. 빛과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등잔에 기름을 채워줘야 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어둠을 밝힐 수 없게 됩니다.
나사렛당(노쯔림, Notzrim)이라 불렸던 유대인기독교인들은 이 등대가 유대인 국가를 상징할 뿐 아니라, 또한 메시아의 상징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었다는 것을 그들이 만들어 사용한 ‘메시아 인’을 통해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메노라 곧 등대가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빛입니다. 어둠을 물리치는 빛입니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는 빛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열방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 희망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임마누엘로 오셨다는 것, 생명을 약속하시고, 소명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 하나님의 성소인 교회를 영원히 밝힐 참 빛으로 오셨다는 것, 힘도 아니고, 능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유지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등대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예표였던 것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의 성격을 말해주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아직도 실체를 인정하지 아니한 채 그것의 예표 또는 그림자 또는 모형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님들은 그 등대의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참 빛의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것이고, 우리 성도들은 참 빛의 실체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의미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큰 축일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활절은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동일한 3월 20일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뜬 다음 찾아오는 주일에 지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밤이 가장 긴 12월 21일 동지가 지난 12월 25일에 지킵니다. 동지 때까지 어둠에 밀리던 태양이 동지이후에는 찬란한 빛으로 어둠의 세력을 정복하고 맙니다. 태양은 결코 어둠에 정복당하지 않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의의 태양이시오,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정복당하지 아니하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는 몇 가지 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두 가지 축일이 모두 탄생일이란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께서 갓난아이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이오, 부활절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둘째는 두 가지 축일이 모두 어둠의 권세를 이긴 날이란 점입니다. 부활절은 사망과 흑암의 권세를 이긴 날이오, 크리스마스는 어둠의 세력에 영원히 정복당하지 않는 의의 태양이시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셋째는 부활절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미래에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희망의 축제요, 크리스마스는 이미 과거에 우리에게 오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축제라는 점입니다. 복스런 주님의 성탄시즌을 맞이해서 하나님의 은총이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낮에 다니면 세상에 빛이 있음으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한다(요11:9-10).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어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 12:36)고 하셨습니다. 이들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점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열방의 빛이십니다. 이 빛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희망의 빛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빛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선민이 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마음에 영접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셋째는 빛의 자녀는 어둠에 거하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 살아갑니다. 소명을 갖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다.”(요 11:9)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사실과 이 빛을 영접한 사람 또한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빛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오신 계시의 빛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또 다른 작은 빛들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만이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 수가 있고, 빛의 근원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 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빛의 세계로 나오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나아 갈 수 없고, 하나님께로 나오지 아니한 자는 세상의 빛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지 않고서는 세상의 어둠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빛으로 어둠을 이기지 못합니다. 빛의 실체이신 예수님 붙들고 남은 한 달 성탄의 축복 속에 복되게 마무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 옛날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노쯔림 곧 나사렛당이라 놀림을 받았던 유대인들은 우리 예수님이 메노라의 진정한 실체시오, 다윗의 별이시며, 생명의 만나라 믿었기 때문에 견디기 힘든 박해에도 불구하고 목숨 바쳐 고귀한 신앙을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이 숭고한 믿음의 전통이 성탄절을 맞이한 우리 성도님들의 가슴에서도 분수처럼 샘솟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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