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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3-06 07:06
인생극(人生劇)에서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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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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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人生劇)에서의 역할◀
복음서에 실린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보면, 거기에는 군중도 있고, 구경꾼도 있고, 조연도 있고, 주연도 있다. 군중과 구경꾼은 소위 베이컨이 말하는 우상에 빠진 사람들이고, 주연과 조연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변화를 얻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들이 복음서 이야기의 핵심인물들이다. 그들은 병을 고쳤거나 참 진리를 터득했거나 참 평안과 안식을 얻었던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과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왜 변해야 하는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누구를 찾아가야 고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대개는 꾀 오랜 기간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고, 반드시 고침을 받겠다는 의지를 품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번에 그 기회를 잡으려했던 사람들이다. 나병환자가 그랬고, 백부장이 그랬고, 중풍병자가 그랬고, 혈루 병을 앓았던 여인이 그랬고, 맹인들이 그랬다. 그들은 제 발로 예수님을 찾아갔던 사람들이고, 입으로 믿음을 시인했던 사람들이고, 고쳐달라고 매달렸던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면 변하고 변하지 못하는 문제가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뜻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변화의 능력은 변할 수 있다는 확신과 변화의 근원과 통로 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다.
인생을 군중이나 구경꾼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나병환자가,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자가, 혈루 병을 앓았던 여인이, 맹인들이 고침을 받을 때, 그곳에는 군중이 있었고, 구경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군중이었고, 구경꾼에 불과했기 때문에 변화를 겪지 못했다. 예수님과 일대일의 대면을 갖지 못했다. 근본적인 치유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참된 실존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선 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단순히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매 순간 새롭게 확인하는 절망적인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전에 서야 한다고 하였다.
‘구경꾼들’은 피상적인 인생을 살면서 환경에 따라 이리 저리 방황하며, 이런 저런 삶의 경험들을 맛보지만, 근본적인 결단을 유보하는 사람들이다. 또 ‘군중들’은 더 이상 자기 인생을 형성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군중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책임과 참된 인간성을 회피한다. 그러므로 군중은 비인간화된 자기 상실의 표본이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수많은 모래에 뒤섞인 한 개의 모래알에 불과하다.
철학자 베이컨은 자기 편견에 맞는 사례에 마음이 동요되는 종족우상, 동굴에 갇혀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편협한 편견인 동굴우상,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면서 허구에 미혹되듯이 잘못된 논증이나 학설에 미혹되는 편견인 극장우상, 시장에서 조심성 없이 주고받는 여론에서 생기는 편견인 시장우상을 버려야 비로소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실존의 문제이다. 내 실존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모든 가식과 허울을 벗고 냉정하게 하나님 앞에 홀로 대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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