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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2 16:08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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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8,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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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40)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38절)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에는 ‘진리’라는 말이 유독 많이 나옵니다. 무려 22번이나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한복음이 말하는 진리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중요하게 볼 것은 이들 22번의 ‘진리’란 말이 대부분 예수님 또는 예수님과 연관된 단어란 점입니다. 이 내용을 몇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요한복음에서 ‘진리’란 적어도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이거나 기독론 곧 예수님에 관한 가르침을 뜻합니다.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고, 8장 32절에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으며, 5장 33절은 “. . .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핵심은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 곧 우리를 구원에로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진리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진리란 뜻이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면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는 진리를 알려고 몸부림치던 율법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한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을 선한목자로 설명한 것도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분이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 . .”고 하였고, 계시록 7장 17절에서는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행 4:12)고 설교하였습니다.
둘째, 요한복음에서 ‘진리’란 적어도 예수님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뜻합니다.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진리가 충만하신 분,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할만한 진리로 가득하신 분, 이 분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던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시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할 진리 그 자체이실 뿐 아니라, 진리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진리가 충만하시기 때문에 1장 17절에서는 진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통하여)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통하여) 온 것이라.”
셋째, 요한복음에서 ‘진리’란 적어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떤 것을 뜻합니다.
8장 40,45,46절은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분이시고, 태초부터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기 때문에 진리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진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그들이 그토록 기대하고 바랐던 메시아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국가의 번영과 세계지배에 뜻을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전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 수용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뜻과 소원에 맞춘 메시아를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배척하였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소원과 뜻에 하나님의 뜻을 꿰맞추려고 한 적은 없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뜻을 실현시키려고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하지 않는다면, 자칫 하나님의 뜻을 크게 그르칠 수 있다는 교훈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몰랐던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했던 빌라도 앞에 예수님을 재판받게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왕이 아니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다”(18:37)고 대답하셨고,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18:36)고 하셨습니다. 무지한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18:38)고 묻게 되고,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내어주는 또 다른 무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진리를 모른 채, 더러는 잘못된 곳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더러는 진리 따위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과 진리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에베소서 4장 17-24절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충고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예수 재판…체포~선고까지 위법투성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고발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체포영장 제시도, 진술거부권 등을 알려주는 ‘미란다 원칙’ 고지도 없었다.
예수님은 변호인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재판’은 억지혐의적용, 법적절차를 무시한 재판진행, ‘마녀사냥’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휘둘린 재판부의 무리한 판결로 점철돼 있다.
예수님의 죽음은 위협이 되는 존재를 제거하려는 기득권층횡포에 의한 것이었다. 기득권층의 계획은 성공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법’을 이용했다.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공정성을 잃은 법적용이나 잘못된 판결은 한 사람의 인생 뿐 아니라 국가나 역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예수에 대한 재판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동아일보 2000/12/18(월) 기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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