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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2 15:57
새 시대를 위한 예수님 영접(요 6: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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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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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위한 예수님 영접(요 6:16-21)
벳새다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날이 저물자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향했습니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예수님도 계시지 아니한데, 갑자기 큰바람이 불며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북서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노를 젓고 있었기 때문에 심한 파도와 어둠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잃지 않고 5킬로미터 정도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호수위로 걸어 오셨고, 제자들은 유령인줄 알고 두려워하였지만 나중에 예수님인 것을 알고 기쁨으로 영접하여 배에 모셨습니다. 그러자 배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다섯 번째로 실린 이 이야기는 앞서 우리가 살펴본 다른 기적들과 마찬가지로 ‘믿음과 생명’이 주제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영접’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폭풍이 몰아치는 죽음의 위기에서라도 건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화가 헌트 윌리암 홀만(Hunt W. Holman)이 그린 ‘세상의 빛’이란 명화가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집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는데, 문을 열 수 있는 손잡이가 없어서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고, 또 불이 꺼져 있어서 집안에 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이웃과 교제를 끊고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출입문밖에서 예수님은 등불을 들고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만일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온 집안이 빛으로 밝아질 것이고, 그는 주님과 더불어 먹고 교제하며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시록 3장 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고, 11장 25-26절에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넓은 곳이 10킬로미터나 되는 큰 호수입니다. 북서쪽에는 레바논 산맥과 그 산맥을 마주보고 서있는 높은 산 헬몬이 자리 잡고 있어서 강우량이 많은데다가 갈릴리 호수가 해면보다 210미터나 낮은 곳에 있어서 호수로 흘러드는 물의 양이 많고, 또 이들 양대 산맥에서 형성된 거센 돌풍이 계곡을 타고 내려와 호수 위를 지날 때면 작은 배들을 파선시킬 수 있는 큰 파도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갈릴리 호수가 놓인 특이한 지형 때문에 이런 돌풍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이용해서 호수 이편에서 저편으로 자주 이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돌풍을 종종 만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런 폭풍 중에서 물위를 걸어와 목숨을 건져준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했을 것이고, 이런 특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후에 여러 가지 신학적인 깨달음도 얻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을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라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가정 혹은 우리 교회를 바다를 항해하는 배라고 가정해 봅시다. 때때로 거친 풍랑과 파도를 만나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혀 어떤 방법이 없을 때 말입니다. 그 때가 바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사정을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억울함을 다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현장에 직접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찾아와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입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뢰할 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고, 병들어 죽어가던 왕의 신하의 아들이 고침을 받고, 병들어 38년간 일어서지 못했던 병자가 자리를 들고일어나 걷게 되고,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가 수천 수 만개의 보리떡과 생선이 되고, 성난 폭풍과 파도가 변하여 고요하고 잔잔하여집니다.
이 바다기적은 우리가 살펴본 다른 기적들과 마찬가지로 ‘새 시대’가 주제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인 빈들에서 일어난 기적이 예수님이 가져올 새 시대를 위한 것이었다면, 폭풍 중에서 제자들을 건져준 갈릴리 호수에서 일어난 기적 또한 예수님이 가져올 새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명의 떡 사건이 새 시대인 교회시대의 성만찬예식과 관련이 있다면, 예수님영접 사건은 새 시대인 교회시대의 세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넌 후에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것처럼, 비록 순서가 뒤바뀌기는 했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의 인도로 갈릴리 호수를 무사히 건넌 것과 빈들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매우 닮았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재앙 가운데 뇌성과 우박의 재앙(출 9:13-35)이 있습니다. 그 때 모세는 우박을 동반한 폭풍을 통해서 파괴를 초래하였지만, 예수님은 폭풍을 진압하여 고요와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모세는 자연재해를 가져다주었지만, 예수님은 재해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주셨습니다. 모세시대 즉 옛 시대에 속한 히브리인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예수님시대 즉 새 시대에 속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생명의 양식을 먹게 하셨습니다.
히브리민족은 모세의 인도로 옛 시대인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홍해를 건넌 후에 새 시대를 광야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광야시대는 가나안 땅을 목표로 하는 임시생활이었기에 또 다른 새 시대를 위한 나그네 생활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이 광야시대에 하늘로써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의 광야생활을 끝낸 후에는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착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곳 가나안 정착시대를 영구적인 것으로 착각하였고, 또 다른 새 시대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비록 메시아 시대를 간절히 바랐고, 기대하였지만,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 시대란 것도 가나안 정착시대의 연장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끊임없는 외침과 피압박의 설음을 면치 못했고, 그나마도 주후 70년 이후로 1948년까지는 나라도 없이 남의 나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무려 1,200만 유대인이 학살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온 것은 율법시대인 옛 시대를 끝내고 복음시대인 새 시대를 시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사탄에 메어 죄의 종으로 살았던 옛 시대를 청산하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 새 시대인 교회시대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히브리민족은 만나를 먹고도 죽었으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복음의 말씀은 영생하는 생명의 떡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시대 역시도 영원한 시대인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임시생활이자 나그네의 생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 저자들은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옛 시대와 새 시대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호수 이편이 떠나야할 옛 시대가 되고, 호수 저편이 꿈이 있고, 영생의 복이 있는 새 시대가 됩니다. 옛 시대를 떠나 새 시대를 향해 가는 데에는 히브리민족이 광야에서 40년간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 것처럼, 이집트에서 참혹한 노예생활을 했던 것처럼, 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결코 인생의 폭풍에 좌절되거나 삼킨바 되지 않고, 오히려 폭풍을 이기고 목적지인 영생복락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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