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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9-14 18:0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22-4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308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22-42)

[오후 성경공부 내용]
요한복음 10장 22-23절에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라고 하였습니다. 7-9장까지의 상황이 초막절과 연관된 말씀들이었다면, 10장은 수전절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금년 2003년의 경우 초막절은 우리나라의 추석날짜와 동일한 날에 지켜지고 않고 한달이 늦은 10월 11(음9.16)일에 시작되어 17일까지 지켜지게 됩니다. 그리고 금년 수전절은 12월 20일에 시작되어 27일까지여서 7장에서 10장까지의 시간적 간격은 대략  2달 반 정도입니다.
수전절은 기슬레우월 25일에(양력 11-12월에 해당함) 시작되는 성전봉헌절(하누카)로 8일간 8개의 촛불에 매일 하나씩 불을 밝혀가기 때문에 '빛의 축제'라고도 불립니다.
2168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던 헬라제국의 에피파네스 안디옥쿠스 4세(B.C. 175-164)는 대제사장직을 매매하고, 유대교를 금지시켰으며, 성전을 약탈하였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헬라화를 추진하였습니다. 그 일환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올림피아의 제우스에게 봉헌하였고,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이 뿐 아니라, 안디옥쿠스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유대교의 모든 종교의식 특히 할례, 안식일, 절기들을 사형으로 금지시켰고, 율법서의 소유도 사형으로 금지시켰습니다. 그 대신 안디옥쿠스는 유대인들에게 연극, 스포츠, 대중탕사용, 나체운동, 테두리 넓은 모자 착용 등과 같은 헬라문화와 관습을 강요하였고, 이에 젊은 사제들 가운데는 제단을 버리고, 원반던지기를 연습하며, 할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수술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타디아란 이름의 제사장과 그의 다섯 아들은 여기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숨어 지내던 하시딤(구별된 자들)의 무리와 힘을 합쳐 게릴라전을 펼치며 독립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 가운데 유다 마카베오란 사람은 뛰어난 전사였고 그의 활약으로 주전 165년에는 유대교 금지령을 해제하는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을 청결히 한 후에는 야훼 하나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불결하게 생각하는 돼지를 제물로 바침으로써 성전예배가 중지된 지 만 삼년만 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대로 새로 만든 번제 제단에 희생제물을 바치고 할렐(Hallel)을 노래하며 8일간 축제를 열었는데 그 전통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세기에 와서 유대인들은 수전절의 의미를 다민족 속에서 한 소수민족이 그들의 문화적 주체성과 종교적 신념을 지키고자 어떻게 노력해왔는가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카베오전쟁을 유대인이 타민족과 다를 수 있다는 권리를 찾기 위해 벌린 성전(聖戰)으로 생각합니다. 또 압제에 대항하는 길은 그 압제자들이 제거하려는 가치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지켜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마카베오와 그의 동료 하시딤(구별된 자들)은 안티옥쿠스 4세에 대항해서 싸우며 그가 제거하려고 한 유대교 가치와 예루살렘 성전과 제단을 지켜냈던 것입니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이자 시온주의자인 브랜디스(L. D. Brandis)는 수전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하누카(수전절)는 승리를 축하하는 마카베오축제이다. 그러나 단지 군사적 승리를 축하함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대한 영적인 것의 승리를 축하함이며 외부의 적인 그리스인들에 대한 승리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한 우리 안에 있는 적을 이겼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하누카는 또한 민중의 이익을 슬그머니 배신해온 무사 안일한 소수의 특권 권력계층에 대한 민중의 승리, 즉 귀족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이기도 하다(월간 성서와 함께 1986.1. 제118호).
이런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계절, 특히 냉기가 돌고 비가 자주내리는 겨울철(22절)에 예수님이 바른 가치 바른 진리로 민중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지배계층의 사람들과 목숨을 담보로 투쟁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치중하면서 민중의 이익을 배신해온 특권계층에 대항하여 자신의 몸을 던져 싸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봉헌절의 분위기 속에서 “성전된 자기 육체”(요 2:21)를 하나님께 드려 봉헌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당신의 사명을 성취하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심문과 죄목이 이곳에 다 언급되어 있음을 봅니다. 24절부터 38절까지가 공개적인 청문회내용입니다. 질문과 답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문: 당신이 정말 메시아인가를 밝히시오.
답: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내가 메시아인 것을 증거하지 않았소? 내가 말했어도 당신들은 믿지 않았소. 당신들은 내 아버지가 내게 주신 내 양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주어 영원토록 살게 할 것이오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24-30절).
문: 당신은 지금 신성모독죄를 범하고 있소. 당신은 사람인데 어찌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모세의 법에 따라 당신을 돌로 치겠소.
답: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선한 일들을 많이 행하였는데 나를 이단자로 몰겠단 말이오?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한 말씀도 못 읽어보았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는데, 하물며 아버지로부터 보냄 받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신성모독이라 한단 말이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않거든 나를 믿지 말고, 행하거든, 나를 믿지는 않을지라도 그 일만은 믿으시오.
예수님은 이 시기에 솔로몬 행각을 거닐며 가르치셨습니다(23절). 이 솔로몬 행각은 초대교회 설립배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단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하셨다는 의미보다는 초대교회가 이곳에서 세워지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을 탄압한 사두개파 지배세력들에 대항하여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독교진리의 숭고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투쟁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낮 시간대에 주로 성전 영내의 솔로몬 행각에 모여 말씀을 듣고 찬양과 기도로 공동예배를 드렸고(5:12), 저녁 시간대에는 가정에 모여서 성만찬(애찬)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 모여 말씀중심의 예배를 드렸고, 가정에 모여 성만찬 예배를 드리면서(행 2:46; 3:11; 5:12, 42; 20:7; 눅 24:53) 소수 인원들이 모인 모임이기는 했지만,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사두개인들의 탄압에 맞서나갔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찾기 위해 표적보기를 원했고, 그토록 원했던 표적들을 보았으나 믿지 아니할 뿐 아니라 믿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에게 가진 권력과 명예를 모두 다 내놓아야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입니다. 남북통일을 원치 않는 나라들이 어떤 나라들입니까? 모두 다 우리 주변의 힘을 가졌다하는 나라들아 아닙니까? 마찬가집니다. 가진 자들은 변화된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백성이 발전하고 깨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소유한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지키려고 수구세력이 되고 보수 세력이 되어 변화의 바람을 막고 인재를 거부할 뿐 아니라, 철저히 매장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은 참 가치를 지키는데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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