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32: 롯과 두 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창 19:30-38)
창세기
19장 30-38절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파멸과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롯과 두 딸의 비극적인 삶이 실린 글입니다.
쾌락에 미친
소돔사람들에 의해 갈가리 찢길 뻔 하였고,
불타는 소돔성
불구덩이에서 극적으로 목숨만 건졌으나 전재산과 아내를 잃은 롯과 어머니를 잃은 두 딸이 겪었던 극심한 고통은 공포와 외상 후 스트레스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점에 주목할 필요를 느낍니다.
첫째는 롯과 두
딸의 상황인식방법과 문제해결방법에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롯과 두 딸은
아브라함한테 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위해서 살기 좋은 지역을 양보하였고,
전쟁포로가 된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한 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왜
아브라함에게 가지 않고 동굴로 들어갔을까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는 한일장신대
이종록 교수는 극단의 비상 상황에서 가장 목숨이 위태로웠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롯의 두 딸이었고,
그녀들에게 남은
것은 모성 본능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재산과 아내를 잃은
롯의 고통도 딸들 못지 않았을 것입니다.
셋째는 타민족과의
갈등과 폄하,
역사왜곡,
곧 역사를 쓰는
이스라엘인의 입장에서 모압과 암몬 족속에 대한 편견은 없었는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를 느낍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를 시아버지로 두었던 며느리 다말이 남편과 둘째 시동생을 잃고 나서 후사를 걱정한 나머지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대를 잇게
하였을 뿐 아니라,
유다왕족혈통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반면에 정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놓였던 두 딸이 부친을 술 취하게 만들어 잠자리에 든 후에 모압과 벤암미를 잉태하여 이스라엘 인근의 두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였다는
점은 폄하해도 좋을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 민족들 간의
평가는 그들의 불륜이나 혈통에서 찾기보다는 그들의 신앙의 우열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형태의 우상이나 신화도 없고,
여신도 없는 차원
높은 인격신 야훼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반면에 모압족속은
그모스(Chemosh)라는 우상을,
암몬족속은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몰록(Moloch)이라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들 세 민족 간의
우열은 혈통문제에서보다는 그들의 정신세계와 신앙세계에서 나타납니다.
불행하게도
정신세계가 심히 피폐해진 롯과 두 딸에 뿌리를 둔 모압과 암몬은 차원 높은 야훼신앙을 이어받지 못하고 저질의 우상숭배에 빠져들면서 같은 피가
흐르는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에게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베푸시고,
죽음을 면하게 하신
후에 소알성에 머물게 하셨지만,
롯은 공포심 때문에
도시를 떠나 산으로 피신하여 그곳 굴속에서 두 딸과 생활합니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
굴속에서 개방적인 미래를 펼치지 못한 두 딸들이 도달한 결론은 과히 정신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롯과 두 딸은
엄청난 외부 충격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롯과 두
딸은 어떤 다른 대안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극도의 정신적인 장애를 앓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롯과 두 딸에게서
나타난 이런 일련의 정신적인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부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를 말합니다.
심각한 외상적인
사건은 전쟁,
자동차
사고,
폭행,
강간,
테러,
폭동,
지진,
홍수,
화산 폭발 등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으로 극심한 충격을 받은 피해자에서 그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
외상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경험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꿈에 계속 나타난다
거나,
반복적으로 그
사건이 생각난다 거나,
마치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하거나 느끼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그러한
외상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회피하거나,
그 사건의 중요한
부분을 회상하지 못하는 경우이며,
또 그 반대로
전과는 다르게 반응이 둔화되는 경우로써 활동이나 흥미가 감퇴되고,
정서적으로 위축되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불면증,
분노의
폭발,
집중력의
감퇴,
놀람 반응 등과
같은 과민현상이 지속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상태와 더불어
우울,
불안,
일상생활에 대한
집중곤란,
흥미상실,
대인관계 에서
무관심하고 멍청한 태도를 보이면서 짜증,
놀람,
수면 장애 등을
보입니다.
정신적인 무감각과
부정,
피로,
두통,
근육통 같은
신체증상 등이 나타나고,
흔히 기억장애나
공황발작,
미칠 것 같은 과잉
행동,
위축도
나타납니다.
넷째는
착각,
환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고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보이거나 사고 경험과 비슷한 위험 상황을 회피하며 그런 비슷한 자극으로도 증세가 악화되기도 합니다.
다섯째는
약물남용이나 알코올남용이 발병할 수도 있습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
중 5~75%에서 이런 장애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겪는
재난은 대개 전장에서의 경험이며,
여성의 경우는
습격이나 강간이라고 합니다.
어느 연령층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나 청년기에 가장 많고,
이혼,
사별,
신체불구,
사회적 위축과 많이
관련된다고 합니다.
요즈음
같으면,
항우울제와 같은
적절한 약물이나 단기 정신치료를 실시하여 고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했던 롯과 두 딸은 공황에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소돔성의 파멸로
인한 충격이 롯으로 하여금 두 딸들을 굴속으로 데려가게 했고,
두 딸들은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는 폐쇄적인 사고에 머물게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의 도리’란 혼인 관습을 말한
것입니다.
동굴은
죽음,
무덤,
음부,
지옥,
자기감옥,
정신적
감옥,
폐쇄적 자폐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동굴에 갇히는
현상을 코쿤(cocoon)이라고 하는데,
코쿤이란 누에고치란
뜻입니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보호받을 목적으로 타인과의 접촉이나 교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거부하며 외부와의 단절을 선언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을 ‘히키코모리’라 부르는데,
그 수가 일본인
전체인구 가운데 1퍼센트에 해당되는 130만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20~30대라고 합니다.
히키코모리의
공통점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가정에서는 불화와
폭력에 시달린 끝에 부모와 대화가 단절됐으며,
인터넷 게임에
중독됐다는 점입니다.
경기침체와
청년실업률 증가도 이런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시키는 원인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오늘 롯과
두 딸에게서 이런 비극적인 증상을 보게 됩니다.
롯은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적어도 세 가지의 교훈은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세속도시문명을
동경하거나 환락의 마약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롯은 스스로 타락의
성 소돔을 선택했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딸들을 그곳 사람들에게 시집보내어 사위를 맞으려고 하였습니다.
야훼신앙의 끈이
끊기는 불행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소돔성 심판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롯은
소돔성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머뭇거렸고,
그 바람에 더 멀리
피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롯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 대한 깊은 뜻과 자비를 헤아려 알려고 하기보다는 공포에 휩싸였고,
소돔성에서는 두
딸들을 우상숭배하는 이방인에게 시집 보내려고 하였습니다.
마지못해 소돔성을
탈출하던 부인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딸들은 동굴에서
나와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 했어야 했지만,
아버지를 통해서
후손을 이어가겠다는 비도덕적인 생각까지 스스럼없이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정황들로 봐서 롯은 가족들에게 신앙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비극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셋째,
동굴과 같은
폐쇄적인 사고나 자폐적 공간에 갇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교회에 출석하여
성도들과 친교를 나누는 한 적어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롯의 실수는
개방적인 자연과 공간을 버리고,
동굴을 찾아
들어갔다는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산속
동굴을 택했습니다.
롯은 일생일대에 큰
실수를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가 처음
아브라함을 좇아서 갈데아 우르를 떠난 것은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시문명을 동경한 나머지 소돔성을 선택한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소돔성은 죄악의
도성이었으며,
파멸을 맞이할
운명의 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죽음의 소굴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소돔성을 빠져나와 소알성에 거하게 된 롯이 이번에는 산속 동굴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을
두 번 죽이는 행위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도성에
거하지도 않았고,
동굴 속에 갇히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거한 곳은
태양이 밝게 비치는 넓은 광야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동무로
삼은 것은 죄악을 먹고 마시는 도성의 사람들이 아니라,
저 높고 푸른
하늘에 계신 야훼 하나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