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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01 11:22
창세기 026: 노쇠한 아브라함과 전능한 하나님(창 17: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038  
창세기 026: 노쇠한 아브라함과 전능한 하나님(창 17:1-8)

본문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노쇠한 아브라함과 전능한 하나님과의 극적인 대조입니다. 인생의 황혼기라 할 수 있는 99세의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성호는 ‘전능한 하나님’이었습니다. 흑과 백처럼 혹은 음부와 낙원처럼 극적인 대조를 보이는 장면입니다.
이 전능한 하나님이 노쇠한 99세의 아브람에게 나타나 하신 명령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절)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의 문구적인 의미는 ‘너는 내 얼굴 앞에서 완전하게 걸어라’입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할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지시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하게 믿지를 못하고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나 17-18절에서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지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고 한 불신적인 처사 때문에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따끔함 명령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 노쇠한 99세의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은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2절)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4절)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란 표현, 곧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란 표현입니다. 여기서 ‘언약’이란 말은 ‘베리트’란 히브리어인데요, 본래는 ‘족쇄’나 ‘의무’를 뜻하였습니다. 이 말, ‘베리트’는 쌍방이 서로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결속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언약’은 두 당사자가 서로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기로 한 구속력을 의미합니다. 이 말의 용도를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첫째는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조약의 의미이고요, 둘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계약’ 또는 ‘언약’의 의미입니다. 이 두 번째의 의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서 이 약속 안에 포함된 의무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과 체결하시는 은혜로운 약속을 말합니다.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 노쇠한 99세의 아브람에게 주신 또 다른 약속은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5-6절)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야곱과 베드로 그리고 바울의 생애에서 보듯이 개명자들의 생애에 매우 중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으로써 한 개인의 인격과 종교적 성향과 삶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영육간 노쇠해 있을 때 나타나셔서 당신의 완전한 능력으로 노쇠한 인간조차도 풍성케 하실 수 있는 ‘엘 샤다이, 전능의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브라함은 전능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후사문제를 인간적인 지혜와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아브라함은 자신의 노쇠함과 무능함을 철저하게 깨달을 수 있었고, 자신의 힘으로 얻어 보려고 했던 잘못된 삶의 태도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자신을 향하여는 죽은 자이지만, 하나님을 향하여는 산 자로 그 존재가 확연히 달라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고귀한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이란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으로 고침으로써 그가 단순히 한 가문의 조상만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조상이 될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택하신 자를 언제라도 풍성케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아직 약속의 후손조차 갖지 못한 아브라함을 많은 무리의 아버지란 공적인 인물로 호칭함으로써 당신께서 지금까지 주신 언약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그를 통해 이루실 인류구원의 대역사를 시작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생을 얻어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히 11:8-9).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 또한 ‘죄인’이란 이름에서 ‘의인’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란 이름으로, ‘성도’란 이름으로, 신분의 변화를 갖게 된 것이며, 이 축복은 우리 인간들의 자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아브라함처럼 새 이름을 받은 자로써 자신에게는 죽은 자요, 하나님에게는 산 자로 살아가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갈 2:20).
 전능한 하나님이 노쇠한 99세의 아브람에게 주신 또 다른 약속은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7-8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일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 모두에게 상속적인 개념에서 적용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7절),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8절)는 하나님의 선포가 자녀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물론 이 축복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자녀들도 신앙훈련을 잘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한 잠언 22장 6절의 말씀을 명심하여 자녀가 혼자의 힘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을 깨닫고 살아갈 수 있는 때까지 우리 부모들은 최선을 다해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훈련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는 것 이상의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억만금의 유산보다 신앙의 유산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성도들이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가치를 알려고도 하지 아니하고, 또 알지 못하고 살뿐 아니라, 오히려 땅에 놓고 짓밟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엘 샤다이 하나님이 우리 자녀의 하나님이 되는 가장 위대한 상속을 물리는 우리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약간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언약과 명령들에 보인 창세기 12장 이하에 나타난 반응들을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큰 민족으로 만들며 그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때의 하나님의 명령은 “네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 명령을 준행하여 고향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한 머나먼 길을 떠납니다. 천성을 향해서 떠나는 신앙의 순례라는 것이 이런 것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영원한 세계를 향해서 떠나야하는 길은 믿음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13장 14-18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게 되며, 그들에게 가나안을 줄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때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은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최우선적인 일이 제단을 쌓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15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갈라놓은 희생제물사이를 지나심으로 공식적인 언약을 체결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게 되며 그 땅을 그들에게 줄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때의 하나님의 명령은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는 것이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약속이 성취될 징후는 보이지 않고, 몸은 한없이 노쇠해 가는 상황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7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고 그 땅을 영원한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때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은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언약을 준수하며 모든 남자들에게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었고, 아브라함은 99세의 노쇠한 노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집안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아브라함이 노쇠하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여 따랐다는 점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은 히브리어 ‘엘 샤다이’의 번역입니다. 언약을 능히 이룰 능력의 소유자, 불가능한 것이 없는 능력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나이 늙어 남성의 능력을 상실한 아브라함과는 매우 대조적인 이름입니다. 이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가십니다. 이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믿고 순종하는 일뿐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지는 것이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무엇이든 간에, 성도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각자의 약속들이 있을 것입니다, 의심치 말고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보이도록 힘씁시다. 우리 대에서든, 아니면 우리의 후손의 대에서든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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