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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5:0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요한일서 4장 7-10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59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짧은 민화 한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단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미하일 천사에게 한 여자의 영혼을 빼앗아오도록 명령하였다. 천사가 인간세계에 내려와 보니, 그 여인은 몹시 아파서 누워 있었다. 조금 전에 두 쌍둥이를 출산했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는 어머니 곁에서 배가 고파 보채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줄 기운도 없었다. 여인은 죽음의 천사의 모습을 보자 하나님이 자기 영혼을 거두시려고 보낸 천사인 줄 짐작하고 매우 슬프게 흐느끼며 애원했다. "미하일 천사님, 남편은 몇 일전 숲 속에서 나무에 깔려 죽었고, 제게는 이 아이들을 키워 줄 형제 자매도 친척도 없습니다. 제발 제 영혼을 데려 가지 마시고 이 아이들을 제 손으로 키우게 해주십시오. 이 어린것들이 어떻게 부모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딱한 처지를 알아챈 천사는 한 아이를 안아 어머니의 젖에 물려주고 다른 한 아이를 어머니의 팔에 안겨 준 다음 하늘 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나님 곁으로 날아가서 보고했다. "하나님, 저는 산모의 영혼을 가져올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나무에 깔려 죽고 부인은 쌍둥이를 낳아 병들어 있었는데 제게 영혼을 거두어 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자기 손으로 아이들을 키우게 해 달라면서 어린아이는 부모 없이 살 수 없다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산모의 영혼을 빼앗아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 오너라. 그리고 너를 세상으로 추방한다. 그 곳에서 세 가지 문제의 해답을 찾을 때까지 인간들과 함께 고생하며 살아라. 먼저,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보아라. 둘째,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를 알아보아라.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알아보아라. 이 세 가지 질문의 해답을 얻게 되면 그 때 너는 다시 하늘 나라로 돌아 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미하일 천사는 지상에 버려진 불쌍한 신세가 되었고, 6년 동안 아주 가난한 구두 수선공 밑에서 구두를 수선하며 살게 되었다. 천사는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에 쫓겨나 어느 교회 담 밑에서 얼어죽어 가고 있었다. 그 때에 그 곳을 지나가던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자신의 처지도 딱하였지만, 불쌍하게 죽어 가는 사람을 그대로 나두고 지나쳐 갈 수가 없어서 입은 옷을 벗어 주었고, 그를 집으로 데려 왔다. 그러나 가난에 찌든 구두 수선공 부인은 당장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없는 처지에 식솔이 늘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은 표독스럽고 불만에 가득한 험담을 한동안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청년에게 측은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화를 풀고 옷가지를 챙겨다 주었고, 먹을 것을 마련해 주었다. 미하일 천사는 미소를 띄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첫째 질문의 답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하일 천사는 구두 수선공 밑에서 열심히 일하였다. 주인보다도 더 솜씨 있게 신발을 깁고 수선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차를 요란하게 몰고 온 건장한 신사가 비싼 가죽을 내 보이며, 일년을 신어도 비뚤어지거나 닳지 않는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고압적으로 명령했다. 만일에 일년 안에 신발이 비뚤어지거나 닳아 떨어져 버린다면 혼쭐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미하일은 돈 있고 지위가 높다고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오만을 부리는 부자의 등뒤에선 죽음의 천사를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둘째 문제의 해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내일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신사에게 필요했던 것은 튼튼한 구두가 아니라, 죽은 후에 신어야 할 슬리퍼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부자는 잠시 후에 자신이 죽을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미하일은 산 자가 신을 튼튼한 구두 대신에 죽은 자가 신을 슬리퍼를 만들었다.
미하일 천사가 인간이 되어 구두 수선을 시작한지 6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아주머니가 두 쌍둥이 소녀를 데리고 신발을 맞추기 위해서 구둣방에 찾아오는 것을 보았다. 한 소녀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자신이 데려온 두 소녀에게 예쁜 구두를 맞춤으로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소녀들은 6년 전 미하일이 살려 주고 싶어했던 산모의 딸이었다. 다리를 절게 된 소녀는 미하일이 어머니의 팔에 안겨준 아이였다. 어머니가 그 아이의 한 쪽 발을 깔고 죽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잃은 두 쌍둥이 소녀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이 두 소녀를 친딸처럼 키우고 있었다. 그 때 미하일 천사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그는 다시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 갈 수가 있었다.
구두 수선공과 그의 부인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베푼 작은사랑 때문에 6년 동안 천사를 모시고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미하일이 만든 신발들은 모두 최고의 품질과 기술로 된 것들이었다. 그 동안 그들은 미하일 덕분에 어느 정도 저축도 할 수가 있었다. 자신들이 궁하고 어려웠을 때에 베풀었던 작은 사랑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이런 저런 근심 걱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받음으로써 살아간다. 이것이 미하일 천사가 인간이 되어 6년 동안 살면서 깨달은 것이다. 사람은 이런 저런 근심 걱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살아간다. 산모에게는 자기 아이들의 생명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불쌍한 쌍둥이 아이들은 이웃의 한 여인에 의해서 훌륭하게 양육되었다. 고아가 되어버린 쌍둥이 자매가 살아남게 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걱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인 한 여인에게 사랑의 마음이 있어 그 아이들을 가엾게 생각하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가 자신의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뿔뿔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인간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려 주시지 않았고, 인간이 하나로 뭉쳐 사는 것을 원하셨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지 못하도록 하셨다. 만일 사람들이 자신들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간들의 생각일 뿐이지, 정말은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받으며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 속에 사는 사람을 하나님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사랑이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도록 되어 있다. 바울도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사랑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이야기했다. 첫째는 관심을 갖는 것이오, 둘째는 책임을 느끼는 것이오, 셋째는 존중하는 것이오, 넷째는 이해하는 것이오, 다섯째는 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것은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패전국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산을 하나 두고 두 영아원이 이웃하고 있었다. 하나는 연합군과 결연 되어 있어서 시설도 좋고 음식도 좋았지만 다른 영아원은 비바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뿐 아니라 분유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설과 음식이 좋은 영아원 아이들의 사망률이 시설이 나쁘고 가난한 영아원보다 60%나 높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보모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롯 가난하고 시설은 형편이 없었지만, 자기 자식처럼 돌보는 보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날씨가 험악한 날 밤에 도움을 청하는 전화가 걸려오자 의사는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망설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강렬했기 때문에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을 뚫고 도움을 요청한 가난한 노동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 노동자의 어린아이는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 로이드 조지라는 이 아이는 훗날 영국의 수상이 되었다.
사랑하는 것은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관중은 춘추 시대 초기의 제나라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포숙아와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포숙아는 관중의 비범한 재주를 인정하여 언제나 좋은 이해자요, 또한 동정자가 되어 주었다. 훗날 관중은 포숙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젊은 시절에 가난하여 포군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그 이득은 언제나 내가 더 많이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나는 또 몇 번이나 벼슬자리에서 파면되었으나,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아직 내 운수가 트이지 않았음을 아는 까닭이었다. 싸움터에서도 몇 번이나 패배하여 도주하였지만, 그는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연로하신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또한 내가 사로잡혀 왔을 때에도 그는 나를 몰염치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줄을 아는 까닭이었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로되 나를 알아준 이는 포군 이었다."
사랑하는 것은 주는 것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사랑에는 두 가지 욕망의 뜻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주고 싶다는 욕망이오, 둘째는 빼앗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했다. 또 사랑에는 조건 없는 헌신적인 사랑이 있는가하면 조건적인 사랑이 있다. 희생적인 사랑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인 사랑이 있다. 우리가 베풀어야 할 사랑은 주는 사랑이오, 조건 없는 사랑이오, 헌신적인 사랑이다.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이 품앗이 사랑이오, 이기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다. 희생적으로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 인하여 죽었어야 할 우리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 인간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셨다. 희생적으로 사랑하셨다. 먼저 사랑하셨다. 본문 말씀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칼 바르트는 그의 이중 예정론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을,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자기 자신에게는 버림을,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다"고 적고 있다. 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총인가?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시고 또 자기 자신에게는 우리 인간이 당해야 할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예정하시고, 자기 자신에게는 인간과의 사귐을 예정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몫을 자기가 취하는 대신, 자기의 몫, 곧 축복과 생명을 인간에게 주기로 결정하셨다. 그는 자신을 낮추심으로서 인간을 높이기로 결정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신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사랑이 베풀어지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삶이 경험되어 진다.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정의가 있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곳에 진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책 속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진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행동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투쟁으로 정의와 평화를 쟁취하려 한다. 그러나 정의와 평화는 투쟁 속에 있지 아니하고, 사랑의 행위 속에 있다. 정의와 평화의 나라는 싸움을 멈추고 사랑을 베푸는 곳에서만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