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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22 09:11
부처의 평안과 그리스도의 평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988  

▣부처의 평안과 그리스도의 평안▣

부처의 평안은 모든 집착을 놓아버렸을 때 얻는 평안이고, 그리스도의 고뇌는 고통당하는 세상과 함께 하려는 숭고한 고뇌이다. 폴 클로델과 구상 선생이 만난 하나님이 ‘평안’이 아니라 ‘동요’와 ‘불안’을 주는 신(神)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만 평안을 얻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분이셨다. 그러나 자청하여 세상에 내려오셨고, 죄인과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셨으며, 그들이 겪는 모든 고뇌의 짐을 지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세상과 함께 고뇌하는 동요와 불안의 삶이다.

부처의 평안은 각자가 자기 힘으로 찾아 누리는 평안이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는 영원히 누리지 못할 수가 있다. 실제로 해탈의 길은 멀기만 하다. 오늘날까지 부처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석가여래, 비로자나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그리고 미륵불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고뇌를 담당하신 후에 주시는 평안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평안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또 16장 33절에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다.

부처의 평안은 인간의 고뇌를 소극적으로 버릴 때 얻어지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평안은 인간의 고뇌를 적극적으로 담당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부처의 평안은 세상을 등질 때 얻어지는 개인의 평안이고, 그리스도의 평안은 세상과 함께 고뇌에 동참할 때 얻어지는 공동체의 평안이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평안이 아니라, 공동체의 평안이요, 지구촌의 평안이다.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버려진 고아와 과부들이 있는데, 배우지 못해 글씨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만 가부좌 틀고 앉아서 평안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고뇌하고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그들을 도와서 그들과 함께 웃고 평화를 맛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이 동요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동요하고 불안하다는 것은 그 마음에 구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통당하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려는 마음 때문에 갖는 동요와 불안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시인 구상은 문학사상 2001년 10월호에 ‘오늘’이란 제목의 시를 실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지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지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숭고한 고뇌가 필요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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