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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11-22 20:22
창세기 059: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의 장(창 4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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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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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59: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의 장(창 42:1-38)
인간은 다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들입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삶이 한 폭의 그림에 그려져 있다고 했을 때, 그들 각자의 삶을 근거리에서 보면, 곧 그들만의 삶에 집중하거나 집착해서 보면, 우연일 것 같고, 사소한 일인 듯싶어도, 원거리에서 보면, 곧 전체 그림을 보면, 그들이 다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로써 활동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서로 간에 있었던 불편했던 일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런 것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곳이 요셉과 그의 형들의 이야기입니다.
좁게 보면, 야곱의 아들들이 꿈꾸는 동생 요셉을 미워하여 노예상인들에게 판 것이 흔히 있을 수 있는 형제들 간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지만, 넓게 보면, 배후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좁게 보면, 야곱 때 중동지역에 엄청난 기근이 몰아닥쳤다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역사의 한 토막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지만, 넓게 보면, 애급을 이스라엘 민족을 키우는 인큐베이터로 삼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사적인 일들은 물론이고 국가나 세계의 흐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경륜을 읽을 수 있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일들이 인간들만의 일들이 결코 아니란 사실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의 일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인 것 같아도 그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의 장인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겸손하게 살았던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그런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들이 있었고, 또 그들 각자에게는 각각의 역할이 있었지만, 주인공의 역할이 주어진 것은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살 것인가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주어진 삶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보상이 있는 삶입니다.
창세기 42장은 도단에서 형들에게 노예상인에게 팔린(37:12-28) 이후 기나긴 역경을 거쳐 애급의 총리가 된 요셉이 약 20년 만에 형들과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는데요, 먼저 1-5절은 야곱 가족이 기근으로 고통을 겪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6-28절은 양식을 구하러 애급에 내려간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과 대면하지만,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형들을 시험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9-38절은 가나안으로 돌아간 형제들이 야곱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본문 창세기 42장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시기가 다가왔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15:13). 또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린 것은 소년시절 요셉이 꿨던 꿈(37:5-11)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문 창세기 42장은 내용과 의미에 따라서 세 장면으로 나눠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1-5절의 상황으로써 기근으로 고통을 겪던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애급으로 내려가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소년시절 꿨던 꿈을 생각할 때,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노예상인에게 팔았던 동생 요셉과의 대면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꿈꾸는 요셉을 미워했던 것이나 그를 노예상인에게 팔았던 것이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있는 애급으로 그의 형제들을 보내셨습니다. 일찍이 유례없는 혹독한 기근으로 이러한 상황(context)이 조성되어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기근’과 ‘야곱의 집에 곡식이 떨어짐’과 ‘애급에 양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음’과 ‘아들들을 애급으로 보냄’이라는 도식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건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들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6-24절의 상황으로써 요셉과 형제들이 첫 번째로 대면하는 장면입니다. 이 두 번째 장면은 첫 번째에서 언급된 상황조성에 이어 한층 더 진행된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년시절 요셉이 꾼 꿈이 문자적으로 실현되었음을 증언합니다. 이 사실은 지속되는 위험과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해 줍니다.
또 이 두 번째 장면에서는 죄에 대한 철저한 하나님의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가도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고 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를 멀리해야 한다는 교훈을 말해줍니다.
쇼키 요코이(Shoichi Yokoi)라는 한 일본인 병사는 2차 세계 대전의 전세(戰勢)가 일본군에게 불리해지자 괌 섬에 있는 한 동굴로 잠적해 버렸습니다. 그는 적에게 목숨을 빼앗길까 두려워 28년 동안이나 그 정글 속에 숨어 살면서 밤에만 나와 돌아다녔습니다. 이 은둔자는 그 오랜 세월 동안 개구리, 들쥐, 달팽이, 새우, 호두, 밤, 망고 열매 등을 먹고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또한 나무껍질에서 얻은 삼베 같은 천으로 바지와 재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요코이는 후에, 괌 정글 전역에 뿌려진 삐라를 보고서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밖으로 나가면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두 명의 사냥꾼이 그를 발견하여 더 이상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요코이는 자유를 얻었고 새 옷과 음식을 얻었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잃어버린 28년이란 그 긴 세월은 결코 돌려받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 역시 동생을 팔아넘긴 그 자책으로 인해 22년 이상을 두려움 속에서 가슴 졸이며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죄의 동굴로부터 과감히 탈출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장면은 25-38절의 상황으로써 요셉의 시험을 받고 야곱의 아들들이 귀향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의 장면은 앞부분 18-24절과 연결되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보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건 속에서 자신들의 오래된 죄를 자각한 형제들에게 철저한 회개의 과정을 갖게 하여 돌아서게 하는 압박이 가해지는 장면인 것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우리의 죄는 아무리 깊이 숨겨져 있다 해도 언젠가는 드러나고 만다는 사실을 교훈해 줍니다. 또 죄에서 돌이킴은 죄에 대한 인식이나 후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 짓는 행위를 멈추는 180도 변화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죄의 깊은 뿌리는 철저한 과정을 통해서만 소멸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세기 42장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관심을 기우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허물 많은 야곱의 집안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심을 기울이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성경 기록은 철저히 선민(選民) 중심의 역사라는 점이고(사 43:1-7); 둘째, 선민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속한다는 점이며(시 48:14;사 49:15, 16); 셋째, 하나님의 섭리는 허물 많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결국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점입니다(롬8:28). 우리가 볼 때, 이 인간세계는 인간들만의 세계요 역사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하나님의 경륜의 장이고,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관여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는 철저하게 그 분이 선택한 사람들이 중심이 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의 선민들은 하나님의 도구요 쓰시는 그릇들입니다. 요셉처럼 시련을 잘 견디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축복받은 성도들이 되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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