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성▣
삶이 녹록치 않고, 힘들고 고달프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 남하고 ‘나,’ 또는 남들과 ‘우리’를 비교하게 되면, 자신이 짊어진 인생의 짐이 훨씬 커 보이고, 슬픔이 절반쯤 섞인 아련한 아픔이 가슴을 저며 온다. 기억의 수면아래에 있던 ‘외롭다,’ ‘쓸쓸하다’는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것이 자주 반복되면, 우울증이 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약간씩 센티멘털한 기분을 갖고 산다. 그런 기분이 자신을 돌아보게도 하고 시인이 되게도 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또 뭔가? 이런 물음이, 마치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일듯, 마음에 일 때, 가끔씩 헤라클레스의 영웅적 삶을 생각해 본다. 결코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의 삶을 동경해본적도, 율리우스 카이사르, 칭기즈칸, 나폴레옹과 같은 전쟁영웅들의 삶을 부러워해 본적이 없다. 최고 권력에 도전한 전쟁영웅들의 삶은 허무한 것이었다. 그들 안에 진정한 영웅성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떠날 때 빈손으로 갔다.
알렉산드로스가 소아시아를 정복할 때, 골디온의 신전기둥에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매듭이 있는데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된다는 전설을 듣고 달려가 단칼에 그 매듭을 잘라버렸고, 실로 그는 칼로써 세계를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그가 망령처럼 헤맸던 전쟁터에서 병을 얻어 33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후손과 가족들은 모두 살해되었다. 그가 병으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자기가 누웠던 침상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죽어서 내 육신이 누울 공간은 한 평뿐인 것을… 이 한 평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며, 수만 리 길을 달려왔단 말인가... 내가 죽거든 나의 두 손을 관 밖으로 나오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천하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알렉산드로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칭기즈칸, 나폴레옹과 같은 전쟁영웅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웅성을 갖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이들 전쟁영웅들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부과된 가엾은 운명과 싸웠고, 싸움을 하되,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했으며, 옳은 가치와 정의를 위해서 했다. 그는 지혜의 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았다. 신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영웅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니다. 신은 고난을 극복할 방법을 항상 예비했고, 헤라클레스는 그 방법을 찾아 난관을 극복했다. 신은 앞문을 닫으면, 반드시 뒷문을 열어두신다는 확신이 헤라클레스에게 있었다. 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련을 주시지만, 그 시련으로 그를 성숙하게 만들고, 진정한 영웅이 되게 하여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헤라클레스는 최후까지 신 앞에서 겸손했다. 그런 그에게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헤라 여신까지도 박수를 보내며, 자신의 딸까지 주어 부인을 삼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헤라의 영광’이란 이름을 받게 되었다. 이런 점 때문에 무신론철학자 니체가 고독한 인간들에게 ‘신이 죽었다’고 외치면서 종교에서 위안을 찾지 말고, 헤라클레스처럼 모든 고난을 극복한 초인이 되라고 권한 것은 잘못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