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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7-10 15:44
하나님께 대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살후 1:3-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406  
하나님께 대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살후 1:3-12)

데살로니가서는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최초의 것이며, 신약성서 27권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쓰인 글입니다. 이들 서신은 그리스 최남단에 위치한 아가야도의 수도 고린도에서 주후 51년에서 52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일행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간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천막업자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고, 그들로부터 충분한 일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장기체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린도는 인구 10만 명 정도의 도시였고, 상업, 체육, 종교, 문화 등이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에 선교거점으로 삼기에 좋았을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9KM 동쪽에 위치한 이스트미아에 포세이돈 신전이 있었는데, 이곳 이스트미아에서는 포세이돈에게 헌정되는 대규모 축제와 운동경기를 2년에 한번씩 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는 천막수요가 아주 많았던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곳에 교회를 세워 선교거점으로 삼고,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뵈레아교회 등에 디모데 등의 동역자들을 파송하여 사역토록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바로 이곳 고린도에서 기록되어 인편으로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서신들의 배열은 크기를 잣대로 삼았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가 먼저 쓰인 글인지, 후서가 먼저 쓰인 글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전서가 후서보다 앞에 놓인 것은 후서보다 전서가 길기 때문입니다. 어느 서신이 먼저든 간에 바울이 이 두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시련 중에 있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경건하고 성결한 삶을 살며, 일상생활에 소홀히 하지 말도록 권면하고, 주의 재림을 바르게 알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후서의 내용을 보면, 전체 47절 가운데 38퍼센트인 18절이 종말에 관한 내용일 정도로 재림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으려고 힘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먼저 배교와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을 언급하면서 주어진 생활 속에서 경건하게 살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이 정도에 이르면 “데살로니가서의 주제는 주의 재림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난주 우리는 전서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는 삶”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오늘은 후서를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전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음란을 버리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인데, 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으로 받으시고 기쁨으로 여기실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하는 일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흘린 땀방울이 믿음으로 행한 노동이 되고, 우리의 노력한 수고가 사랑으로 행한 것이 되고, 우리가 인내하며 견뎌온 일들이 소망으로 행한 일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후서의 내용을 살펴보게 될 텐데요, 1-2장은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기도로 되어 있고, 3장은 성도들을 위한 축복과 권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1-2장을 보면,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와 기도를 드렸던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드러나 있는데, 그것들은 성도들을 위해서, 또 그들의 성장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였습니다.
첫째, 우리는 데살로니가후서 1장과 2장에서 성도들을 위하고 그들의 성장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울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장 3-4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칭찬하고 또 그들을 인해서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칭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것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일이란 점이고, 또 감사와 칭찬보다 인간관계를 튼튼하게 하는 더 큰 능력과 지혜가 없다는 점입니다.
뉴욕의 한 여교사가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생들에게 상을 주기로 마음먹고 파란 리본을 달아주었습니다. 리본에는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입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리본 세 개를 더 주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달아주라고 했습니다. 한 학생이 회사의 부사장에게 찾아갔습니다. 자신의 진로문제를 잘 지도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사장님은 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라고 말하고는 리본을 달아드렸고, 한 장을 더 주면서 가장 소중한 준에게 달아주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부사장은 사장에게 찾아가 파란 리본을 달아 주면서 “사장님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라고 말씀드리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본래 사장은 인색하고 고집 세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말을 듣자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사장은 집에 와서 17살 된 아들을 불러 놓고 말하기를, “내가 오늘 생전 처음으로 소중한 사람이란 말을 들었다. 내가 차안에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굴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것은 바로 너였다. 공부 안한다고 소리치고 방정리가 안됐다고 야단을 치지만,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너다.” 이 말을 듣고 아들은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말하기를, “사실, 아버지가 저를 너무나 미워하시는 줄 알고, 내일 아침에 자살할 계획이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하마터면 잃을 뻔한 아들을 살려내었던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칭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바울과 또 바울의 칭찬을 듣게 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먼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칭찬을 듣게 된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장 3-4절을 보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첫째로 믿음이 일취월장하여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둘째는 피차 풍성하게 사랑하였으며, 셋째는 온갖 핍박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인내와 믿음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전서 1장 3절의 말씀대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믿음에는 역사가 따랐고, 그들의 사랑에는 수고가 따랐으며, 그들의 소망에는 인내가 따랐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과 인내에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풍성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사랑으로 또 소망으로 일궈갔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바울로부터 아낌없는 칭찬을 들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들의 열매가 사도 바울에게는 영광과 기쁨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영광으로 받으시고 기쁨으로 여기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미 살펴본 대로 1장 3절과 2장 13절을 보면, 바울은 성도들을 칭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항상 했고, 또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과 인내는 바울이 친히 본을 보이고 잘 가르친 데서 비롯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을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당연한 수고로 생각하면서 항상 감사했던 분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그의 성공적인 삶의 비결을 찾을 수가 있고, 또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기 욕심과 이기심으로 하지 않고, 오로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인내로 했기 때문입니다.
칭찬하는 일과 감사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만,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소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또는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실패하게 되는 원인이 칭찬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하지 않는 일에는 반드시 불평과 원망과 책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고, 사랑으로 하고, 소망으로 하는 일에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나 전도에 임하는 자세뿐 아니라,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믿음을 가지고 행한 열매들이 얼마나 있었느냐, 사랑 때문에 흘린 눈물과 땀방울이 얼마나 되었느냐, 소망 중에 얼마나 참고 견뎠느냐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고린도전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영에 속하지 못하고 육에 속하여 분열과 음행과 법정송사와 우상숭배와 고기 먹는 문제와 예배질서의 문제와 헌금문제와 사도 바울을 적대시하는 등의 문제를 갖게 된 모든 근본 원인은 그들이 믿음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지 않고, 소망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해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고”(고전 2:1), 말과 행동에 본을 보였으며(고전 4:16), 마땅히 받아 누려야할 권한을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고전 9:15). 바울은 모든 일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했던 것입니다. 이 점을 살펴 볼 수 있게 하는 성구가 고린도전서 9장 18-22절까지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전 9:18-22).
둘째, 우리는 데살로니가후서 1장과 2장에서 성도들을 위하고 그들의 성장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권면과 책망에 앞서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한테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은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고 칭찬하고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원망과 불평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원망과 불평과 책망보다는 할 수 있는 대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였고, 칭찬과 감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후서 1장 11-12절에서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2장 16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으며, 여러 가지 말로 축복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3장 3절에서는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고, 3장 16절에서는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고 축복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망이나 불평이나 원망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중보의 기도와 아낌없는 칭찬과 수고에 따른 감사의 말과 축복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하지 않는 것은 음란한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하지 않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인내에 진정한 의미의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형제와 자매와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칭찬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축복하지 못하는 데는 믿음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지 않고, 소망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ꡔ대자ꡕ에서 깨끗한 걸레와 튼튼한 버팀목과 강한 밑불을 강조하였는데, 밑불은 사랑이요, 버팀목은 믿음이요, 걸레는 소망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깨끗한 걸레처럼 마음이 순수하고 소박한 소망으로 형제와 자매와 이웃의 더러움을 닦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소박하면 분을 내지 않습니다. 원망과 시비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칭찬과 감사와 축복의 말이 넘쳐납니다. 튼튼한 버팀목처럼 믿음이 강하고 흔들리지 않으면 상대방의 말에나 행동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나를 꺾으려했던 그들이 오히려 휘어지고 꺾이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형제와 자매와 이웃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휘둘리게 되어 불평과 불만, 원망과 시비와 분으로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한 밑불처럼 뜨겁게 타는 사랑을 가지면 모든 원망과 시비와 불평과 불만을 불사를 수 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칭찬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감사하고 칭찬하고 축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이 믿음으로 행한 노동이 되고, 우리가 노력한 수고가 사랑으로 행한 것이 되고, 우리가 인내하며 견뎌온 일들이 소망으로 행한 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땀과 수고와 인내가 풍성한 결실로 맺어지길 바라며,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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