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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22 22:23
성령은 언제 받는가?[사도행전 2장 38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581  
우리는 그 동안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그리고 '성령세례란 무엇이며 어떻게 받는가'를 네 번에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성령세례는 언제 왜 받는가'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인간의 구원은 믿음이나 침례 때문에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협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아들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공덕으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을 무죄로 선언해 주신다. 이 때 의사이신 성령께서 범죄와 타락으로 죽어가던 우리를 씻기시고 치유하시고 살리신다. 이를 거듭남, 중생, 또는 초기 성화라고 부른다. 우리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리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진찰하시고 치료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이를 점진성화라 부른다. 한 마디로 성령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구원을 시작하시고 우리 안에 계시면서 변호하시고 상담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보증하시면서 구원을 완성하신다.
이렇게 성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구원을 책임지고 일하시기 때문에 성령과 구원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성령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없고, 성령 받았다고 하면서 구원받지 못했다고 할 수 없다. 구원을 받았으면 성령을 받은 것이고, 성령을 받았으면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세례는 언제 이루어지는 것일까? 구원받고 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일까? 믿음을 갖자마자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침례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일까?
첫째, 성령세례는 침례의 때에 구원과 함께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다.
로마서 8장 29-30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씀처럼,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하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믿음과 침례 이전에 이미 결정된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씻고 거룩하게 하는 일은 성령께서 하신다.
그런데 성경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와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다'(갈 3:2,5)는 말씀들이 있다. 이 말씀들에 근거해서 믿음을 갖는 순간 의롭다 하심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고,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다'(행 8:16)는 말씀에 근거해서 구원받고 난 다음에 방언과 같은 은사를 체험하게 될 때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침례를 받기 전에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다'(행 10:47)는 사도행전의 말씀에 근거해서 성령세례와 구원은 일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와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다'는 말씀은 구원과 성령세례를 받는 수단이나 통로를 의미하는 것이지, 구원과 성령세례를 받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문제는 수단의 문제와 별도로 생각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방언과 같은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성령세례와 은사는 구별되어야 한다. 성령세례 없이도 방언 할 수 있고, 성령세례 받고도 방언하지 않을 수 있다. 구원받지 않고도 방언 할 수 있고, 구원받고도 방언하지 않을 수 있다. 성령세례와 방언이 반드시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원과 성령세례는 반드시 일치된다. 구원이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령세례 없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누가는 하나님의 성령세례를 성령의 은사와 크게 구별 없이 겉으로 드러난 사건만을 보도하고 있고, 성령세례의 신학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방언이나 신유와 같은 성령의 은사로 오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성령세례의 신학적인 의미는 바울 서신에서 발견된다. 바울 서신들은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 누가가 쓴 사도행전이 사건을 보도한 역사책이라면, 바울이 쓴 서신들은 사도행전에 실린 사건들을 해석한 신학적인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초대 교회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고, 바울 서신을 통해서 그 사건들이 갖는 신학적인 의미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성령을 통한 교회시대가 시작된 시점을 알려면 사도행전을 읽어야 하지만, 성령세례는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받는지를 알려면 바울 서신을 읽어야 한다.
바울 서신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구원과 성령세례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 선물은 만세 전에 이미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이루어지고 선물이 주어지는 정확한 시간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성령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에도 깊이 간여하신다. 그러나 이 간여의 때를 일컬어 구원과 성령이 주어진 때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믿음과 회개와 신앙고백과 침례로 나타난다. 믿음은 복음의 씨가 발아된 것이고, 회개와 신앙고백은 발아된 싹이 자란 것이고, 침례는 자란 싹이 결실을 낸 것이다. 복음은 씨앗이고, 믿음은 싹이고, 침례는 결실이다. 믿음은 사랑의 싹이고, 회개와 신앙고백은 사랑의 고백이고, 침례는 혼례식이다. 죄인에게 싹튼 믿음의 씨앗이 자라 중생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예수의 사랑을 받아드려 애정을 고백하고 신랑으로 맞이하겠다고 결단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그러나 성령은 혼례식을 약정하고 보증하기 위해서 신부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혼례식 이전의 성령의 활동과 혼례식 이후의 성령의 활동을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자는 죄인이 아니라, 거듭난 자이다.
옛날 어떤 나라에 왕이 한 분 계셨다. 왕에게 아주 훌륭한 젊은 왕자가 있었다. 어느 날 왕자는 공원을 산책하다가 병들어 고생하는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고 연민의 정을 느꼈고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왕의 주치의(主治醫)를 보내어 가난과 병으로 고생하는 그 아가씨를 돕도록 하였다. 의사는 병든 아가씨를 치료만 하지 않고 왕자와 아가씨 사이를 부지런히 오고 가며 징검다리를 놓았고 둘 사이에 사랑이 무르익어 혼인을 결정하게 되었다. 왕은 이 사실을 알고 흔쾌히 혼인을 허락하였고 의사로 하여금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왕은 외아들의 혼인식을 성대하게 치러 주었고 결혼 선물로 신부에게 그들을 도왔던 의사를 하사했다. 그 때부터 의사는 신부의 건강체크는 물론 모든 일을 도와 왕자와 행복하게 살도록 배려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꾸며낸 것이지만, 의사가 혼인 전에 왕자와 아가씨 사이를 오가며 다리를 놓은 일과 혼인 후 신부의 결혼 선물로써 신부를 돕는 일이 다르듯이, 성령께서 회심이전과 회심 중과 회심이후에 하시는 일과 성격이 다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다."는 에베소서 2장 8-10절 말씀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골로새서 2장 11-13절의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침례 가운데서,' '선한 일을 위하여'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과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는 갈라디아서 3장 2-5절의 말씀도 성령세례가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의 '믿음으로,' '침례 가운데서,' '성화'를 위해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이로 보건대, 구원의 바탕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오, 수단은 믿음이오, 시간은 침례요, 목적은 선행이다. 성령세례 또한 그 바탕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오, 수단이 믿음이오, 시간이 침례요, 목적이 성화이다.
성령세례는 침례의 때에 구원과 함께 주어진다. 요한복음 3장 5절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고, 에베소서 4장 5절은 세례는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특별히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은 "우리가 . .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한 몸이란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자격은 침례 받은 자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침례 받은 자를 일컬어 "한 성령으로 세례 받은 자 또 한 성령을 마신 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침례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심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디도서 3장 5절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둘째, 성령세례는 거룩한 삶과 성화의 삶을 목적으로 구원과 함께 주어진다.
앞에서도 설명한바와 같이 성경은 구원의 목적을 선한 일에 두고 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다."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하였다. 그밖에도 마태복음 5장 9절은 화평케 하는 자의 받을 복을 언급하였고, 로마서에서 바울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롬 14:19)을 말씀하셨고, 우리의 지체를 순종의 종(롬 6:18), 하나님께 종(롬 6:22),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고 하셨으며,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고 권면 하셨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중에 대표적인 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끌어다 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가시는 일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끌어다 주시는 일을 '의롭다 하심,' '칭의' 또는 '현재구원'이라고 부르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가시는 일을 '성화' 또는 '미래구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끌어다 주시는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가시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여 가게 하시는 목적은 우리 인간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일을 성령께서 도와서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며, 화평의 일을 하며, 덕을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고 갈라디아서 5장 22-26절에서 말씀하셨다.
기독교 구원의 특징은 임마누엘에 있다. 따라서 구원받는 자의 특징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이 시점을 믿음의 때로 보든지 또는 침례의 때로 보든지 간에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성령이 지금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