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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8 23:58
성도, 기름부음 받은 자[ 고린도전서 1장 1-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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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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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예배당에 출입하는 사람을 '교인,' '기독교인,' '크리스천,' 혹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기독교인, 크리스천,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다 같은 말이다. '기독교인'은 한자에서 온 말이고, 영어 발음 그대로인 '크리스천'은 헬라어인 '크리스티아노스'에서 온 말이며, '그리스도인'은 헬라어인 '크리스토스'에서 온 말이다. '교인'이란 말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 혹은 회원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교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모두 소속감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교인이라는 말은 타 종교인에게도 포괄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기독교인만을 지칭하는 의미가 희박한 반면,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인만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에 소속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단어가 최초로 쓰인 곳은 안디옥이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는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기록이 있다. 미국 신시나티 신학대학원에서 헬라어를 공부할 당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 '일컬음을 받다'는 뜻의 헬라어 단어 '크레마티조'( )를 연구해서 학기말 과제로 제출한 적이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 기록된 헬라어 문헌들과 사전들을 샅샅이 뒤지고 연구해서 고생 끝에 얻어낸 결론은 이 말의 중요성이 소속감에 있다는 것이었다. 사업하는 사람을 사업가라 하고, 이발하는 사람을 이발사라 하듯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을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기록은 바울과 바나바의 노력으로 안디옥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많아졌다는 뜻이오, 그들에 대한 언급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란 용어가 생겼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이 있다. 예수는 구원자란 뜻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고, 그리스도란 예수의 직책을 말한다. 이 예수의 직책과 관련된 말이 '그리스도인'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주제가 바로 '그리스도인'에 관한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기름부음 받은 자' 또는 '뽑힌 자'를 뜻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말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또 '기름부음 받은 자'는 특별히 '선택된 자' 또는 특별히 '뽑힌 자'를 뜻한다. '교인'도 '뽑힌 자' 또는 '불러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교회'는 '불러냄을 받은 회중' 또는 '뽑힌 자들의 모임'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교회'와 '교인'의 뜻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뜻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를 뽑을 경우 선지자가 그들의 머리 위에 올리브 기름을 부어 임직했다. 예를 들면,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은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고 있으며(삼상 10:1; 16:12; 왕상 1:45). 사독은 기름부음을 받고 제사장이 되고 있다(대상 29:22). 또 엘리사도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가 되고 있다(왕상 19:16).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 직책 즉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직책을 모두 수행하는 특별한 사람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이 분을 '메시아'라 불렀고, 헬라인들은 '그리스도'라 불렀다. 이 그리스도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분이 바로 예수이다. 그리고 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 즉 작은 그리스도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예수나 그리스도인이나 실제로 구약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나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기름부음 받은 자'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또 어떻게 예수와 그리스도인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은 성서를 문자적이고 육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영적이고 신령한 측면에서 이해하려 한다. 성서에 관한 이런 이해의 차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이 천년 전에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 반면, 아직도 일부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구약의 방법이 아니라 신약의 방법인 침례를 통해서였다. 초대교회는 침례 또는 세례를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예식으로 이해했다. 구약시대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게 성령의 외적인 능력의 임재가 있어서 기름부음을 확증했던 반면, 신약시대에는 침례를 받은 자에게 성령의 내적인 구원과 성화의 임재가 있어서 기름부음을 확증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성령의 외적인 능력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 예로 사무엘상 16장 13절에 보면,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는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도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위로 올라오셨을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있었고, 이내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재하셨다. 또 사도행전 19장 5-6절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12명의 초신자에게 침례를 베풀고 안수하였을 때에 성령의 임재와 은사를 체험하고 있다. 이런 전통 속에서 초대교회는 침례 직후에 기름을 찍어 이마에 바르며 십자가를 그어주었고, 안수하였다. 이는 성령의 임재를 기원하는 성스런 견신례의 전통이었다. 이 전통이 말씀과 은혜사모에 치중하는 개신교에서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고, 일부 교단에서만 입교예배를 통해서 유아세례를 받은 자에게 견신례를 행할 뿐이다. 어찌 보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도행전 2장 38절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기름부음과 침례는 결국 성령의 임재를 가져오는 성례였고, 성령의 임재와 증거는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직의 수행자가 되는 자격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신약성서는 예수와 초대교회 신앙인들에게 임했던 성령의 임재는 물론이오, 성령의 임재로 나타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적들을 소개함으로써 이를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도 '기름부음 받은 자'요, 특별히 '뽑힌 자'란 사실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 둘 일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메시아직을 수행하는 작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직책을 모두 수행하는 특별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예수는 예언자의 직책을 수행했을 뿐이지, 왕과 대제사장직은 유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실제로 수행하지 않았다. 예수는 다윗 왕의 혈통을 타고났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예수 당시에는 로마당국이 임의로 점령지역에 왕과 총독을 임명하고 있었고, 심지어 대제사장까지도 말 잘 듣는 허수아비로 임명했던 때였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고대했던 메시아는 가장 이상적인 위대한 통치자로써 정치, 군사, 종교에서 매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야할 특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런 인물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의 상황으로써는 매우 비관적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때로부터 예수는 왕으로써, 대제사장으로써, 대예언자로써 높임을 받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고, 또 어떻게 신앙고백 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이 이해한 그리스도는 그 당시의 유대인들이 이해한 방법과 전혀 달랐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로마제국의 압제로부터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과 다윗 때에 누렸던 영광을 되찾아 줄 정치적 지도자로 여겼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죄와 사망의 권세와 사탄의 세력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만 왕의 왕으로써, 또 친히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었던 불편함을 제거시키는 화목제물이 되심으로써 중보자와 구세주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화해의 길을 열어 주신 대제사장으로써, 또한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대예언자로서 이해했다. 그리스도는 또한 교회의 머리로써, 만 왕의 왕으로써,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유의 주로써(엡 4:6; 골 3:11), 장차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으로써,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신 대제사장으로써(히 4:15), 하나님의 숨은 비밀과 구원의 소망을 친히 드러내신 대예언자로서 고백되어지고 있다(히 1:1-3).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즉 주검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며,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열흘만에 강림하신 성령의 강력한 증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께서 강림하신 상황적 증거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설명할 계획이지만, 주제인 그리스도인에 관한 중요하고 또 반드시 기억해야할 사실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메시아의 세 가지 직책을 위임받은 작은 그리스도란 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악과 자아와 유혹을 다스리는 왕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며,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신앙과 행동으로 고백하는 예언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디딤돌이 되는 헌신적인 제사장적 삶을 살아가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또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아직을 수행하는 작은 그리스도란 점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 둘 일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말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피로 인해서 죄사함을 받은 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의 칭호를 받은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로 미리 작정하시고, 뽑으시고, 부르셔서, 의롭다고 칭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소유(행 20:28)라고 말한다. 또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고전 12:27; 엡 1:23, 4:12, 5:30).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셨다"고 한 바울의 말대로(고전 12:13),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거룩한 백성이오, 성스런 그리스도의 몸의 각 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며 곧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롬 8:1)이다.
또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마 16:16), 그 분을 생명의 구세주로 자신의 중심에 모신 사람을 말한다(롬 8:9). 이렇게 마음으로 또는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롬 10:9) 믿는 자들이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름부음 받은 자'요, '뽑힌 자들'이다. 또 '그리스도인'은 메시아직을 수행하는 작은 그리스도이다. 또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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