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06-02-14 11:11
창세기 065: 야곱의 자전적 신앙고백(창 48:1-2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699  
창세기 065: 야곱의 자전적 신앙고백(창 48:1-22)

창세기 48장은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요셉에게 전수하는 장면입니다. 그중 1-2절은 야곱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이 자기의 두 아들을 대동하고 야곱을 위문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3-4절은 야곱이 벧엘에서 받았던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며 이를 요셉에게 전수하는 장면입니다. 이어서 5-6절은 요셉이 이집트 여인을 통해서 낳은 두 아들을 야곱이 자기 몸으로 낳은 아들들로 받아드리고, 그들을 축복하는 장면이며, 마지막으로 7절은 야곱이 자신의 아내이자 요셉의 어머니인 라헬을 추모하면서 그녀가 묻힌 곳이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장면입니다.
인간적으로 야곱은 결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야곱이 철저한 신앙인이 아니었더라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했을 그런 사람입니다. 비록 야곱이 간교하고, 또 그가 당대의 시대적 상황에 휘둘린 면이 없지 않았다하더라도, 야곱이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았던 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흔들림 없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그의 모든 결점들이 덮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15-16절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분이라 하였습니다. 이 믿음이 야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게 하고, 한 민족의 족장으로서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8-22절은 야곱의 손자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당당하게 야곱의 아들들과 동등한 반열에 올라서게 된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중 8-11절은 야곱이 요셉과 함께 자기를 방문한 두 손자들을 끌어안고 기뻐하면서 11절에서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라고 감격해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12-16절은 야곱이 두 손자를 축복하되, 둘째인 에브라임을 장자인 므낫세보다 더 높이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17-22절은 야곱이 장자인 므낫세보다 차자인 에브라임을 더 크게 축복하자, 요셉이 다소 불편해하지만, 이로써 이집트 여인의 피를 받은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순수 혈통을 중시하던 이스라엘 언약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후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그러니까 순수혈통이 아닌 이들 지파들이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뛰어난 지파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기존 야곱의 열두 명의 아들이 그대로 야곱의 상속권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후일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지고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합류함으로써 그 모양을 달리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로써 요셉은 자기의 아들들을 통해서 두 지파를 얻게 된 셈입니다. 큰 시련 중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끝까지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던 요셉에게 하나님이 그와 그의 가족들이 측량할 수 없는 은총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성서에서 이스라엘은 장자를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장자권이란 축복을 주었으면서도, 역사를 보면, 실제로는 장자보다는 차자들이 이 장자권의 축복을 차지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아담의 셋째인 셋, 데라의 셋째인 아브라함, 이삭의 둘째인 야곱, 야곱의 넷째인 유다, 요셉의 둘째인 에브라임, 아므람의 둘째인 모세, 이새의 여덟째인 다윗, 다윗의 넷째인 솔로몬 등이 차자들로써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토록 중시되던 가부장혈통이 오늘날에 와서는 이스라엘이 모계혈통을 중시한다는 점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마 19:30)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역사가 이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야곱의 축복이 그대로 이뤄져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후손들은 큰 지파를 이루어 이스라엘 민족의 기둥이 되었고, 뛰어난 활약상을 보였습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 이방인 그리스도인은 에베소서 2장 12절과 19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으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는데, 이제는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 믿음 하나로 된 것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이처럼 믿음은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들 자신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하는 놀라운 능력과 지혜가 있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모두 결점이 많은 연약한 인간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은총을 입게 된 것은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고 복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혈통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는 무슨 특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는 위대한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9장 8-9절에서 약속의 자녀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자전적인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야곱의 고백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입은 우리 자신들이 고백해야할 내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의 신앙고백 가운데서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이란 고백은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나중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작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관심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이란 고백과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는 고백은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삶 속에 관여하시고 개입하시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시는 분이심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과 평강이 성도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