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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30 11:13
대중문화의 극복[골로새서 2장 1-10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29  
한 청년이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상대가 된 처녀는 아름답기는 해도 아주 표독스럽고 잔인한 취미가 있는 여자였다. 처녀는 청년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당신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사랑에 눈이 먼 청년은 망설이긴 했지만, 결국 어머니에게서 심장을 빼앗았다. 그는 심장을 가지고 자기가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달려가다가 그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심장이 그의 손에서 빠져 나와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렇게 굴러가면서 어머니의 심장은 말했다. "애야, 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대중문화를 사랑한 나머지 삶에서 하나님을 제거하라는 대중문화의 잔인한 청을 거절 못하는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과 이런 인간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인용해 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도시화로 인해서 세속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1965년에 출간한 {세속도시}에서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견하였다. 기술과학과 정보통신의 발달, 확실한 근본 원리로부터 출발해서 바르고 참된 진리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낱낱의 정황에서 출발하여 근본 원리를 부정하려드는 귀납적 추리와 합리적인 분석 사고, 권위에 도전하는 반권위, 전통을 무시하는 반전통, 종교사상이나 진리의 다원화, 가치관의 다중화(多重化), 주체적 사고 등의 분위기 속에서 현대인들은 시간을 다투는 기동성,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익명성, 결과만 좋으면 과정을 따지지 않는 실용성, 하나님을 거침없이 모독하는 불경성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경박한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사로잡혀 생명의 근원을 외면하고 있다. 향락과 욕망충족에 사로잡혀 정신세계가 황폐화되고 있다. 인과율의 법칙에 갇혀 신앙의 신비현상을 미신으로 간주해 버린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자 융은 신앙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과 경시현상이 과학기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정신적 질병을 낳게 한다고 경고한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기계론적인 인과율의 자연법칙으로만 설명하려 할 때, 인간의 정신세계는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게 된다. 내면의 정신세계는 공허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 공간 속을 배금주의, 향락주의, 기술만능주의로 채우게 된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돈과 향락과 과학과 같은 강한 힘들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현대인들이 물량적이고 피상적인 삶만을 추구함으로서 삶의 의미와 목적과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인간은 삶의 편리함을 위해서 도구를 만들고, 각종 오락기구와 물질을 만들어 내지만, 종국에는 그 자신이 그 도구와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가 하면, 그 도구와 물질에 의해서 자신의 몸을 망치는 일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남용과 방종으로 인한 질병, 산업재해, 교통사고와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들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경험하고 있다. 다른 한편, 현대인들은 여가활용의 발달로 인해서 잠시도 자신을 위해서 명상하거나 성찰하는 일이 없이 하루하루를 쫓기듯이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정신없는 생활 속에서 많은 현대인들이 내면적인 문제에 직면할 뿐아니라,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와 조직, 매우 기계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생활 방식,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그 돌파구를 사이비 종교나 유사 종교 등에서 찾고 있다. 일본인들은 옴교에서, 남미인들은 인민사원교에서, 미국과 유럽인들은 데이빗교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오대양교, 승리제단, 통일교, 천부교와 같은 사이비 종교들에서 찾고 있다.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뉴 에이지(New Age) 운동, UFO현상, 신나찌운동, 히피운동, 헤비메탈 록뮤직과 같은 많은 형태의 종교현상들에서 자신들의 삶의 의미와 존재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또 다른 한편의 현대인들은 비단 종교현상들에서뿐만 아니라, 증산도, 대순진리회, 요가수행, 태껸, 철학, 문학, 또는 각종 예술을 통한 심신의 수련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기도 한다.
하비 콕스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종교적 세계관의 붕괴와 '종교가 없는 시대'를 예견하였다. 세속화의 진척에 따라서 현대사회와 문화는 종교의 지배와 폐쇄적인 신학이나 철학적 세계관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며, 폐쇄적인 세계관과 초자연적인 신화와 거룩한 상징들은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술과학이 인간을 억압하는 엄청난 부조리에 대해서 언급하지 못했다. 기술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처할 정신적 인격적 억압을 무시해버렸다.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실업, 걸인, 교통체증, 만성피로, 스트레스, 각종 산재(産災), 교통사고, 가치관의 혼란, 소외감과 불안감, 배금주의, 비인간화, 인간의 상품화와 부품화, 청소년 범죄, 가정파괴, 각종 폭행과 살인과 같은 사회문제를 간과해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현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내면 문제에 직면한 현대인들에게 자아상실을 극복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사는 신앙화의 길을 제시하지 못했다.
영국의 카톨릭 문화사학자인 크리스토퍼 도오슨(Christopher Dawson)은 현대인이 문명의 위기에서 극복하는 길은 현대문명의 상실된 영역인 영적인 체험, 종교적인 신념, 영적인 환상, 그리고 높은 차원의 윤리적인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회복시킬 때 가능할 수 있다고 피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은 과학기술주의가 인간을 궁극적으로 해방 또는 구원할 것이라는 거짓된 인본주의적 메시아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을 구원하게 될 것이라는 인본주의적 메시아주의는 "이 우주 어느 구석에도 하나님은 없다. 우주는 우연히 생성된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가장 잘 진화된 동물이다. 영의 세계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 또 구원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거짓이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이 발전시킨 과학기술 가운데 의학을 예로 들어보겠다. 인간의 의학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 인간의 의학은, 의료사고가 빈번하고 아직도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분야가 많기는 하지만, 각종 질병에 대하여 그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아내어 병을 고친다. 또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 이것이 인간의 의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 의학이 인간을 구원시켜 주는가? 아니다. 의학으로서는 사람이 죽는 것을 결코 막지 못한다. 이것이 의학의 한계이다. 의학이 인간의 정신적 영적인 문제를 고칠 수 있는가? 아니다. 사람의 병 가운데 75 퍼센트 이상이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 즉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있다. 마음의 병은 인간의 과학기술로 치료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온다고 해서 병 없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사는 곳일수록 병원이 더욱 많고 약국이 더욱 많다. 결코 과학기술이 인간을 궁극적으로 해방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음의 몇 가지 과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첫째, 현대사회와 같이 관점이 다원화되고, 가치가 다중화되고, 신앙이 다중화되는 사회에서는 올바른 '가치관의 선택'이 우리 믿는 신앙인들의 과제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도전을 받으면서 신세대의 특징인 다양한 가치관이 등장하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옳고 그릇된 가치를 분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신앙인들은 성서와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 바탕을 둔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겠고, 하나님 없는 대중문화에 끌러 가서는 안되겠다. 유교에서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고 해서 옳고 그릇된 것을 알고 행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했다. 값어치가 있고 없는 것, 중요하고 중요치 않은 것,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신앙과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데서 비롯된다. 성서를 많이 읽도록 하자.
둘째, 고도로 과학기술이 발달되고, 정보, 통신, 교통이 극대화되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그늘진 곳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잘 산다는 미국에도 걸인이 많다. 특히 백악관 주변에서 많은 걸인들을 볼 수 있다. 일본에도 걸인이 많다. 이른 아침 도시 곳곳에서 길거리에 누어 자는 걸인들을 볼 수 있다. GNP 만불 시대에 접어든 우리 나라에서도 이른 아침 기차역 대합실에서 수많은 걸인들을 볼 수 있다. 이 분들이 모두 집이 없거나 가족이 없어서 걸인의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역광장에서 나누어주는 사발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메우는 수많은 노인들이 오갈 곳이 없는 집 없는 분들이 아니다. 시설에 수용된 상당수의 원아들이 그들을 부양할 부모나 친척이 없어 집을 떠나 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오늘의 이 사회가 만들어 낸 상처들이다. 이런 인간상실의 사회에서는 올바른 '인간형성'이 우리 믿는 신앙인들의 과제이다. 기계문명 사회에서의 인간은 거대한 조직으로 된 기계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상품화되고, 부품화되기 때문에 쓸모 없을 때에는 가차없이 대체되고 만다. 샐러리맨들 가운데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책상과 사물이 온데간데없이 치워져 있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인간상실의 사회에서는 신앙과 문화생활을 통해서 전인적인 인간성 회복과 인격형성에 힘써야 한다.
셋째, 사회가 전문화되고, 분업화되고, 획일화되는 종파주의의 사회에서는 올바른 '공동생활'이 우리 신앙인들의 과제이다. 분업화와 자동화의 심화로 인간은 평생을 나사만 조이는 단순 노동을 위한 존재로 전락되고 말았다. 이런 때일수록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이웃과 사랑과 관심으로 연대하는 공동체 정신과 연대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타자 속에 특히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 속에 계신다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톨스토이도 그가 쓴 민화를 통해서 사랑이 베풀어지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행한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희생정신으로 원한을 풀고 더불어 함께 사는 생활 즉 해원상생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더치 플레이를 한다고 들었다. 더치 플레이가 결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불능력이 없는 동료에게 지불을 요구하거나 소외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넷째, 상황이 급변화되고, 인간해방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에서는 올바른 '역사이해'가 우리 믿는 신앙인들의 과제이다. 급변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인간 상호관계에서 균형 잡힌 삶의 과정이 요구된다. 균형 잡힌 삶에는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이 필수적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 또는 인간관 속에서 인간은 성숙하게 홀로 설 수 있고,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 갈 수 있으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 자신을 결단할 수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올바른 가치 선택으로 가는 인간화의 길, 자아상실을 극복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사는 신앙화의 길,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의 문화화의 길, 새 결단을 위한 역사화의 길은 우리 신앙인들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과제들이다. 그리고 이 과제를 풀어줄 올바른 해답은 성서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