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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4-03 06:07
함께 아파하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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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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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아파하는 하나님◀
예수님은 종교부분 혹은 영성부분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셨다. 심지어 그분은 우리에게는 없는 신성을 가진 분이셨다. C. S. 루이스가 그의 고통의 문제에서 밝힌 것처럼, 신성(Numinose)이란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신령한 힘과 의무감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의 수호자”이다. 그 신성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란 ‘세상을 구원할 자’란 뜻이다. 위대한 신이 인간으로 변신 혹은 계시하는 사례는 그리스로마 신화뿐 아니라 구약성서에서도 흔하게 발견되는 일이지만, 위대한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서 한 세대를 인간으로 살다간 사건은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 사건을 ‘성육신’이라 부르는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한 가장 위대한 구원사건이다. 이 사건이 인류에게 끼친 긍정의 효과는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양의 정신문명사이고, 바울과 같은 성인들의 일생이며, 바로 여러분과 나의 일생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성육신 사건의 절정이, 대권을 탈환한 정치마당이나 대승을 거둔 군사마당에서 발생되지 않고, 예수님이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땅바닥에 꿇어앉아 가슴을 쥐어짜는 고뇌에 찬 기도를 올린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타났다. 예수님에게도 십자가형벌은 가혹한 것이었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이토록 어둔 밤이 찾아올 것을 알고 지내온 세월이 3년이 넘었으니까 이 날의 고통이 단순히 이 한날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심히 놀랐고, 슬퍼하셨으며, 마음이 심히 고민되어 죽을 지경이었다. 고통은 이렇게 예수님한테도 피를 말리고 살이 떨리게 하는 아픔이었다. 하물며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에게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문제는 이 엄청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될 예수님이 겪었다는 점에서 그분이 겪었던 고통은, 이사야 53장의 말씀처럼, 우리 자신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대신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고통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겪는 아픔을 친히 겪었던 것이고 우리가 겪는 아픔과 고뇌를 대신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이 핏방울이 되고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도록 간구한 예수님의 기도를 철저하게 외면하셨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며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걷겠다고 따라 나선 제자인 우리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구했던 그런 세속적인 욕망의 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유대인들이 구했던 표적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세속적인 권세를 구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던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마시고 있는 고난의 잔을 내가 너희와 함께 마시는 것처럼 너희도 내가 마시는 고난의 잔을 나와 함께 마실 수 있겠느냐? 너희가 겪고 있는 고통을 내가 너희와 함께 겪는 것처럼 너희도 내가 겪는 고난을 나와 함께 겪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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