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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30 11:14
대중문화와 미래 사회[로마서 12장 2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137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으로 인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전통과 권위를 무시하고, 절대진리나 절대윤리를 부정하며, 진리의 다원화와 가치관의 다중화와 인간의 자율성을 주장하며, 시간을 다투는 기동성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익명성과 결과만 좋으면 과정을 따지지 않는 실용성과 하나님을 거침없이 모독하는 불경성에 익숙해져 가고있다. 또 소유보다는 임대개념의 임시성과 일회성 문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고, 경박한 합리주의, 이성주의, 과학주의, 편의주의, 배금주의, 향락주의, 기술만능주의에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다. 이로 인해서 교회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고, 교인들도 세상의 유혹에 끌려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아주 가까운 장래에 경험하게 될 정보통신과 기술과학의 발전은 세속화의 속도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때에 우리 신앙인들은 바른 미래관을 가져야 하겠고, 바른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줄로 안다. 그래서 대중문화와 미래사회를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학자들은 미래 사회를 종교 없는 사회, 니체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 없이 사는 초인적 사회, 하나님보다는 컴퓨터나 로봇에 의존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미래사회에 나타날 현상과 신앙생활에 미칠 충격들에 대해서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첫째, 미래사회의 현상을 3T로 표현한다. 3T란 Transportation, Telecommunication, Travel의 머릿글자로써 교통, 통신, 관광을 말한다. 교통, 통신, 관광의 발달은 사람들을 교외나 해외로 빼돌리기 때문에 출석교인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서 휴양지 교회나 등산객을 위한 편의점식 교회가 등장하고 있다.
둘째, 미래사회의 현상으로 사이버펑크족의 증가를 들고 있다. 사이버펑크(cyberpunk)란 인공두뇌학이란 뜻을 가진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이상한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을 상징하는 펑크(punk)의 합성어로써 컴퓨터 세대 또는 X세대를 의미한다. 이들을 네티즌(netize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네티즌(netizen)이란 말은 컴퓨터 통신망을 의미하는 net와 시민을 뜻하는 citizen의 합성어이다. 사이버펑크족 또는 네티즌의 특징을 PANTS로 표현한다. PANTS란 Personal, Amusement, Natural, Trans-border, Self-loving의 머릿글자로써 개인주의, 흥미본위, 자유분방, 탈 성별 또는 탈 국경, 그리고 자기 사랑을 의미한다.
네티즌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고독한 존재들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보내기 때문에 사람과의 만남의 기회가 줄어들게 되고 자연히 공동체 또는 연대정신이 희박해진다. 컴퓨터를 통해서 가상현실을 경험하게 되고, 통신을 통해서 투명인간이 되기도 하며, 폭력성 영화나 포르노그라피를 즐기며, 성인용 사이트에 접속하여 해괴 망측한 어른들의 타락을 경험한다. 이 모든 것이 자기 방에서 혼자 하는 일들이다. 여기에 네티즌의 비극이 숨어 있다.
네티즌들은 흥미본위로 살아간다. 외로움과 단조로움과 권태와 공허감에서 벗어나 보려고 짜릿한 맛을 추구한다. 그러나 쾌락의 수명은 짧기 때문에 더 강렬하고 색다른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게 된다.
네티즌들이 주도하는 대중문화는 "많이 팔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 인기 있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라는 왜곡된 가치관과 실용주의가 낳은 타락한 세속문화이다. 네티즌들의 '재미'와 '흥미'본위의 삶이 바로 대중문화의 생리이자 생성원리이다. 결국 '재미'에 중독된 네티즌들은 어떻게든 기발하고 새로운 재미를 찾는데 온 힘을 쏟게되고 또 대중문화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 돈만 벌면 된다는 배금논리에 의해서 지배된다.
네티즌들은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한 것을 좋아한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누가 나를 판단할 수 없다." 라는 '나만의 느낌,' '나만의 감정,' '나만의 경험'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목표가 마치 느낌과 감각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여기에 편승해서 대중문화도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부추긴다.
인터넷을 통해서 국경의 막힘 없이 온 세계를 넘나드는 네티즌들은 국경이나 성별과 같은 경계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남녀간의 성별이나 애국정신이 희박하고, 인터넷에 홈페이지와 같은 자기 공간을 구축해 놓고 나르시스와 같은 자기 도취에 빠져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네티즌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참을성이 약하다. 대부분의 일을 컴퓨터나 기계가 쉽고 빠르게 처리해 주기 때문에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 또는 피곤한 것을 싫어한다. 현대사회가 먹고 마시는 일에서부터 보고 듣고 물품을 구매하는 일까지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 편리성과 신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셋째, 미래사회의 현상으로 거미시대의 등장을 말한다.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교수는 "21세기 정보사회의 마인드"란 주제의 강연에서 근대문명을 가능케 한 개미와 같은 조직중심 시대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며, 앞으로 오는 시대는 거미와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라고 예견했다. 개미처럼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보다는 거미처럼 인터넷망에 걸려드는 정보를 먹이로 외롭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는 것이 힘'이던 시대는 사라지고, '찾는 것이 힘'인 시대가 도래한다.
요즘 미국은 대학의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고, 필기도 노트북에 집적한다고 한다. 한편, 미국의 법학대학들의 교수들과 학생들은 렉시스 웨스트로우(Lexis-Westlaw)라는 법률정보 시스템으로부터 무료로 모든 판례, 정부 간행물, 신문, 잡지, 학술지 등을 24시간 온라인으로 공급받고 있어서 교수들과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판례집을 뒤지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컴퓨터를 통해서 집에서도 얼마든지 필요한 자료를 뽑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미래사회의 현상으로 사이버 스페이스를 말한다. 인터넷 통신망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서 세계 어느 곳이든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얻고 홍보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이버 스페이스를 이용한 전자교회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재택 산업이 발달하여 재택 근무나 재택 수업 등이 일반화되는 때가 오면 재택예배도 가능해 지리라 본다. 이렇게 되면 자기 집 컴퓨터 앞에서 예배드리고 헌금은 홈뱅킹을 이용해서 교회구좌에 넣게 되고, 교회소식은 전자메일을 통해서 받아 보게되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도 경험하게 된다.
다섯째, 미래사회의 현상으로 정보통신의 가속도(speed)를 말한다. 전화선과 28,800bps 모뎀을 통해서 제공되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보다 300배 빠른 인터넷 서비스가 케이블 TV선을 이용해서 시범 실시되고 있다. 이쯤 되면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각종 정보를 모뎀이나 초고속 광통신 케이블을 통해서 문자뿐 아니라, 소리와 그림까지도 자기 방에 앉아서 책장 넘겨보듯 살펴볼 수 있게 된다. 현재도 스트림웍스 프레이어(Streamworks Player)와 리얼 오디어(Real Audio)라는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에서 다운(down) 받아 설치하면 인터넷을 통해서 제공되는 각종 텔레비전 방송이나 라디오 방송을 보기도 하고 청취할 수도 있다. 또 한번 듣고 흘려 버릴 수밖에 없던 방송 내용을 문자로 제공받아 사용할 수 있고, 다양한 종류의 신문 및 잡지의 기사 내용을 그림까지 포함해서 컴퓨터로 불러와 사용할 수 있다. 또 앞으로의 시대는 일방적으로 차려진 밥상을 받는 시대가 아니라, 자기 입맛 따라 골라 먹는 시대가 된다. 방송의 경우에도 몇 시에 무슨 프로그램이 방영된다는 식의 개념은 사라진다. 다양하고 특화된 장르의 준비된 프로그램들을 메뉴판에서 골라 보는 시대가 된다. 특정한 프로그램이 특정한 시간에 방영된다 하더라도 시청자가 이를 반드시 방영되는 시간에 시청할 필요가 없게 된다. 편리한 시간에 메뉴판에서 불러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설교가 케이블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음성과 화상서비스로 제공되는 때가 되면 언제 어느 때든지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유명인사의 설교를 국내외를 막론하고 컴퓨터를 통해서 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래에는 텔레비전 교회나 인터넷상에 설치된 전자교회들이 보다 다양한 설교와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시간에 쫓겨가면서 또 교통체증과 주차 난에 시달려 가면서 교회당으로 달려갈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고 걱정이 된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미래를 맞이해야 할까? 어떤 가치관과 믿음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이 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첫째, 우리 신앙인들은 대중문화와 기술과학문명을 비판하기에 앞서 기독교문화로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과 정신을 키워야 한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신앙인들은 세속문화의 어두운 부분을 밝은 빛에로 이끌어내고, 혼돈된 부분을 바로 잡아 주고, 죽어 있거나 죽어 가는 부분을 삶의 부분으로 또는 생명에로 이끌어 내는 즉 그것을 정죄하기 보다는 창조적으로 변혁시켜 가는 주역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그것이 비록 현재는 타락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다. 하나님은 잘못된 것을 징계하거나 멸망시키기보다는 새롭게 고쳐 나가기를 원하신다.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에로 바꾸어 나가기를 원하신다. 타락을 회복으로, 죄를 용서로, 멸망을 구원으로 바꾸어 놓기를 원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태도에서 볼 때, 비록 세상문화가 타락문화라 할지라도, 이를 적대적인 감정으로 보거나, 기독교문화로 착각하거나, 대립관계로 보기보다는 부패된 곳에 소금을 뿌려주고, 음침한 곳에 빛을 비추어 줌으로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로 잡아가는 자세가 바람직한 기독교인의 자세일 것이다. '네티즌을 주님께로!' 라는 운동을 펼쳐 볼 때가 된 것 같기도 한다.
둘째, 우리 신앙인들은 문화의 탈을 쓴 바알종교 또는 음녀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주변 국가들의 바알종교가 갖는 세속적인 매혹에 빠져 야훼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들이 있었다. 고린도교회 신앙인 가운데도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베풀어지는 세속적인 유혹에 빠져 바른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대중문화의 바알종교성이다.
셋째, 우리 신앙인들은 세속문화의 투쟁의지를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과학기술사회 건설 이면에는 '신 없이도 완벽한 사회'를 추구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 메시아주의가 깔려 있다. 신앙인들은 과학기술주의가 인간을 궁극적으로 해방 또는 구원할 것이라는 거짓된 인본주의적 메시아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이길 자가 없다.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시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인간은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의 기술은 인간을 다소 편리하게 해줄 뿐이지, 궁극적으로 구원하지 못한다. 인간의 기술이 사람이 죽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 하나만 보아도 그 한계성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바벨탑은 인간의 도피성이 되지 못하고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넷째, 우리 신앙인들은 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관점이 다원화되고, 가치가 다중화되고, 신앙이 다중화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올바른 '가치관의 선택'이 우리 믿는 신앙인들의 과제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 바탕을 둔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겠고, 하나님 없는 대중문화에 끌러 가서는 안되겠다. "많이 팔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 인기 있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 라는 왜곡된 대중문화의 가치관과 실용주의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 우리 신앙인들은 모이기를 페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사람과의 만남의 기회가 줄어들게 되고 자연히 공동체정신 또는 연대정신이 희박해진다. 또 현대사회는 전문화, 분업화, 획일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이웃과 연대하는 공동체 정신과 연대정신이 필요하다.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돌리고 친교를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는 모임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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