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sub_1_002.GIF

sub_1_002.GIF

sub_1_001.GIF

 

 

 

 

 
작성일 : 02-02-22 00:00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롬 3:21-2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78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혹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실까 라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래서 만물의 주인이 되십니다. 만물의 주인이 인간인 듯싶어도 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이것저것 임대해서 쓰다가 인생의 기한이 끝나면 다 놓고 갑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치도록 하신 것은 어쩌면 임대료와 같은 개념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임대료보다 한 계단 높은 개념, 즉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표현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인간들처럼 무엇인가를 보고 싶고, 갖고 싶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서였을까요? 하나님은 영이시고,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실 것이 없고, 아니 계신 곳이 없는, 한마디로 말해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초월적이고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이나 천사와 같이 이성을 가진 고등한 피조물을 만드셨을까요?

우리가 다른 것은 다 무시해버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이성을 가진 고등한 피조물을 만드셨다는 점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고등한 피조물을 만드셨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아무리 지혜와 지식이 많고 능력이 많아도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뜻이고, 부족하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나 결정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을 가진 고등한 인간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고, 부족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될 것을 알고서도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티끌만큼도 실수나 오류를 범할 수 없기 때문에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외에 고등한 피조물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은 신성모독이 되고 하나님의 권한에 대항하는 도전이 됩니다. 이 고등한 피조물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할 것이고 그분의 권한에 도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특권, 이 특권은 하나님만이 가져야할 권한입니다. 그런데 그 권한을 하나님께서 인간이나 천사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천사를 만든 분이고, 그러한 권한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는 누구라도 가질 수 없는 특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권한을 인간에게 주심으로 인해서 인간들로부터 모독을 당하시고 도전받게 될 것을 뻔히 아시면서 그리 하셨습니다.

왜 그리 하셨을까요? 여러분은 운전하는 대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좋습니까, 이따금씩 말 안 듣고 말썽부리는 아들딸이 더 좋습니까?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소중합니까, 제멋대로 하는 아들딸이 더 소중합니까? 초보운전자인 아들딸이 자동차를 몰겠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열쇠를 건네주시겠습니까? 또는 거절하시겠습니까? 만일 사고 낼까봐서 또는 글길까봐서 열쇠를 건네주지 않는다면, 그 자녀는 영영 운전을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부모라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용기를 내어 운전을 시켜볼 것입니다. 그러면 서툰 실수는 잠시 뿐이고, 오래지 않아 훌륭한 운전자가 될 것입니다.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초보운전자인 자녀에게 열쇠를 건네준 부모의 행위가 자녀의 발전을 염원하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크나큰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고등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빚어 가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을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한 고등한 동물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소유한 권한, 즉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고, 인격적인 관계를 가능케 하는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인간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의 권한을 인간에게 나눠 주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특권을 제한하셨습니다. 자신의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셨습니다.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과 도전과 모독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하나님은 그리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스스로의 권한을 제한하시며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인간들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지고,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깨지고, 이로 인해서 이 세상에 악이 유입되었고, 죄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겪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고통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자기 권한의 제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비록 우리가 고통과 고난 속에서 산다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면서, 인간들이 그분께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하실 뿐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 인간들을 대신해서 죽으시며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3장 23-25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끊임없이 배신하고 도전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셨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고등한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매우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리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실 어떤 방책을 세워두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 범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어떤 방책을 세우셨을까요? 그 방책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 벌을 받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시고, 인간의 모든 죄의 짐을 그분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에게 짊어지게 하시고, 그 대신에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입양하시고 영생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에 의하여 모든 인간이 서야 할 죽음과 저주의 자리에 대신 설 자로 선택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배반하고 죄지은 우리 인간에게 영생의 축복을 마련하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는 십자가에 처형당하여 죽는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습니다.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오히려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몫을 자기가 받는 대신에 자기의 몫, 곧 축복과 생명을 인간에게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춤으로서 인간을 높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벌을 받은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우리 죄인들을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고통 중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신 그 울부짖음은 다름 아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울부짖음이었고,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대신 흘린 보혈이었습니다. 우리 죄를 속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해서 속죄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로마서 3장 23-25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 인간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인간에게 속죄제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그 피를 받으면 속죄함을 받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우리 믿는 자들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시고 의인으로 칭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뜻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나려 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의로운 하나님, 차별이 없는 하나님,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은 사랑의 하나님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친히 벌을 받아 십자가에 죽기까지 벌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예수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고통을 체험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회개치 않는 인간들을 무서운 형벌로 벌하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회개치 않는 죄인들을 벌주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도 아니고, 정의로운 하나님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무서운 지옥의 형벌을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들에게는 영원토록 축복 속에서 살 천국을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에 조상(祖上)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들이나 손자가 법도에 어긋난 짓을 하거나 못된 짓을 하면 야밤에 그놈을 데리고 조상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무덤 앞에 엎드려 “불초한 소치로 자식을 못 가르치고 못 보살펴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조상 앞에서 매를 맞겠습니다.”고 말하고는 자식에게 매를 베어오도록 시킵니다. 그리고는 상돌 위에 올라 종아리를 걷고 서서 잘못을 저지른 아들이나 손자에게 힘껏 치도록 시킵니다. 조상매는 그 죄과의 정도에 따라 다리가 부러지도록 치게 하는 것이 관례였고, 피가 낭자하여 걷지 못하여 업혀오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 인간들의 바른 삶과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잘못을 고치고자한 정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차별이 없습니다. 때로 인간의 사랑에는 차별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정의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실 뿐 아니라, 또한 정의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죄지은 인간을 벌함으로써 나타나지 아니하고,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정의를 일컬어 우리는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정의로운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이 정의로운 사랑에 결코 차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에는 남녀의 차별도 신분의 차별도 연령의 차별도 빈부의 차별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2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정의로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옵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2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지금 이 때에 자기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고등한 인간을 만드신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빚어 가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는 분이십니다.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과 도전과 모독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래 참으시면서, 인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서야 할 죽음과 저주의 자리에 대신 설 자로 선택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시고,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결정하신 분이십니다.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시고 인간을 높이기로 결정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벌을 받은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우리 죄인들을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대신 흘린 보혈이었습니다. 우리 죄를 속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해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