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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4:59
헌신과 봉사[민수기 8장 5-18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096  
앞에서 '신앙과 헌신'이란 주제 하에 '헌신과 예배' 그리고 '헌신과 신앙'에 관해서 설명하였다. 이번에는 '헌신과 봉사'에 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헌신은 봉사 행위를 말한다. 헌신과 제사가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성서는 봉사를 제사와 관련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봉사를 또한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배와 봉사는 각각 다른 형태의 제사라고 말할 수 있다. 예배가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라면, 봉사는 몸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따라서 예배와 봉사는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이다.
민수기 8장 11절에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로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고, 민수기 8장 15절에 "네가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빌립보서 2장 17절에서 바울은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libation/祭酒)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하였다.
요제는 제물을 제단에 바쳤다가 다시 받는 행동, 또는 제물을 제단을 향해 높이 들었다가 다시 받는 행동을 취하는 제사를 말한다. 여기서 보면, '레위인을 요제로 바쳐 여호와를 봉사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 말씀을 근거해서 보면, 헌신 즉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것은 봉사를 의미한다. 봉사는 예배의 행위처럼 우리의 몸을 대신해서 노동과 시간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몸과 시간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또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것은 몸을 바치는 행위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피의 순교라고 한다면, 봉사는 피 없는 순교이다.
그런데 이 피 없는 순교의 행위 중에 하나가 동정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고행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평생 주를 위해서 동정을 지키면서 선교와 봉사 활동에 전념하는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헌신에 해당이 되겠지만 자신만을 위한 고행이나 수행의 경우는 거의 무가치한 희생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로 극단적인 동정 지키기나 고행의 경우를 소개하겠다. 먼저 잘못된 고행부터 살펴보자.
5세기경에 시메온이란 사람이 살았다. 이 사람은 23세에 동굴에 들어가 큰돌을 쇠사슬에 매달고 그것을 다시 자기 오른 쪽 발목에 묶고 40일간 생활했다. 발목 보호를 위해서 가죽으로 보호대를 만들어 착용했는데, 40일 후에 그것을 풀었을 때에 발목 보호대 속에서 20 마리의 통통하게 살이 오른 구더기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시메온은 그 구더기들을 회개의 일부분으로 간주하여 잡지 아니하고 키웠다고 한다.
그 후 시메온은 어느 여름철에 매일 아침마다 흙이 목에 찰 만큼 흙 속에 파묻혔다가 저녁이면 흙을 파고 나오곤 했다.
33세 때에는 1.8미터 높이의 원주에서 고행을 시작해서 점차 높이 쌓아 올려 18미터 높이의 좁은 공간에서 생활을 했다. 그는 목욕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몸에서 떨어지는 구더기들을 소중히 여겼다. 시메온은 끊임없이 몸에 상처를 내고, 딱지가 지면, 그것을 떼어내어 고름이 생기도록 해서 구더기들을 먹여 살렸다. 어느 날 몸에 있던 구더기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지자 그것을 집어들고 상처부위에 올려 주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것이다. 배불리 먹으라."고 했다. 이런 고행 현상은 초대교회가 창립된 직후부터 근 300년 동안 십여 차례에 걸쳐서 로마제국으로부터 받았던 극심한 박해가 끝난 콘스탄틴 황제 이후에 헌신의 또 다른 관행으로 유행처럼 번졌던 것이다. 시메온의 경우는 별난 고행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우리 나라 초기 천주교회는 동정을 지키는 성처녀(聖處女)들의 수난 위에 그 한 기둥이 세워 졌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어찌 보면 부질없고, 어찌 보면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시집 못 보내 안달하는 거센 유교 전통과 싸우며 처녀 이정희는 3년 동안 거짓 앉은뱅이 노릇을 했고, 김(金)루리타는 혼담이 나돌 때마다 머리를 깎아 버리는 삭발로 저항했다. 여주에 살았던 정순매(鄭順每)는 어머니와 짜고 가짜 혼인식을 올리고 소박 맞은 양 행세하여 동정을 지켰다. 정약종의 딸 정(丁)엘리자베드는 이성(異性)에 대한 유혹을 느낄 때마다 고행용으로 회초리를 만들어 놓고 자신의 등짝을 핏발이 서도록 때리길 12년 동안 하다가 순교했다. 그 무엇보다 처절했던 동정 고행은 겉으로는 결혼을 하고서 속으로는 동정을 유지하는 동정 결혼이었다.
이(李)루도갈도는 순교자 가문의 유(柳)요하네와 결혼을 하게되자, 첫날밤에 동정을 서약하고 4년 동안 오누이처럼 살다가 순교하였다. 이루도갈도는 이 동정 결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옥중 편지를 남기고 있다. "우리 부부는 서약대로 4년간을 오누이처럼 살아 왔다. 그 동안 조금만 어떻게 되었던들 모든 일이 헛될 뻔한 일이 족히 열 번쯤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서로 맞붙들고 흐느끼면서 그 악마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곤 했던 것이다."
권(權)테레시아는 전혀 이해가 없는 이교도와 결혼했는데 야수같이 달려드는 그 많은 밤들과 싸워가며 16년간 순결을 지키고 서소문 밖에서 순교를 당했다. "저와 같은 죄인에게 천주님은 순결을 지키는 커다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라고 감사기도 후에 목이 잘렸다.
이렇게 무모한 고행이나 동정을 지켜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평생을 아프리카 흑인들의 선교와 의료 사업을 위해서 몸을 바친 알버트 슈바이처나 리빙스톤 같은 사람이나 평생을 인도에서 구제사업에 바치고 있는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치른 피 없는 희생은 고행이나 동정 지키기보다는 훨씬 값진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헌신이라는 것이 반드시 이런 큰 일들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일, 사소한 일, 일상적인 일도 헌신에 포함된다.
필라델피아에 존이라는 13세의 소년이 있었다. 벽돌공장에서 노동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교회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창길이 되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자기들 집 같았으면 벌써 훌륭하게 벽돌이나 돌로 포장을 했을 것인데도 말이다. 어느 주일날 존은 길을 포장하기로 결심했다. 존은 많은 아이와 어른들이 벽돌로 포장된 길을 통해서 교회로 들어가는 비전을 보았다. 존은 7센트의 임금을 쪼개어 날마다 벽돌을 한 장씩 자기 공장에서 사서 가져와 교회 입구에 깔기 시작했다. 이 넓은 길을 존이 다 포장하려면 2년은 걸릴 참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1개월 이내에 일어났다. 존의 모습을 보고 이기적이며 형식적이었던 신앙생활을 반성한 교인들이 길뿐이 아니라 낡은 교회당을 헐고 신축하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이 소년이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존 워너메이커이다. 미국과 전세계에 YMCA 건물을 수없이 지어 주었는데 서울 종로 2가에 있었던 벽돌건물도 존 워너메이커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겨우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진시황은 39세의 젊은 나이에 천하를 평정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이룩하였다. 진시황이란 이름은 진나라의 초대 황제라는 뜻이다. 그런 그가 불로장생하기 위해서 {시경}과 {서경} 그리고 제자백가의 책을 모조리 불태웠고, 460여 명의 유학자들을 붙잡아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했다. 또 어마어마한 시설의 시황릉과 아방궁을 짓고,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또 어린 소년 소녀 3천 명과 많은 보물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게 하여 동해에 있다는 신선이 사는 섬에 가서 불로초와 불로약을 구해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겨우 49세밖에 살지 못하고 전국을 시찰하던 중에 병사하고 말았다. 옳은 일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평생을 자신의 안락과 쾌락만을 위해서 노력했던 진시황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자신도 오래 살지 못했으며, 진나라도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망하고 말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왕들의 평균 수명이 겨우 44세에 불과하다고 한다. 왕들의 평균수명이 이렇게 짧은 것은 첫째가 운동부족, 둘째가 보약중독이었다. 손발을 쓸 일이 없었던 왕들은 몸이 쇠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몸에 조그만 이상이 있어도 보약을 썼기 때문에 보약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노동과 봉사만큼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없다. 열심히 일하며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오래도록 건강하게 산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말하는 장기려 박사는 인술과 복음을 함께 전하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한평생 봉사하다가 85세에 소천하셨다.
장기려 박사는 집한채 없이 병원 꼭대기 층에서 생활하면서 떠돌이 환자들을 돌보았다. 걸인에게 10만원권 수표를 주기도 했고, 가난한 제자에게 며느리가 해온 혼수 이불을 주기도 했고, 돈 없어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를 뒷문으로 도망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온 장기려 박사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남주인공의 모델이 되기도 했고, 북녘 땅에 두고 온 다섯 남매와 아내를 못 잊어 45년간을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장기려 박사는 북한에 아내가 살아 있는데 어떻게 또 결혼 할 수 있느냐, 성경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면서 외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비문에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으로 적히기를 소원하며 살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주기철 목사의 순교정신, 조만식 선생의 애국정신과 함께 장기려 박사의 박애정신은 기독교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웅변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고들 말한다.
복음을 위하든, 남을 위하든, 봉사에는 희생이 따른다. 그리고 희생은 곧 헌신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고 했고,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했다. 또 야고보는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유익이 없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약 2:14, 17). 마태는 예수께서 봉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명하신 사실을 주지시켜 주고 있다.
봉사는 헌신이다. 봉사는 제사이다. 예배가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라면, 봉사는 몸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봉사야말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이다. 봉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봉사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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