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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2 15:42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 3:16-3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254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 3:16-36)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르는 것이 없는 전능한 신(神)임으로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인간이 필연적으로 죄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피조물은 만들어진 존재이니,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완전하다면, 신(神)이지 피조물일 수 없으므로 인간은 부족한 존재일 수밖에 없고, 부족한 존재는 필연적으로 잘못된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나 동식물처럼 만들지 아니하고 인격체로 만드시고, 그에 걸맞게 이성과 감성과 의지와 사회성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정할 권한을 부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잘못에 대한 삯으로 죽음을 언도해 놓으셨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하였고, 1장 32절에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우발적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까지라도 그 모든 결과를 아심으로 인간을 만드실 즈음에 또한 중대한 결정을 해두셨습니다. 이 결정에 대해서 신학자 바르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에게 선택과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자신에게는 버림과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저주와 죽음을 받아야할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사귐을 예정하셨고, 자신에게는 인간과의 사귐을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몫을 자기가 취하는 대신 자기의 몫, 곧 축복과 생명을 인간에게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춤으로써 인간을 높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피 흘림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가페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17절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해 놓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의 주제는 ‘변화’입니다. 변화의 내용은 어둠이 변하여 빛이 되고,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고, 혼돈이 변하여 질서가 되고, 부정이 변하여 긍정이 되고, 멸망이 변하여 영생이 되고, 심판이 변하여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는 가치 있는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파장(罷場) 분위기를 쇄신시킬 수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의 신비를 경험하였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변화의 능력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변화의 주체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변화의 결과 또는 믿음의 결과는 영생의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20:30). 따라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신의 결과는 심판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고 하였습니다. 평결(verdict)의 내용 곧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다.”(3:19)고 한 말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행위가 악하면 어둠을 사랑하고(그 행위가 드러날까 봐서), 진리를 좇는 자는 빛을 사랑합니다(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고 싶어서, 3:20-21).
요한복음 1장에 이어서 3장 22-30절까지 에서는 세례 요한이 침례문제와 함께 재차 언급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증거자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선지자보다 큰 자란 칭찬을 들었던 분입니다(마 11:7-11). 세례 요한은 과연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고(3:22-26), 자기 위치와 역할을 알았으며 그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3:27-30). 또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였으며(3:27-30),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소명을 감당하였습니다(3:27-30). 그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3:26)고 고하였습니다. 그 때 요한이 대답하기를,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27-30)고 자신을 낮췄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공생애를 시작하였고, 민중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고, 많은 제자들을 거느렸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빼앗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인기도 제자도 모두 예수님에게로 쏠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조금도 동요치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1:34)과 “하나님의 어린양”(1:29)으로 소개할 사명을 가진 전도자로 자신의 사명을 명확하게 인식하였습니다. 스스로 자중하여 예수님이 누려야할 메시아의 영광을 탈취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단지 회개를 위해서 물로 세례를 베풀 뿐이며(1:26), 오히려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아의 샌들 끈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겸손해 하였습니다(1:27). 이뿐 아니라,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였습니다(1:35-40). 이러한 점들이 세례 요한의 위대한 점들입니다. 요한은 현대인들에게 전도인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일깨워주는 사표(師表)가 되고 있습니다.
3장 31-36절까지 에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에서 오신 분, 만물 위에 계신 분,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시는 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위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여서 땅의 것을 말한다.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3:31-32)고 하였습니다.
또 이 증거를 받는 자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고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증거를 받지 않고 아들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 예수님을 높이는 사람,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영생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33-36절은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아들의 손에 맡기셨다.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는 도리어 하나님의 분노를 산다.“고 말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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