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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3-13 09:34
하나님의 침묵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012  
▶하나님의 침묵◀

금년은 부활주일이 4월 12일에 닿는다. 사순 절기도 지난 2월 25일에 이미 시작되어 절반인 제3주째를 맞았다. 이때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듣거나 멜 깁슨의 DVD, ‘패션 어브 크라이스트’를 보거나 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뇌와 수난에 동참하려는 태도를 갖는다. 필자도 최근 틈틈이 마태수난곡을 들으면서 김은국의 󰡔순교자󰡕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었다.
이 두 권의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침묵’이다. 그것은 마치 시편 기자가 42편 10절에서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사에 개입하고 계신가라는 실존적인 물음에 관한 글들이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외마디 울부짖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와 시편 22편 1절에서 다윗이 읊고 있는 시구(詩句),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실존적 물음에 대한 고뇌들을 17세기와 20세기의 역사적 상황에서 펼쳐놓은 글들이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전쟁의 참화 속에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시며, 박해자들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시지 않는가? 왜 하나님은 인간들의 필사적인 기도에 아랑곳없이 완고하게 침묵을 지키고 계시는가? 배교자들이 천벌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득세하는 세상,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세상에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만일 존재한다면 어째서 이렇게 침묵하고 계신가?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에 계시는가?
이런 무겁고 무서운 실존적인 물음을 던진 엔도 슈사쿠는 그의 󰡔침묵󰡕에서 우리에게 쉽지 않은 답을 주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종종 겪게 되는 혹독한 시련이 욥의 경우에서처럼 사단의 테스트를 통과한 자들에게 복을 주기 위한 훈련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수난에서처럼 그것이 인류가 저지른 죄 때문이거나 인류의 죗값을 대신한 숭고한 희생이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하나님이 인간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고, 그것 때문에 존재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게 아니라, 말없이 함께 그 고통을 나누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설사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다할지라도 그분은 늘 인간의 곁에 계시면서 그들의 배반과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아픔을 참아내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나약한 인간을 사랑하실 수 있고, 용서하실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의 모든 고통과 죄를 대신 짊어지실 수가 있다.
이런 단순한 이유 때문에 인간들의 고뇌와 괴로움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라는 어둠 뒤에 오는 부활의 아침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사순 절기를 맞아서 무겁고 칙칙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내리는 결론까지 무겁고 칙칙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과감하게 암울한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겪는 고뇌와 고통 뒤에 찾아오는 부활의 아침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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