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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2 15:41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요 2:12-2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987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요 2:12-25)

요한복음의 특징들 가운데 한 가지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님께서 명절 때마다 특히 유월절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예루살렘방문에 관한 기록은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실 곳(=십자가에 죽으실 곳)이 예루살렘성이요, 그 때가 유월절절기란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공생애기간을 3년 6개월로 산정할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방문 사실을 많이 보도하지 아니한 반면에 요한복음은 그 사실들을 자주 언급하고 있어서 예수님의 공생애기간을 가름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뜰에 멀리서 찾아온 예배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마련된 환전상과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을 밖으로 내쫓으셨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요,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머물러야할 신성한 곳이었지만, 오히려 지배자들의 배만 불리는 폭리와 착취가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높고 견고한 성전에 가두어놓고, 613개 율법과 39개 바리새인 법으로 민중을 억압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시대의 상징인 성전시대가 끝나고 복음시대 곧 교회시대로 거듭나야할 것을 아시고, 이곳에서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단 한번의 화목제물(=선물)이 되실 시기(=영광 받으실 때)를 가늠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유월절절기 때마다 350리 길을 도보로 예루살렘을 찾아오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후 26년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46년째 보수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작업은 주전 20년에 시작돼서 주후 64년 그러니까 84년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불행하게도 주후 70년에 모든 작업이 완료된 지 불과 6년 만에 로마군대의 침공으로 철저하게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웅장하게 건축된 성전을 향해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고 하셨으니 유대인들이 좋게 보았을 리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은 21절의 부언설명대로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믿게 된 시점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였습니다(2:22).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성격을 띤 과격한 행동들에 대해서 하늘로써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이와 연관된 말씀들이 사복음서에 적지 않게 나타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하늘로써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한 성구로써는 마태복음 12장 38절, 16장 1절, 마가복음 8장 11절, 누가복음 11장 16절 등이 있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2장 39절, 16장 4절, 누가복음 11장 29절 등에 있습니다. 심지어 바울까지도 유대인은 표적을 찾는 자들임(고전 1:22)을 언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마 11:7-9). 예수의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혹시 메시아인가해서 광야에 나갔던 것입니다. 민중뿐 아니라, 지배자들의 첩자들까지도 세례 요한이 장차 오실 메시아인가를 확인하려 하였습니다(1:19-28).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기가 메시아가 아니란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고, 메시아임을 증명할 그 어떤 표적도 행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7개의 독특한 기적들을 “표적”이란 말로써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입증할 표적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단순한 기적이었다기보다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오매불망하며 기다렸던 하늘로써 내린 표적들이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 표적들을 보고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가하면, 믿지 아니한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12:37).
‘표적’이란 말은 본래 하나님의 큰 능력, 곧 기적 행함으로 나타난 결과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3장에서 보듯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의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치자 그 결과로 베드로가 복음을 설교할 기회를 얻게 되고, 그 결과로 믿은 자가 13세 이상의 남자만 오천 명에 이른 것을 표적이라고 말합니다(행 4:4).
그러나 사복음서에서 예수님과 관련하여 쓰인 경우에는 ‘표적’이란 말이 메시아임을 증명할 수 있는 하늘로부터 내리는 큰 능력 행함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라든지, 사렙다 과부의 집의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한 것과 같은 기적을 말합니다. 이 기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6장에 소개된 오병이어의 표적입니다. 따라서 표적을 구했다든지, 표적을 행하였다는 말은 예수님이 오실 자 메시아란 사실을 염두에 둔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인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던” 사람들조차도(2:23)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함보다는 먹고 배부르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막 8:33).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6:2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의 속성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치 아니하셨다.”(2:24)고 하였고,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2:2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였다 해도 그 믿는 목적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함보다는 먹고 배부르기 위함이거나 사람의 일을 행하기 위함이라면,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은 결코 우리들을 신뢰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물었던 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이 오늘날에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닐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의 일
1)어둠의 일, 2)질서를 깨는 일, 3)죽임(사망)의 일
4)먹고 배부르기 위한 일(자기 영광을 구하는 일)

하나님의 일
1)빛의 일, 2)질서를 잡는 일, 3)살림(생명)의 일,
4)복음의 일(예수님을 믿는 일과 소개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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