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간의 약함과 용사 하나님의
강함(출 6:1-30)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 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은 11절과 29절이 보여주듯이 바로에게 당당하게
외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2절과 30절이 보여주듯이 이에 대한 모세의 고백은
“나는 입이 둔한 자”
곧
말더듬이라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언변이 시원치
않고,
몸으로 대했을 때
사람들을 압도할만한 카리스마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바로 이런 무능하고 보좔 것 없는 인간들을 통해서 큰일을 성취해 가신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도 있지만,
구원의 역사를
성취시켜 가는 핵심은 오직 한분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일들에는 인간이 하는 일인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처럼 유능한 인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비상한 두뇌와 걸출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과 다양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종은
겸손히 순종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다.
출애굽기
6장은 이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굳이 그 부족함을 매워줄 재능 있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도 다른 평범한 신앙인들과 마찬가지로 실망하거나 낙심할 때가 많다.
출애굽기
6장에서 우리는 낙심하고 좌절한 심리상태를 가진
모세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바로를 찾아가 히브리인들이 예배할 수 있도록 사흘 길을 광야로 나가게 하라는 요구를 당당하게 했던 모세는 바로의 간교한 이간책으로 인해서
동족에게마저 배척을 당하는 입장에 서고 만다(1-9절;
5:21). 바로는
바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믿고 따라 줘야할
백성마저 심하게 배척을 하니,
모세의 입장은
난처해졌고 사기는 땅에 떨어졌으며 크게 낙심되었다.
이런 형편에서 모세는
자신의 무능과 무기력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모세는 이쯤해서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할 만큼
해봤고,
해봤더니 불가능하더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앞섰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원해서
택한 일도 아니고,
마지못해서,
하나님의
명령이라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억지로 했던 일인 만큼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가? 한 번의 실패로 포기할 하나님이
아니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을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다.
모세는 포기할망정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포기해버리시면,
저 불쌍한 민중은 누가
구원하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11절에서 여전한 말씀으로 모세에게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어 보내게 하라”고 지시하신다.
29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또 명령하신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고하라.”고 명령하신다.
29절에 기록된
‘고하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대변자가 되다,’
‘선포하다,’
‘정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세가 바로에게
간청하거나 타협하는 낮은 위치에서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와 동동한 위치에서
혹은 그보다 우위에 서서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인간의
능력여부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택하셔서 세운 자가 하나님의 대언자요,
지도자의 권위를
갖는다는 강한 의미도 갖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지 못한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의 일을 자신이 수행하기에는 함량미달이고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는 인간적인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나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라는 12절과 30절의 말씀이 모세의 진솔한
생각이다.
히브리어로 이 말은
‘아랄 세파타임’인데 이 표현의 문자적인 의미는
‘할례 받지 못한 입술’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기에는 그의 입술이 변화되지 못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입술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는 무력한 입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모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이미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사명을 받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때는 그저 자신에게
그런 큰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었지만,
여기서는 자신의 그런
일관된 생각이 이미 증명되었지 않았냐는 항의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12절에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도 나를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라고 항변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동족도 설득하지 못하는
우둔한 입술의 소유자인데,
하물며 어떻게 그
완악한 바로를 설득시킬 수 있겠느냐는 생각인 것이다.
여기에는 한번 시도를
해본 사람만이 겪을 수 있는 좌절감이 배여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물러서지 않으셨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이미 앞에서
나왔듯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상식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아무리 무능한 자라도 위대한 자처럼 큰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도 상식이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종이 무능하다고해서 하나님이 물러서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무능하지,
하나님이 무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판단과
평가는 사람들의 판단과 평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일치하고 또 그 생각이 ‘No'일지라도,
모세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이 'Yes'라고 결론을 내리시면 하나님의 판단을 믿고
따라야 한다.
셋째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비록 모세가 말을
더듬는 자(faltering
lips)일 뿐
아니라,
매사에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자일지라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위대한 종이었던 것은 그가 항상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순종했다는데
있다.
출애굽기
6장에서 나타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곧잘
‘용사’로 묘사된다.
용사 야훼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적대자들이나 적국과 싸우신다.
그러나 때로는
무지몽매한 자기 백성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적대자들이나 적국의 용사로 싸우신다.
고대의 전쟁은
신과 신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출애굽기
6장에서 야훼 용사는 거짓 신 바로에게 행하실
큰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출애굽기
6장에서 하나님은 “나는 야훼이다”는 말씀을 네 차례나 반복해서
강조하셨다.
야훼 용사는
“강한 손”과 “편팔”과 “강력한 행동”
곧 작전수행능력을
갖추고 계신다.
야훼 용사는 모세에게
거짓 신 바로에게 당신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할 것을 지시하신다.
야훼 용사는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도록 강제하겠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야훼”
용사라는 이름으로
나타내지 않으셨지만,
자기 나라와 땅도 없이
외국에서 유랑하는 그들에게 가나안땅을 소유로 주어 자손대대로 기업으로 삼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swore
with uplifted hand)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야훼 용사는 이집트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처음부터 쭉 듣고 있었고(have
heard), 쭉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have
remembered)고
말씀하신다.
야훼 용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나는 야훼이다.”
이제 야훼 용사인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바로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겠다.
“나는 야훼이다.”
이제 야훼 용사인 나는
바로의 압제에서 빼낸 이스라엘 자손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
“나는 야훼이다.”
모세 너는 바로에게
가서 내가 네게 이른 말들을 그대로 다 전해라.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항변한다.
저는 언변이 없는
말더듬이입니다.
동족도 내 말을 듣지
않는데 이집트의 살아있는 신인 바로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동족도 설득시키지
못했는데 바로를 설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한편,
이스라엘 자손은 더욱
가혹해진 노역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절망에 빠졌다.
그것이 다 모세
때문이고,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모세의 말을
듣기는 고사하고,
그를 원망하고
저주하였다.
다른
한편,
바로는 자기가 이집트
신의 아들이고 현시이자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부리는 패권자이므로 모세가 주장하는 야훼라는 신도 자기 발밑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포기라는
것을 모르시는 하나님,
패배를 모르시는
하나님은 거듭 반복해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가라.
가서 바로에게
전해라.
“나는
야훼이다.”
나는 바로가 거짓
신이라는 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 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