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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20 08:43
창세기006: 존재의 가치와 의미(창 1장)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429  
창세기006: 존재의 가치와 의미(창 1장)

피조물에게 존재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은 있는 것일까요? 있다면 그와 같은 것들은 무엇일까요? 또 그와 같은 것들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먼저 실린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를 읽고나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란 초월적 존재, 나라는 인간의 존재, 그리고 자연세계, 그리고 그것들과의 관계, 나라는 인간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 왜 하나님은 이와 같은 것들을 만드셨는가, 왜 나라는 하잘 것 없는 또 나약한 것을 무엇 때문에, 무엇에 쓰시려고 이 땅에 존재하게 하셨는가, 이런 등등의 생각들을 해보셨습니까? 진화론이 말하는 우주의 생성과 존재, 우리 인간의 존재에 관한 설명을 읽었을 때 또는 들었을 때 어떤 의미 있는 철학적 또는 종교적인 느낌들을 가져보셨습니까? 그런 느낌은 고사하고 오히려 짜증이 났던 경험은 없었습니까? 우연에 의한 존재, 그래서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존재, 그래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로써 이 지구 한 구석,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피투성이가 거리를 비틀거리는 나라는 존재, 누군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그러나 언젠가는 결국 남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죽음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우연의 숙명 앞에서 짜증이 났던 경험은 없었습니까?
그러나 우연이 아닌, 피조물도 아닌, 인간도 아닌,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면, 아무리 우리가 제멋대로 생각한다 해도, 이것은 보통의 작품일 수 없다는 생각,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는 뭔가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고, 신성한 목적이 있을 것이고,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을 것이란 생각, 이런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하는 것이 창세기 1장이란 생각이 듭니다.
나란 존재의 가치, 존재의 의미, 존재의 목적은 과연 있는 것일까요? 빛과 생명 교회의 존재의 가치, 존재의 의미, 존재의 목적은 과연 있는 것일까요? 오늘 이 작은, 아주 작은 이 모임의 가치, 의미, 목적은 과연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놓고 잠시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첫째, 전지전능하신 초월적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데서 만들어진 것이 아무리 하잘 것 없고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만들어졌다는데서 그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창조주께서 이 우주를 시험 삼아 만든 것이 아니고 계획적으로 만드셨다면, 그 만드신 것 하나하나에 분명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도 의미 없이 목적 없이 가치 없이 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연에 의해서 생겨났다면, 거기에는 존재의 가치나 의미나 목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우연에 의해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제일 먼저 만드셨다는 것부터 범상한 일이 아닙니다. 매우 계획적이고 뚜렷한 목적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특징은 빛을 가장 먼저 만든데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빛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물이 우연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란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빛을 만드신 후에 우주의 틀인 궁창을 만드셨고, 그 안에 인간과 동물을 위한 바다와 육지와 식물을 만드셨습니다. 지구를 해와 달과 별보다 먼저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경륜을 생각지 않고서는 해보다 지구를 먼저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해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 빛이기 때문에 우리는 빛의 근원을 태양광선에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 둘 수 있습니다. 해, 달, 별을 만드신 후에 다섯째 날에 살아 움직이는 것들 곧 조류와 어류를 만드셨고, 마지막 여섯째 날에 짐승과 우리 인간들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실 작정이었기 때문에 인간보다 만물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주인이 살집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리고 살림살이와 가재도구들로 채워지고, 그러고 나서 사람이 들어가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칠일창조의 순서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섭리와 경륜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을 취하실 만큼 피곤하셨을까요? 일곱째 날은 만들어진 모든 피조물을 위한 안식이었다고 믿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2장 2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쉼은 곧 우리 인간들을 배려한 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나이가 창조론과 진화론을 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는 그리스도인으로 그는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다른 사나이는 그의 주장을 비웃으며 모든 생물은 오랜 세월을 통하여 진화되어 인간이 되기까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식사에 앞서서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고 짧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나이는 그대로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식사를 하면서 기도를 하지 않나?”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왜 기도를 하나?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네.” 그러자 그리스도인은 식탁에 놓여 있는 생선과 고기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가 하나님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놓여 있는 자네의 조상인 생선과 고기에 대해서는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나?”
진화론에서는 인간의 등장을 생선이나 고기보다 나중의 일로 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생선이나 고기가 인간의 조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조상인 생선과 고기에 대해서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데, 피조물의 존재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엄청난 위력과 권위를 드러내보였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림의 말이었다는데, 그 위대한 권세와 위력이 드러났습니다. 이 살림의 말에 따라 무가 유가 되었고, 혼돈이 우주적질서가 되었으며, 흑암이 빛이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능력의 말씀, 창조의 말씀, 살림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에 얼마큼이나 소중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하겠습니까?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가치와 무한한 의미가 있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을 설명한 신약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마태복음을 쓴 저자는 예수님을 말씀에 권세가 있으신 분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그분의 말씀에 따라서 병자가 고침을 받게 되고, 귀신이 떨며 꼬꾸라져 떠나고, 죄와 억압과 고통 속에 사는 민중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로 어루만져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는 살림의 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처럼 병자를 고치지는 못하고, 귀신을 떨며 꼬꾸라져 떠나가게는 못한다 해도, 살림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감사의 말, 믿음의 말, 소망의 말, 창조의 말, 긍정의 말, 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면, 우리의 그와 같은 말들 속에는 엄청난 권세와 위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의 권세에 따라서 존재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 “빛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고 나서 그 빛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는 항상 좋은 열매, 좋은 결과가 따랐다는 데 그 위력과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긍정의 결과 곧 존재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따랐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도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우리가 하는 말에 보기에 좋은 열매, 보기에 좋은 결과가 따른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살림의 말들은 우리들의 존재에 소중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살림의 말들을 쏟아낸다면, 그들은 분명코 그들 존재에 대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게 또는 교우들에게 살림의 말들을 쏟아낸다면, 삶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충만해 질 것입니다. 이런 살림의 능력과 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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