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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5:03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마태복음 25장 31-46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233  
흑인 인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장례식을 검소하게 치러주십시오. 긴 찬사를 삼가해 주십시오. 내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말하지 마십시오. 나의 학벌도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서도 듣기를 원하는 것은 '마르틴 루터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죽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먹이기 위해, 헐벗은 사람들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열심히 살다가 죽었다.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하다가 죽었다'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누렸던 쿼오바디스(Quo vadis)란 책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주인공 비니키우스가 사도 바울에게 묻는다. "헬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미술을 남겼다. 그리고 로마는 세력과 법률을 우리에게 주었다. 당신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베풉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무서운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해와 인내와 사랑으로 신앙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그리고 이 사랑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전 유럽을 정복하고 말았다. 주후 313 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인정한 이후 사랑의 복음은 온 세계를 향해서 퍼져 나갔다. 칼로 세계를 정복했던 영웅호걸들은 그들이 세운 나라의 멸망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사랑을 전했던 예수는 비록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했지만, 그의 나라와 그가 전한 사랑의 복음은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가?
"이 녀석이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집 나간지 벌써 4일째나 되었는데. 눈이 쌓이면 돌아오고 싶어도 오지 못할텐데. 여보, 내 잠시 나갔다 오겠소." 페스탈로치는 아내인 안나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다 해진 옷을 차려 입고 눈보라 속으로 걸어나갔다. "혹시 이 근처에서 남자아이를 보지 못했습니까? 아이로스라고 합니다." "아니오.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서 물어도 모두가 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라기까지 했다. "아니, 또 도망쳤어요? 당신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은 잠시라도 눈을 떼면 무엇이든 훔쳐가니 안심할 수가 없소. 빨리 붙잡아요."
페스탈로치는 노이호프라는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자신의 집을 고아들을 위한 보금자리로 꾸몄다. 아이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같은 음식을 먹었다.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생활하면서 그들을 돌보았다.
1772년 페스탈로치가 빈민학교를 세우고 고아들을 모아 교육을 시작하자, 많은 마을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마을 사람들은 까닭 없이 눈총을 주고 대 놓고 싫은 소리를 해댔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때때로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아이로스와 같이 집에서 도망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페스탈로치와 그의 아내는 실망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겠지"라고 생각했다.
눈보라치는 이날도 페스탈로치는 도망친 아이로스를 찾아 나셨던 것이다. "아이로스는 어디로 갔을까? 무사해야 할텐데. 나쁜 짓일랑 하지 말아야 할텐데. 하나님, 아이로스를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제게도 용기를 주십시오." 페스탈로치는 기도하며 걸었다. 페스탈로치는 작은 오두막에서 꽁꽁 얼어붙다시피 한 아이로스를 찾아냈다. 그를 집으로 데려와 눕히고 극진히 간호했다. 얼마 후 아이로스는 기운을 차렸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로스는 훌쩍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로스, 아무 말 마라. 괜찮아, 추웠지?" 페스탈로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감사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이것은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가 처음으로 빈민학교를 세웠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1827년 81세로 일생을 마친 페스탈로치의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노이호프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도왔고, 시탄스탄츠에서는 고아의 아버지였으며, 브르크도르프에서는 국민학교의 설립자였으며, 평생을 남을 위해서 살았으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갖지 아니한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이름에 거룩한 은혜가 있을 찌어다."
아프리카 지역의 흑인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알버트 슈바이쩌 박사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사귈 수 있다.'고 말했다.
톨스토이의 민화 가운데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은 반지하에 살고 있는 마르틴 아부제이치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신용 있고 신앙심이 깊은 구두수선공이다.
마르틴은 착한 사람이긴 했지만 매우 불운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아직 남의 밑에 있을 때에 부인은 죽었고, 하나밖에 없던 아들마저도 병들어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틴은 믿음을 잃지 않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성경을 읽었다. 그는 성경 속에서 기쁨을 찾고 참 만족을 얻었다. 하루는 마르틴이 성경을 읽고 명상에 잠겼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마르틴!" 문득 누군가가 등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마르틴은 놀라서 "저기 있는 사람이 누굴까"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마르틴은 다시 엎드려 잠을 청했다. 그러나 이때 또 한번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르틴, 마르틴아! 내일 도로를 보아라, 내가 갈 터이니." 마르틴은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마르틴은 꿈속에서 들었는지 깨어서 들었는지 갈피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마르틴은 아직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난로에 불을 지펴 국과 보리죽을 끓이고 물주전자를 준비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창가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마르틴은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어젯밤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창가에 앉은 마르틴은 일을 한다기보다는 창 너머로 큰길을 내다보는 편이 더 많았다.
창 너머로 바라보니 스쩨빠니치라는 가난한 늙은 병사가 길에 쌓인 눈을 치우다가 삽을 벽에 기대 놓고 잠시 쉬고 있었다. 마르틴은 깊게 쌓인 눈을 치기에는 기력이 너무 쇠한 이 노인에게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어졌다. 마침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에 물이 끊고 있었다. 마르틴은 일감을 옆으로 치우고 나서 차를 준비한 다음 스쩨빠니치를 집안으로 불렀다. 스쩨빠니치는 추위에 온 몸이 쑤시고 손발이 시려 떨고 있었다. 마르틴은 스쩨빠니치에게 여러 잔의 차를 대접했다. 차를 마시는 중에 마르틴은 스쩨빠니치에게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가난하고 못 배운 불쌍한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신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는 스쩨빠니치의 양 볼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르틴은 스쩨빠니치가 가고 난 다음에도 창 너머로 주님이 혹시 오시는가 하고 바라보곤 했다. 창 너머로 내다보니 허술한 여름 옷 차림새의 한 아줌마가 아기를 데리고 창 앞에서 떨고 있었다. 그녀는 바람을 등지고 벽과 마주 서서 아기가 춥지 않도록 감싸주려 하는 모양이었으나 감싸 줄 덮개 하나 없었다. 마르틴이 방안에서 듣고 있으려니 여자가 우는 아기를 달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마르틴은 일어나 밖으로 나가 아주머니를 집안으로 불렀다. 집안으로 들어온 아줌마는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해서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가 운다고 일러주었다. 마르틴은 딱한 처지에 놓인 이 아줌마에게 빵과 수프를 대접했다. 아줌마가 식사를 하는 동안 마르틴은 아이를 안아 달랬다. 마르틴은 식사를 마친 아줌마에게 입을 옷가지와 돈도 주어서 보냈다.
여자가 가 버리자 마르틴은 수프를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 다시 일감을 잡고 창가에 앉았다. 일을 하면서도 눈은 여전히 창 너머에 가 있었다. 문득 바라보니 창가에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할머니는 사과가 담긴 바구니와 나무 부스러기가 든 자루를 가지고 있었다. 어깨가 아파서 다른 쪽 어깨에 바꿔 메려고 자루를 한길 위에 내려놓고 사과 바구니를 말뚝에 걸어 놓은 채 자루 속에 나무 부스러기를 추스른 다음 자루를 들어올리려는 참이었다. 그 때 다 헤진 모자를 쓴 사내아이가 불쑥 튀어나와 바구니 속에서 사과 한 개를 훔쳐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할머니에게 옷소매를 붙잡히고 말았다. 개구쟁이는 마구 발버둥치며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두 손을 꽉 잡고 사내아이의 모자를 벗기더니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사내아이는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있었다. 마르틴은 바늘을 어디다 찔러 놓을 겨를도 없이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층계에 발이 걸려 안경도 떨어뜨렸다. 마르틴이 한길로 뛰어나갔을 때 할머니는 사내아이의 머리칼을 잡고 욕을 하면서 경찰서로 가자고 하는 참이었다. 사내아이는 죽을힘을 다하여 발버둥치면서 훔치지 않았다고 악을 쓰고 있었다. 마르틴은 할머니를 달래어 사내아이를 용서하도록 부탁했다. 사내아이에게도 할머니께 용서를 빌도록 권면했다. 그리고 사내아이에게 사과를 사주었다. 마르틴이 용서에 대해서 예수의 교훈을 말해주자 할머니는 사내아이를 놓아주었고 마르틴에게 사과값 받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사내아이는 할머니와 가는 방향이 같았음으로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었고 서로 사이좋게 길을 걸어갔다.
두 사람이 가버리자 마르틴은 집안으로 되돌아왔다. 안경을 주어 끼고 다시 일감을 잡고 일을 잘 마쳤다. 날이 어두워 등불을 켜고 일감을 치우고 정리한 다음에 벽장에서 성경을 꺼내어 어제 저녁에 읽던 곳을 펼쳐보았다. 성서를 펼치자 어젯저녁의 꿈이 생각났다. 꿈이 되살아나는 동시에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마르틴이 뒤를 돌아다보니 컴컴한 구석에 사람이 서 있었다. 사람은 사람인데 확실히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다. "마르틴, 마르틴,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라고 그 사람이 말했다. "누구를요?"라고 마르틴이 물었다. "날 말이다. 아까 네가 만났던 노인은 나였어."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자 어두운 한구석에서 스쩨빠니치가 앞으로 나오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형체도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이들도 나였어." 하고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자 어두운 한구석에서 아기를 안은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가 미소를 짓고 아기가 빙그레 웃었다고 생각하자 곧 사라졌다. "이들도 바로 나였어." 하고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와 사과를 가진 사내아이가 나와서 둘이 같이 빙그레 웃으며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마르틴은 몹시 기뻤다. 안경을 끼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7).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마르틴은 깨달았다. 꿈은 헛되지 않아 이날 어김없이 그리스도께서 마르틴에게 찾아오셨고 그는 예수를 대접했던 것이다.
히브리서 13장 1-2절: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