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작성일 : 09-05-22 09:08
완료진행경험적인 삶
|
|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040
|
완료진행경험적인 삶
다음 주가 성령강림절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후 30년 5월 28일 일요일에 성령님의 강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구원사역을 시작하시고, 주의 종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심으로 시작되었다. 골방에서 조용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이 모인 성전 뜰에서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주전 6백여 년 전 나라를 빼앗기고 유배를 당한 이후부터 영광의 나라를 세우려는 꿈을 품고 기도하고 있었다. 6백년이 지나 그 꿈이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성전 뜰에 모인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이미 이뤄졌다고 확신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영광의 나라를 세우는 그 꿈이 반드시 유대인들을 위해서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성전예배와 함께 문자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유대교인으로 남았다.
2천 년 전,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질 당시에는 세계에 흩여진 유대인들의 수가 기껏해야 450만 명에 지나지 않았고, 이미 6백 년 동안이나 대국들의 속주민으로 고달프게 살아온 소수민족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후에 이뤄진 성령강림 사건이후 유대교인들의 삶과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과거 2천년 동안 확연히 다른 색깔로 나타났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께서 그들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강한 믿음 속에서 역동적인 전도인의 삶을 살아왔고, 유대인들은 영광의 나라 재건이란 꿈과는 거리가 먼 떠돌이생활을 해왔다. 지난 2천년의 대부분의 세월을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살지를 못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와 꿈을 ‘벌써’ 이뤄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점이다. 그들의 기도와 꿈을 벌써 이뤄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완료진행경험적인 삶이라 부른다. ‘완료’란 그 꿈이 ‘이미’ 이뤄진 것을 말하고, ‘진행’이란 그 꿈이 완성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뜻이고, ‘경험’이란 그 꿈의 완성을 미리 앞당겨 맛보며 누린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선취적 경험이 없다. 그들은 ‘이미’ 이뤄진 것을 믿지 못하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1장 22절의 말씀처럼, 기도할 때 구한 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고 기도하는 완료진행경험적인 믿음과 구한 것이 확실한 결과를 드러낼 때까지 믿지 못하는 결과론적인 믿음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눈에 드러나는 결과에 치중하는 행동을 공리주의라고 한다. 공리주의자들은 원칙보다는 결과,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뤄주신 응답을 깨닫지 못한다. 기도응답이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받은 응답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을 인정하지 못한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예상했던 방법이 아닌 전혀 다른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유대민족을 위한 영웅 메시아를 보내지 않고, 열방민족을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메시아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