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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03
죄악의 존재 이유[롬 1장 18-32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716  

이번에는 '고난과 신앙'이란 주제로 '죄악의 존재 이유,' '인간의 불행과 심판의 존재 이유,' '신자에게 고난이 지속되는 이유,' 그리고 '고난 극복의 능력'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죄악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임어당 박사는 그의 저서『생활의 발견』에서 기독교의 중요 교리 몇 가지를 비판적으로 언급하기를 기독교는 악마의 기원조차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하면서 죄의식만 강조하는 모순이 많은 종교라고 힐난했다. 당연히 그의 주장은 성경이 설명하는 죄악의 존재 이유를 바로 알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죄악의 존재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의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의지'를 알면 '죄악의 존재 이유'를 밝힐 수 있고, '죄악의 존재 이유'를 알면 '고난의 존재 이유'도 알게 된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고 했고, 로마서 1장 19절에서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인간 속에 있다고 했다.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시키며 하나님을 닮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물질이기보다는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관계에서 특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인간본성의 질을 말한다.
먼저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이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의 삼각관계를 말한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예배와 신뢰의 관계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와 섬김의 의무를 가진다. 인간끼리의 관계는 사랑과 섬김의 관계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관리와 보전의 관계이다. 인간은 자연만물에 대해서 청지기의 사명을 갖는다.
그런데 이 특별관계는 계약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특별한 삼각관계를 계약관계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계약관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신뢰와 책임이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은 계약관계 속에 있다. 인류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악은 책임적 존재인 인간이 이 계약을 파기할 때에 발생되는 불편한 관계에서 파생되고, 죄는 이 악에서 생겨난다.
둘째, 하나님의 형상의 형태를 살펴보겠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본성의 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본성의 질은 인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지성, 감성, 의지, 그리고 사회성은 신과 인간만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이다. 물론 다른 동물에게도 다소의 지능과 감정과 의지와 사회성이 있지만, 인간처럼 그 지성으로 학문을 창출할 수 없고, 그 감성을 문화 예술로 승화시킬 수 없으며, 본능 말고는 의지적 결단을 기대할 수 없다. 사회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들도 사회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인간들처럼 복잡한 형태의 사회구조나 관계형성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인성의 요소는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하나님의 형상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요소를 가지고 인간은 하나님에게는 예배자로서, 만물에게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에게는 예배와 찬양, 만물에게는 관리와 보전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예배자로써 인간이 관심 하는 신학과 신앙은 지성과 감성적 활동보다는 결단과 관계성에 크게 관심 한다.
셋째,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을 살펴보겠다. 인간은 형상의 형태 즉 인성만 가지고 창조된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지식과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되었다(엡 4:24; 골 3:9-10).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실질적인 지식과 의와 거룩함은 죄로 가려졌다. 따라서 더럽혀진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갈 5:19-21) 같은 것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 5:22-23)와 같은 것이다.
죄악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고 인간을 책임적인 존재로 만드신 데에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 인성을 주셨는데 인성 속에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사회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인성을 주신 것은 스스로의 특권을 제한하신 것이다.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 하시고 계약 속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하신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절대자의 주권을 제한하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 체결된 모든 약속을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닌 책임적 존재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서 관계가 깨지게 되고, 불편한 관계 속에서 악이 파생하게 되고, 악이 자라서 죄를 짓게 한다.
인간이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한 이 땅 위에 죄악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그게 싫어서 인간이 로봇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다. 창조에 관한 한 하나님의 선택은 가장 합리적이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는 악한 것이 없다. 문제는 언제나 인간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고, 약속대로 따먹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선악과를 먹을 수밖에 없고,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리려는 운명론자들의 소행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는 한 수많은 계약 속에 살아간다. 이 계약이 잘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죄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밝힐 수 있다.
앞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해서 절대자의 주권을 제한하신다고 설명하였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 행사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고 했고, 로마서 1장 19절에서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인간 속에 두셨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다. 어떤 누구도 하나님의 이 주권 행사를 방해할 자가 없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또는 '목적의지'라고 말한다.
둘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명령들이 있다. 이 명령의 말씀 또는 계명이나 율법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인간이 결정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지만, 싫든 좋든 간에 그 결정을 인간의 자유의사에 맡기셨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절대자의 주권을 제한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훈계의지'라고 말한다.
셋째, 로마서 1장 24절, 26절, 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또는 부끄러운 욕심에 또는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고 적고 있다. '내어버려 두셨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허락의지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인간이 결정하는 일을 말한다.
하나님의 훈계의지나 허락의지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면서 인간을 책임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 땅 위에 왜 죄악이 존재하는지를 설명하는 이유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격자로 만드시고 인격적으로 대우하신 만큼 인간들로부터 배반과 진노를 경험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스스로 절대자의 주권을 제한하기를 그만 두지 않으신다.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책임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엄청난 고통 중에 인간들을 대신해서 죽게 하실 망정 하나님은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절대자의 주권을 제한하신 것은 실로 엄청난 희생이면서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역설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이 세상에 죄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엄청난 희생 때문이다. 이 세상에 죄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때문이다. 이것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로마서 5장 20절의 말씀의 참뜻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이 절대자의 주권의 제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식이 저지른 범죄를 부모가 떠 안듯이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저지른 죄값을 대신 받기 위해서 절대자의 신분을 버리셨고 인간이 되셨으며, 극형인 십자가형까지 받으셨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절대자의 특권을 제한하시고, 생명까지 버리신 반면, 우리 인간들은 책임을 저버리거나 떠넘기기 바빴고,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하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말았다. 이런 진실을 뼈아프게 받아 드리면서 책임적 존재로써 하나님과의 약속, 인간 사회 속에서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 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죄와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조차도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죄와 고난을 극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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