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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2-08 12:12
성령의 특별한 은사
 글쓴이 : ccs
조회 : 2,743  
성령의 특별은사들을 서로 다르게 이해함으로써 많은 혼란과 분열이 발생되고 있다. 제4장에서 지적되었듯이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요 14:17). 그분은 자신의 말씀 즉 영감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셨던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아무 것도 행치 않으신다(딤후 3:16; 벧후 1:21). 성경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면, 특별은사들의 문제와 관련된 혼란과 분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일치

예수는 교회일치를 위해서 기도하셨다(요 17:22). 또 바울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들에 우려를 표시하였다(고전 1:10). 분열의 일부는 구약율법의 목적을 잘 알지 못한 채(롬 4:13-25; 갈 3:25), 유대인의 관습들을 기독교로 개종한 그리스도인에게 지키게 하고 싶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야기되었다(행 15:1-2). 분열의 다른 일부는 성령의 특별은사들의 목적과 사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전 12-14장). 우리는 교회일치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보존되어야 하며, 성령께서는 교회의 친교를 무너뜨리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한다.

방언 말함

신약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방언 말함의 사건은 오순절 날에 있었던 사도들의 것이었다(행 2:1-12). 이것들은 다른 방언들, 또는 알려지지 않았던 방언들로 불린다. 성경을 더 읽어나가다 보면, 사도들이 전에 사용해 본적이 없는 언어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들 언어들은 예루살렘 이외의 다른 많은 지역들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행 2:8). 그것들은 말하는 자들이 모르고 하는 언어들이었지만, 듣는 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들이었다.

다음으로 언급된 사건은 고넬료 가정에서 그와 그의 가족들이 방언을 말했던 사건이었다(행 10:46).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사도들에게 일어났던 것에 그 사건을 비교하였다(행 10:47). 그래서 우리는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이 말한 방언들 역시 말하는 자들이 모르고 하는 언어들이었지만, 듣는 자들은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이 사건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12명에게 침례를 베푼 후 안수하였을 때에 발생하였다(행 19:6). 그러나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세 가지 사건들 사이에 어떤 구별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신령한 은사들을 거론하였고, 방언 말함에 관하여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지적하였다.

1. 성령으로 말하는 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고전 12:3).
2. 방언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고 해석할 수 있는 언어이다(고전 14:10; 12:30; 14:5,13,28).
3. 교회에 통역해 줄 사람이 있지 않은 한, 사람들은 이들 언어들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14:27).
4. 방언 말함은 임시적이었고, 언젠가 그칠 것이었다(고전 13:8).
5. 방언 말함은 좀 덜 중요한 은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고전 12:31; 14:1).
6. 방언으로 말했을 때, 말하는 자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고전 14:14).
7. 교회의 덕은 방언 말함으로 세워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몇몇 은사들로 인하여 세워졌다(고전 14:12).

따라서 질서 있는 예배와 적절한 행동(고전 14:39)을 위해서 바울은 방언 말함을 금하지 않았으나(고전 14:39) 공중예배 때에 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는 방언 말함을 미숙한 것(고전 13:11)으로 보았고, 대중에게 말하는 좀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전 14:19)고 제안하였다.

방언 말함은 교회에서 누가 더 신령한가를 테스트하기 위한 잣대로 결코 주어지지 않았고, 그와 같은 잣대로써 방언 말함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말하기를,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고전 14:22)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활동이지, 말하는 사람의 선함이나 능력이 아니다.

예언

성경에서 선지자는 더 높은 영적권세를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삼상 3:20), 바알과 다른 거짓 신들의 선지자들(왕상 18:19), 그리고 다른 거짓 선지자들(막 13:22)에 관해서 읽게 된다. 선지자는 미래에 관해서 말할지도 모르나, 종종 과거와 현재에 관해서 말한다(삼상 15:10-34; 삼하 12:1-10). 그가 말하는 것은 근원에 따라서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만일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면 그것은 사실이고, 만일 그것이 거짓 신에게 온 것이면 그것은 거짓이다.

초대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다(엡 4:11; 행 11:27; 13:1). 또 교회는 거짓 선지자들로 인해서 고통을 당했다(벧후 2:1; 요일 4:1; 살후 2:2). 초대교회 당시 신약성경은 아직 기록되지 못했었고, 따라서 사람들이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예수와 사도들의 말씀들을 연구할 수가 없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남성과 여성들은 예언의 은사를 갖고 있었다(행 21:8-9). 그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말씀들을 받았다.

사도들은 교회가 예언의 은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을 우려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1. 예언의 은사는 한 몸 교회를 이루는 많은 은사들 가운데 하나였다(롬 12:4-6; 고전 12:10).
2. 예언의 은사는 언젠가 그칠 것이었다(고전 13:8).
3. 예언의 은사는 사랑의 은사만큼 크지 않았다(고전 13:2).
4. 예언의 은사는 방언 말함보다 더 많이 사모해야할 은사였다(고전 14:1,5,39).
5. 예언은 교회의 성도들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사용되어져야 한다(고전 14:3).
6. 예언은 질서 있게 사용되어져야 한다. 은사가 선지자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가 은사를 통제하기 때문이다(고전 14:32-33).
7. 선지자의 말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참석해 있어야 한다(고전 14:29). 이것은 예언자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하기 위해서 예언자의 말을 테스트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살전 5:19-21; 요일 4:1).

마지막 때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남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 우리는 예언의 은사가 시기적으로 한정된 은사였다고 믿으며, 사람들이 신약성경을 구입하여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쳤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신약성경을 통해서 진리 즉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은사는 질병이나 가족문제 또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자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졌다. 교회는 선지자임을 주장하는 자들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기적

기적이란 무엇인가? 혹자들은 기적은 결과든 시간이든 자연법칙에 어긋나게 발생된 사건이라고 말할 것이다. 기적에 있어서 “즉시”란 말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서 사용된 의미로 볼 때 기적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좀더 특정한 사용에 기적이란 말을 쓴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는 사람과 가르침을 인정하고 계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권세를 나타내 보이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우리는 예수의 사역을 통해서 그분이 행하신 많은 기적들을 읽게 된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예수의 기적들을 통해서 배우기를 원하셨던 것들이다.

1. 예수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권위를 부여받고 있었다. 마 9:4-7; 12:1-14; 막 1:21-28; 눅 5:21-26; 요 6:14.
2. 예수를 믿는 믿음은 보상을 받는다. 마 15:21-28; 막 2:5; 5:34; 1-:52; 눅 7:1-10.
3. 기적은 믿음을 장려하였고, 심지어 마지막 때에도 그렇다. 마 16:5-12; 막 5:36; 눅 7:18-23.
4. 하나님은 인간의 궁핍에 대한 동정에 감동받으신다. 마 14:14; 20:29-34; 막 1:41; 6:34; 눅 7:13.
5. 예수는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시다. 마 17:24-27; 눅 7:11-17.

예수의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으며(눅 4:40-44), 마지막에는 세상 죄를 대신해서 죽는 것이었다(요 3;14-17).

사도들의 기적은 종종 “표적”(행 2:43)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권세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확신하였다(행 3:12-13). 사도들이 병자들을 고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빌 2:25-28; 고후 12:7-9; 딤전 5:23). 하나님의 목적들에 부합될 때에 기적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되었다. 사도행전 28장 1-10절에서 우리는 말타섬에 있는 바울과 누가와 다른 동역자들을 보게 된다. 8절에서 바울이 한 남자에게 손을 얹고 안수하여 기적으로 그를 고치는 것을 보게 된다. 9절에서는 그 밖의 사람들도 “고침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들이 의학적인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다 기적에 의해서 고침을 받았다고 이해할 필요는 없다.

초대교회의 은사들 가운데 하나는 신유은사였다(고전 12:9). 우리는 이 은사를 “즉시” 고침 받는 것을 뜻하는 기적에 의해서 고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항상 간주한다. 또 장로들은 병든 자들을 위하여 기름을 바르고 위하여 기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약 5:14-15). 그러나 치유를 일으킨 것은 “믿음으로 드린 기도”였다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치유하신다. 우리는 병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권면을 받는다. 만일 하나님께서 치유하지 않으신다면, 무슨 이유로 회복을 위한 기도를 드리겠는가? 만일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의 목적과 일치되지 않는다면, 치유를 기적으로 부르지 않도록 조심하자.

요약

성령께서 주신 특별은사들을 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성령은 그 뜻대로 은사들을 나누어 주실 수 있다. 그러나 진리의 영으로서 성령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어긋나는 그 어떤 것도 결단코 행치 않으실 것이다. 성령은 교회에 분열을 야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성경은 은사들이 임시적이라고 말하나 그 은사들을 거두어 가실 때가 언제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아직 성숙한 믿음을 갖지 못하였고, 그들이 은사들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교회에 혼란과 분열을 가져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은사들의 사용을 자제하고, 공중예배 때에 사용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오늘날에도 크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는 특별은사들의 문제를 조심스럽게 연구해야 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활동은 사랑으로 이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다(고전 13:13).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보충연구

1.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어떻게 성숙한 행동과 미숙한 행동을 구별하였는가를 살펴보라.
2. 예수와 사도들이 행하신 기적들을 모두 찾아보고, 각각의 기적이 발생한 목적을 구별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라.

[The Central Africa Mission Evangelistic Literature Service, Christian Doctrine: A Book of Basic Beliefs(Cincinnati, OH: The Christian Restoration Association, 1988), pp.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