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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20 08:48
창세기 013: 하나님을 반역한 인류(창 6:1-2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164  
창세기 013: 하나님을 반역한 인류(창 6:1-22)

홍수 심판 이전에 온 인류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부패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가인의 후손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인 셋의 후손마저도 사람의 딸들과 혼인함으로써 타락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신세계의 자녀들과 정욕으로 인하여 혼인관계를 맺었고, 이러한 혼인풍조는 그들을 더욱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행동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에서 말씀하신 경고에 대한 증거를 노아홍수의 사건에서 찾게 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1. 하나님의 자녀들인 셋의 후손들까지 타락하였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 언급됩니다. 성경은 경건한 사람들을 가리킬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신 14:1, 잠 14:26). 셋은 아벨 대신에 태어난 아담의 아들입니다. 4장 26절을 보면, 셋은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았고 그 때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렸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셋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최초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들은 영적인 존재들이고, 신앙세계와 종교문화를 대표하는 자들이었으며, 항상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하심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상 주심에 합당한 삶을 살뿐 아니라, 이 땅에 진정한 안위를 가져오게 될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것을 소망하며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을 보였던 자들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의 딸들’은 세속문화와 문명을 시작한 가인의 후손을 가리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자로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속문화와 인본주의문화를 세웠고, 그의 후손들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타락은 노아시대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마저 경건치 아니한 가인의 후손들과 결합하였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자들과는 누구든지 배우자로 삼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세우신 혼인질서를 파괴하였습니다. 6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을 보고”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뜻이나 믿음과는 상관없이 외적인 미모만을 좇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주석가 랑게(Langer)는 “영적인 혈족을 찾는 대신 육체적 향락에만 치우쳤다”는 말로 설명하였습니다. 이 당시 셋의 후손인 하나님의 자녀들마저 안목의 정욕을 좇는 세상 풍속을 따랐던 것입니다. 혼인관계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부일처의 가정질서를 파괴하였고 다수와 혼인을 맺는 복수혼인의 양상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을 파괴하였고, 인간 사회의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그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적인 조건보다는 내면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신앙적인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보다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존재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지식과 노력으로 이 땅에서 독자적인 통치체제, 즉 자기들의 나라를 구축하고자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보다는 현세에서 좀더 아름답고 편하게 보이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구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들의 황금과 향락과 섹스문화와 우상숭배에 빠져들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습니다. 따라서 노아시대의 홍수심판은 장차올 최후심판의 예표이며, 천국과 지옥 혹은 교회와 세상의 미래에 대한 예표이기도 합니다. 홍수심판은 오늘날의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와 권면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노아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그림자이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대한 예표 입니다. 6장 8-22절은 노아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그를 통해 완성될 교회의 예표인 방주건설 및 방주 속에서 이어져 나갈 생명체의 보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노아방주를 그리스도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베드로는 죄인들이 물 속에서 죽고 의인들만 해변에 다다랐다는 점에서 노아시대의 홍수를 침례의 예표로, 방주를 교회로, 노아의 사역을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주석하고 있습니다(벧전 3:20-21).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5:29)고 말한 것처럼 노아의 사적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관계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방주의 수용능력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주는 포유류 3,500 종류, 조류 8,600 종류, 파충류와 양서류 5,000 종류의 각 쌍을 합한 35,000 마리의 세배인 105,000 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용적률을 갖고 있습니다. 높이가 14미터, 5층높이이고, 길이가 137미터, 축구장보다 훨씬 크고, 폭이 23미터, 그리고 용적량이 14,000톤 배수량이 20,000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민족들 사이에 33개 이상의 독립된 홍수기록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이집트와 스칸디나비아의 기록만 노아의 홍수와 다르고 나머지 31개의 홍수기록은 노아홍수의 기록과 일치하는 점이 대단히 많다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한자 가운데 배 船자는 배 주(舟)자에 팔(八)자 그리고 입 구(口)자로써 여덟 식구가 탄 방주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2. 그 결과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류 사회가 극도로 타락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씨로 남기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과 함께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93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분투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움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나 한번 진노를 발하시면 아무도 피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 곧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행할 때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며 자녀들을 도우십니다(롬 8:26). 이것은 성령님의 도우시는 사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신 세상과 연합하는 타락의 극치에 다다를 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십니다. 죄 가운데 그대로 방치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9)라고 증거 합니다.

3. 인류는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반역하였습니다.
죄의 권세 아래 놓인 인류는 죄의 상태에 계속 머무르면서 점점 더 타락하고 부패해져 갔습니다(5절). 처음 죄를 지을 때 두근거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던 마음도 습관적으로 죄악을 행하면 마음이 무뎌져서 양심에 화인 맞은 상태가 됩니다.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들은 패역 속에서 죄를 행하며,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죄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해 있습니다. 성도들은 죄를 범했을 때 책망하시는 성령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경고하시는 계시록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성령님을 근심케 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을 계속 할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를 기쁘게 받아야 합니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저버린 채 세상 문화를 만들어 갔습니다(4:16-24). 게다가 하나님의 자녀들마저 타락한 세상 문화에 물들어 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반역의 역사가 세상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신과 타락으로 행하는 역사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죄악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노아의 때,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시며 진노의 심판을 시행하셨습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16절),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의인 열명을 찾으시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먼저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하십니다(벧전 4:17).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악과 불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마 5:13-16),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마저 세상과 짝을 맺으면서 인류 타락의 역사가 더 가속화되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시어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은 당신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위함(벧전 2:9)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무시하고 세상과 연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져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6)고 무겁게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노아의 시대처럼 세상과 짝을 짓고 멸망당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자신들을 더욱 조심해야겠고, 셋의 후손들처럼 하나님을 섬겨 예배하고, 항상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하심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