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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01 11:24
창세기 030: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창 18:16-33)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121  
창세기 030: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창 18:16-33)

본문 창세기 18장 16-33절은 인간 공동체의 보존에 의로운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 특히 중보기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줍니다. 이런 사람 열 명이 없어서 망하게 된 소돔과 고모라성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의로운 사람이 많아야 망하지 않는다는 귀한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길가는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수행천사들이었고, 그가 행한 선행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으며, 소돔성과 고모라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타락한 도성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았고, 오히려 몸부림치듯이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그 도성들과 성민들을 보존해 주실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총 여섯 번에 걸쳐서 간청을 했는데요, 그 내용을 보면, 의인의 수가 소수라고해서 의인들을 악인들과 함께 멸하는 것이 가당한 일입니까? 오히려 소수의 의인들을 인하여 다수의 악인들을 용서치 않으시겠습니까? 또 “내가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란 말을 두 번,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란 말을 두 번 사용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간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인간성, 곧 그의 사람됨과 신앙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의인 열사람이 없는 악한 도성들이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브라함이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악한 도성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오십 명에서 시작하여 사십오, 사십으로 오명씩 줄여갑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생각, 곧 그의 기대감이 잘 드러난 부분입니다. 적어도 오십 명 정도의 의인은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사십오인, 그것도 아니라면, 사십인 정도는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던 아브라함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듯이 아브라함의 심경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절망감이 그를 덮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기대감을 반영한 오인씩 줄여가던 간청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삼십 명, 이십 명, 열 명까지 그 숫자를 크게 줄여서, 거의 포기상태로 간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열 명의 의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는 끊겠고, 하나님은 떠나셨으며,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여섯 번까지, 50에서 10까지 그 가능성을 열었고, 응답을 받았지만, 결국 소돔과 고모라성의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죄악성은 의로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헛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기도가 무가치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에서 시작하여 여섯 번 만에 멸망의 상한선을 의인 10명으로까지 끌어내리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청을 일일이 받아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의인이 열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의 한계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한계성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고, 여섯 번의 성공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그 중요성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의 기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거룩한 용기의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감히 하나님의 면전에서 여섯 번이나 중보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내가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란 말을 두 번,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란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대에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지엄하신 하나님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용기는 사람을 살리려는 거룩한 용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시퍼런 독기어린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병자들을 고치셨던 그 용기가 바로 거룩한 용기였습니다. 그런 용기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굳이 한 가지 더 예를 든다면, 강도 만난 이웃을 보고서도 율법주의에 메어 모른 체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제사장이나 레위인과는 달리 강도에게 큰 친절을 베풀었던 사마리아인의 그 용기가 바로 거룩한 용기였습니다. 그런 용기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리더십에 도전장을 내밀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하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는 모세의 그 용기가 바로 거룩한 용기였습니다. 그런 용기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서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모르니 부디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예수님의 그 용기가 바로 거룩한 용기였습니다. 그런 용기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티끌과 같은 나라도”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표현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무능력과 보잘것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피조물로써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을 품고 강구했다는 뜻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누굽니까? 그는 자신의 미약함과 유한함을 알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자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겸손의 기도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자랑만 늘어놓는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고, 회개의 눈물을 뿌리며 가슴을 치는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듣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의 효용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여섯 번이나 응답을 이끌어냈던 아브라함의 기도처럼 역사하는 힘이 강한 것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강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셋째,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섯 번이나 끈질기게 기도했던 아브라함의 기도는 우리가 꼭 본받아야할 기도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밤이 맞도록 붙들고 놓지 않으며 씨름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축복을 받았던 그 결사적이고 끈질긴 기도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였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누가복음에서 끈질긴 기도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끈질기게 간청하였을 때에 그도 그녀의 간청을 외면할 수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끈질긴 간청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 것”을 가르치신 것이라는 토가 붙어있는 비유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결코 실패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는 지엄하신 하나님 앞에서 여섯 번이나 간청을 드려 여섯 번이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가 위해서 기도했던 소돔과 고모라성이 끝내 멸망을 당하고 만 것은 그의 기도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성이 극도로 타락한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열 명까지를 간구한 후에는 일곱 번째 기도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의인이 열 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에 실망하고 절망하여 더 이상의 기도를 올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면목이 없어서 더 이상은 기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중보기도를 쉬지 맙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 강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쉬지 맙시다. 기도할 때에 거룩한 용기를 가지고 합시다. 겸손하게 합시다. 끈질기게 합시다. 인내를 가지고 합시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소원들마다 들어 응답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기도하는 것 자체가 겸손이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삶은 인생을 진지하고 겸허하게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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