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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5:11
예수의 기도 생활[누가복음 3장 21-22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630  
여기서는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누가가 소개하는 '예수의 기도생활'에 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체험하신 일, 기도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떠한 일이 있을 때에 기도하셨는가를 알아보겠다.
신약성경에 '기도하다'라는 동사와 '기도'라는 명사가 합쳐서 90회가 사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누가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47회가 소개되고 있다. 전체의 52%를 상회하는 많은 숫자이다. 이 만큼 누가는 다른 어떤 성서 저자들보다도 기도생활에 관한 자신의 깊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누가는 교회의 목회자로써 성도들에게 예수의 기도생활을 소개함으로써 기도생활의 필요성과 그 중요성을 가르치고자 했다.
첫째,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누가는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와 헤르몬 산에서 체험하셨던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도 기도할 때에 엄청난 사건들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세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첫째, 하늘 문이 열렸다. 둘째, 비둘기 같이 온유한 성령이 강림하셨다. 셋째, 너는 내 아들이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인침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입은 옷에서 광채가 빛나는 영의 세계를 체험하셨다(눅 9:28-29). 이미 죽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율법과 예언에 대해서 신령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놀라운 은총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보다 능력이 많으시고 지혜가 많으신 분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보다 착하고 정직해서도 아니다. 예수께서 놀라운 은총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처럼 '기도를 통해서' 하늘나라의 축복의 창고를 열 수 있다. '기도를 통해서'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거룩한 인침을 받을 수 있다. '기도를 통해서' 신령한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2)는 축복의 말씀이 '기도를 통해서' 말씀으로 체험되어질 수 있다.
둘째, 예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누가는 기도에 관한 예수의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예수의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를 암시해 주고 있다.
먼저 누가복음 11장 5절부터 13절의 비유에서 예수는 '강청(强請)의 기도'를 강조하셨다. 예수께서는 여행 중에 있는 손님을 맞이한 한 사람이 대접할 것이 없어서 자신의 친구를 찾아가 떡 세 덩이를 빌리려 할 때에 "비록 벗됨을 인하여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 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는 언제나 간절하고 애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8절의 비유에서 예수는 '끈질긴 기도'를 강조하셨다. 원수 갚아 줄 것을 끈질기게 간청하는 한 과부의 소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시고, 예수께서는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는 언제나 끈질기게 매달리는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누가복음 18장 9절부터 14절의 비유에서 예수는 '겸손의 기도'를 강조하셨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죄인 세리의 기도는 들으셨어도,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는 언제나 겸손하고 순종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겸손의 기도를 들으시며, 아무리 훌륭한 신앙생활을 한다할지라도 교만한 자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
이와 같은 기도들은 모두가 믿음의 기도들이다. 강청의 기도: 간절하고 애절한 기도 없이는 믿음의 기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끈질긴 기도: 끈질기게 매달리는 기도가 없이는 믿음의 기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겸손의 기도: 겸손하고 순종하는 기도가 없이는 믿음의 기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고 말씀하셨다.
셋째, 예수는 언제 기도하셨는가? 예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셨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금식으로 준비기도 하셨고(4:1), 문둥병자를 고치신 후에 한적한 곳으로 피하셔서 명성의 유혹으로부터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를 하셨다(5:16).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에 산에 올라 가셔서 밤이 맞도록 철야기도 하셨고(6:12),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시기 전에 즉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밝히시기 전에 홀로 기도하셨다(9:18).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도 장소를 택하여 기도하셨다(11:1). 예수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중보 기도하셨다(22:32). 예수는 죽음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이나 욕망을 구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기도하셨다. 이렇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기도는 실로 위대한 중보의 기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예수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는 기도를 올렸다. 임종 전에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겸손히 부탁하셨던 것이다.
아랍사람들의 복수에 대한 집념은 가공할 정도라고 한다. 누군가가 살해당하면 그 피살자의 친인척에 속한 남자들은 복수의 의무를 지니게 되며, 이 복수의무가 주어지는 혈연집단을 '카므사'라고 한다. 만약 복수하지 못하거나 복수에 소홀하면 그 카므사의 명예는 형편없이 타락하여 그 카므사와는 교역도 결혼도 기피하기 때문에 카므사간의 싸움이 종족간의 전쟁으로 비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같은 혈연집단끼리 이동하며 사는 사막의 유목생활이기에 종족안전에의 연대책임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그 피해에 대한 보복은 이미 구약성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은 곧 보복정의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혁명적인 교훈은 피를 피로 갚으라는 사막의 계율을 바꾸어 피를 용서로 갚으라는 사랑의 교훈을 십자가의 희생으로서 또는 십자가상에서의 기도로서 친히 가르치셨다. 그리고 예수의 이 용서의 기도는 누가복음이 기록된 실제적인 상황에서 볼 때, 그 당시 성도들이 박해로 인해서 십자가에서, 혹은 사자굴에서, 혹은 투기장에서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어가던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었던 기도였으며, 스데반처럼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품에 안겼던 것이다.
영국에 종교개혁이 이루어질 당시, 특히 천주교도였던 메리 여왕에 의해서 300여명의 목회자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천주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했던 몇 분의 주교들이 1555년 2월에 옥스퍼드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불길이 이들을 덮치기 시작할 때에 라티머(Latimer) 주교는 리들리(Ridley) 주교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를 하였다. "리들리 주교님,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는 불기둥이 되어 세계를 밝힐 것입니다." 또 훌륭한 개혁가였던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는 회유를 견디지 못해서 압제자의 요구에 서명하고 취소하기를 일곱 번이나 거듭하다가 결국 1556년 3월에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화염이 그를 덮치기 시작할 때에 크랜머는 서명을 거듭했던 손이 제일 먼저 죽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오른 손을 불길 속에 넣었다.
예수는 공생애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셨으나 이를 기도로 극복하셨고,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남기신 유언 가운데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다. 기도하는 길만이 살길이다. 기도만이 해결의 방법이다. 기도 할 때에 은혜 받을 수 있고, 기도 할 때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며,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다. 이사야 41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