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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30 11:12
대중문화의 정신[데모데전서 4장 7-11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069  
신상언이 쓴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책을 보면, 대중문화가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주는 해악들에 대해서 잘 설명해 놓고 있다. "사탄이 대중문화 속에 죽음의 메시지를 집어넣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어둠의 세계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대중문화가 갖는 사탄적 요소들과 '잠재의식 메시지'의 강렬함 때문에, 젊은이들 뿐아니라, 성인들까지도 천체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용주의와 배금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보다 외설적이며 신성모독적이고 반인륜적이며 비윤리적인 내용들을 서슴지 않고 예술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돈을 쓰게 만들고 세속화를 주도해 간다. 전통과 권위와 가치와 진리를 왜곡시키고 짓밟아 버린다. 이런 허황된 문화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병리현상을 다음의 비유는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정신과 의사에게 어떤 부인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발작을 하면서 기물을 파괴하고 혈기를 부렸다. 간호사 두 사람을 불러서 가까스로 진정을 시킨 후에 진료를 시작하려던 의사는 환자가 오른 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손을 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펼 수가 없어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손가락을 하나 둘 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새끼손가락을 펴니까 딸그랑 하고 밑에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퍼렇게 녹이 쓴 십 원 짜리 동전이었다.
그 환자는 자기 존재를 십 원 짜리 동전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십 원 짜리 동전을 잃어버리면 자기 존재가 전부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누가 와서 자기를 칼로 찌르고 그 동전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해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동전을 지키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아 동전을 움켜쥐고 살았던 것이다.
현대인들을 이와 같이 파멸로 몰고 가는 정신이 무엇일까? 현대인들의 왜곡된 삶의 뿌리는 무엇일까? 잘못된 문화와 가치관은 어디서부터 출발되는 것일까? 우리를 잘못된 것에 집착하게 만들고 거기에 말려들게 하여 결국에는 파멸로 몰고 가는 위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번에는 대중문화의 뿌리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18세기경부터 영국에서는 자연신론이, 독일에서는 계몽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신앙보다는 이성을, 성경보다는 과학을 중시하는 합리주의를 시대사조로 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계시와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대신 인간의 이성을 떠받들기 시작했다.
17세기말에 영국의 존 로크(1632-1704)는 인간을 환경의 산물로 보았고,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구세주의 필요성을 인정치 않았다. 성서가 주장하는 계시와 기적과 교리들을 믿지 않았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것과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주셨다고 믿었지만, 이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이렇게 해서 존 로크는 창조주 하나님을 우주의 한 모퉁이에 가두어 버렸던 것이다.
미국의 제 2대 대통령 존 아담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제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제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사람들이 존 로크에 영향을 받은 자연신론자들이었다. 특히 토마스 제퍼슨은 성서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미신이라고 주장하였다.
계몽주의자들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영감, 동정녀 탄생, 부활, 그리고 초자연적인 행위들을 미신으로 단정하였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성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런 계몽주의를 "인간의 능력을 만능으로 믿는 신앙에 기초한 체계다."라고 비판하였다.
영국의 자연신론이나 독일의 계몽주의는 한마디로 '하나님 없이 살라'는 메시지를 큰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성서의 가르침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다. 성서는 '인간은 죄인이다,' '인간은 피조물이다,' '인간은 부족하다,' '인간은 헛되다.' 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성서가 '인간은 무능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성서는 오히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말한다.
자연신론이나 계몽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인간을 높이 평가한다는데 있지 않다. 인간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자연신론이나 계몽주의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종교의 왜곡된 가르침을 깨우치는 역할도 했다. 인간을 여러 가지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역할도 했다. 문제는 이들이 인간이 누구인가를 왜곡시켰다는 점에 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죄인인 인간에게, 부족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뱀의 속삭임으로 인간을 속였다는 점에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 하였으며, 바벨탑을 쌓게 하였던 것이다.
자연신론은 하나님 없는 역사를 강조하였다. 계몽주의는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으니, 인간은 홀로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세기에는 자연신론과 계몽주의 위에 진화론이 더해졌다. 헤겔의 변증법적인 철학의 기초 위에서 쓰여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고귀한 인간을 하나님 없는 동물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고독한 짐승으로, 죽음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거대한 인간 조직의 톱니바퀴 정도로 인간을 전락시키고 말았다. 인간사회를 동물사회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다윈의 진화론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위한 폭력과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시켰고,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유물론적이고 기계론적이며, 숙명론적이고 인과론적인 동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19세기에는 또 무신론이 더해졌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를 인간의 자기분열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고, 또 자기가 만든 신에게 스스로 지배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종교폐기론을 내세웠다.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피압박 인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며, 영혼 없는 환경세계의 영혼이며, 인민의 아편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니체는 인간이 신 없이 죽음에 이르는 자유 속에서 자기의 운명을 사랑하고 극복해야 하는 '초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프로이드는 종교란 원시시대 인류의 오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된 강박관념의 신경증세이며 소원성취 욕망의 객관적 투영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에는 세속인문주의가 더해졌다.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무시하고 인과율만을 인정하는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교육철학자인 존 듀이를 중심으로 세속인문주의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신과 종교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이들 세속인문주의자들의 사상은 그들이 1933년과 1973년에 각각 발표한 인문주의자 성명서(Humanist Manifesto)에 매우 잘 요약되어 있다. 이 성명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우주는 창조된 것이 아니며 자존한다.
2.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진화에 의해서 발생되었다.
3. 영혼은 육체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4. 인간은 하나님 위에 있다. "계시, 하나님, 의식, 신조를 인간의 욕구나 경험 위에 놓는 전통적인 교조 또는 관료적인 종교들은 인종에게 해를 끼친다."
5.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월자를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인류의 생존이나 성취 문제도 관련이 없다."
6. 어떠한 神도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지만, 인간들은 현재와 미래의 존재상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떠한 신도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7. 지옥이나 천국은 없다. "영원한 세계에 대한 약속이나 영원한 저주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 착각이며 해로운 것이다."
8. 사후의 삶은 없다. "삶이 육체의 죽음 후에도 살아 남는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없다."
9. 이성과 지성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성과 지성은 인류가 소유한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다. 대용물은 없다. 믿음도 열정도 충분치 않다."
10. "性분야에 있어서 정통 종교나 청교도 문화에 의해서 형성된 규제적인 태도는 성행위를 지나치게 억압한다고 믿는다....착취적이고 불명예스런 성적표현 형태를 인정하지 않지만, 피차 동의한 성인들의 성행위가 법이나 사회여론에 의해서 금지되지 않기를 원한다. 다양하고 많은 성개발 자체를 악으로 생각돼서는 안 된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거나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면, 개개인은 그들의 성욕을 표현하며, 그들이 원하는 삶의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야 한다."
11. 인공유산 시킬 권리는 인정되어야 한다.
12. 이혼할 권리는 인정되어야 한다.
13. 안락사로 품위 있게 죽을 개인의 권리는 인정되어야 한다.
14. 유전공학, 시험관 아기와 같은 과학연구는 윤리, 정치,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세속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맹신 또는 과신하고 있으며,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성서에 나타난 신앙인들의 것과는 극명하게 대립되고 있음을 금방 알아 차렸을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이 과연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오' 이다.
사슴은 언제나 자기 머리 위에 나 있는 뿔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가늘고 홀쭉한 다리는 늘 불만이었다. 어느 날 사슴은 샘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 사슴에게로 달려들었다. 사슴은 눈치를 채고 얼른 도망쳤다. 사슴은 탁 트인 초원을 달리기에 아주 훌륭한 다리 덕분에 쉽게 사자를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수풀에 이르자 뿔이 나뭇가지에 걸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슴은 따라오는 사자를 피할 수 없어 결국 사자에게 잡히고 말았다. 사자에게 잡힌 사슴은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말했다. "아, 내게 큰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다리는 나를 살려 주었는데,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뿔이 나를 죽이는구나."
그렇다. 인간은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의 문턱에 이르러서 큰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을 아쉬워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이성의 뿔 때문에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 이를테면, 청소년 비행, 가정불화, 배금주의 또는 황금만능사상, 성공주의 또는 한탕주의, 비도덕성, 비윤리성과 같은 모든 문제들이 잘못된 학교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18세기 이후 학교교육은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이 지배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져 왔다. 인간은 진화된 고등동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속적으로 가르쳐 왔다. 이런 정신적 바탕 위에서 축적된 문화가 오늘날의 대중문화이다. 그렇다고 보았을 때, 대중문화와 세속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올바른 가치관, 올바른 세계관,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할 때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때이다.
이번에 살펴 본 것은 대중문화의 정신이었다. 오늘의 대중문화가 모두 나쁘다거나 또 인간화 혹은 인간해방의 차원에서 모두 역기능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속문화가 미치지 아니하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등불을 켜들고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일일 것이다. 태양처럼 밝은 빛이 비추일 때는 작은 등불이 필요 없다. 그러나 태양이 없는 어두운 밤에는 곳곳에 많은 등불이 필요하다. 한 두 개의 등불로는 많은 지역에 빛을 줄 수가 없다. 어둠을 비추는 기독교인들의 등불이 많아질 때, 이 땅위에 진정한 기독교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줄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