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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22 22:24
성령 충만이란 무엇인가?[에베소서 5장 18-21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755  
우리는 그 동안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그리고 '성령세례란 무엇이며 어떻게 받는가,' '성령세례는 언제 왜 받는가'를 다섯 번에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성령 충만'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성령 충만은 신앙 성숙하고 다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값없이 구원과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이 점에 있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별, 연령, 신분, 빈부, 열심에 관계없이 공평하다. 그러나 성령 충만이나 성결이나 신앙 성숙의 성취 정도는 사람마다 제 각기 다르다. 또 성령 충만은 성령세례하고도 다르고, 신앙 성숙하고도 다르다.
바울 서신을 보면,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엡 4:13) 이른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고전 3:1; 엡 4:14)와 같은 사람도 있고, "영에 속한 사람"(고전 2:15; 3:1)이 있는가하면, "육에 속한 사람"(고전 2:14; 3:3)이 있고, "주께 합당이"(골 1:10) 행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사람을 따라"(고전 3:3) 행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른 사람,' '영에 속한 사람,' 그리고 '주께 합당이 행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기보다는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 '육에 속한 사람,' 그리고 '사람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기보다는 신앙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을 말한다.
신약성경을 보면, 빌립보교회가 신앙적으로 성숙한 교회였고, 고린도교회가 미성숙한 교회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빌립보서 1장 3-5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칭찬한 반면,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서는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책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영에 속한 자'도 있고, '육신에 속한 자'도 있고, '젖을 먹는 사람'도 있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란 사람'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써 얼마나 성장했느냐가 곧바로 성령 충만의 정도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성령 충만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신앙 성숙은 오래 믿을수록 성경을 많이 배울수록 점진적으로 자라 갈 수 있지만, 성령 충만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성숙이 점진적인데 비해서 충만은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성숙은 성장과 일치하고, 충만은 건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미성숙할지라도 건강할 수 있고, 노인은 성숙할지라도 병약할 수 있듯이, 동일한 은혜로 값없이 구원과 성령으로 세례 받고 선민이 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신앙은 미성숙하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이 있고, 어른과 같이 신앙은 성숙하지만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신앙 연륜이 짧은 사람이 긴 사람보다, 성경 지식이 짧은 사람이 많은 사람보다, 많이 배운 사람보다 덜 배운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보다 어린 사람이, 높은 직급의 사람보다 낮은 직급의 사람이 더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아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를 판가름하는 저울이 아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은사를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를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아니다. 성령 충만은 큰 권능의 은사를 받았느냐 하찮은 은사를 받았느냐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아니다. 성령의 은사를 더 많이 받았거나 더 유용한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성령이 충만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달란트 비유 가운데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의 차이는 은사의 차이이지 충만의 차이는 아니다. 은사의 크기가 충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 충만의 정도는 성령과 얼마 큼의 친분을 갖고 있느냐, 성령과 얼마나 자주 교제하며, 순종하며, 기쁘시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꽃꽂이용 스펀지가 물을 충분히 머금고 있는가의 문제는 스펀지의 모양과 크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듯이, 성령 충만도 은사의 크기나 종류에 있지 아니하며, 성경 지식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아니하며,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결정되지 아니하고, 얼마나 자주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순종하는가에 달려 있다. 모닥불이 충분히 잘 타고 있는가의 문제는 불을 지피는 나무의 종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듯이, 성령 충만도 사람의 배움이나 소유나 신앙 연륜에 따라 결정되지 아니하고, 얼마큼 성령의 뜻을 따라 사는가에 달려 있다. 컴퓨터를 얼마나 잘 다루는가의 문제는 컴퓨터의 종류나 기종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듯이, 성령 충만도 사람의 능력이나 지능에 따라 결정되지 아니하고, 성령을 얼마큼 깊이 알고 사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이 성별, 연령, 신분, 빈부, 열심에 관계없이 어떤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예언하며'(눅 1:67), '성령에게 이끌리며'(눅 4:1),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며'(행 2:4),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행 4:31), '칭찬을 들으며'(행 6:3), '환상'(행 7:55)을 보는가 하면, 한편 다른 사람은 '성령을 소멸하며'(살전 5:19) '성령을 근심하게'(엡 4:30)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8-21절에서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둘째, 성령 충만은 성령세례와 다르다.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이 몇 가지 다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례 받다(          )' 라는 말은 계속적인 동작의 뜻이 없다. 그러나 동사 '충만 하라(        )'는 말은 계속적인 뜻이 담겨 있다.
성령세례는 명령이 아닌 반면, 충만은 명령이다. 에베소서 5장 18절의 말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성령에 의해서 가득 채워져라'는 뜻이다. 꽃꽂이용 스펀지가 물에 충분히 젖어 있어 꽃의 수명을 연장하듯이, 충전용 배터리가 전력이 충만하여 힘차게 기계를 돌리듯이 성령의 생수와 능력으로 충만 하라는 뜻이다.
성령세례는 경험이 한번으로 끝나지만, 성령 충만은 경험이 반복된다. 출생은 한번뿐이지만, 생일은 반복되는 것처럼, 성령은 구원과 함께 침례의 때에 값없이 은혜의 선물로 받지만, 성령 충만의 체험은 반복된다. 중생의 거듭남은 단 한 번의 경험이지만, 거듭남의 기쁨은 반복해서 경험될 수 있고, 성령세례는 한번으로 지속되지만, 성령 충만은 반복된다. 성령 충만은 마치 온돌방에 불을 넣듯이, 관상용 화분에 물을 주듯이,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성령 충만의 경험은 언제나 반복된다. 우리가 성령을 다시 받을 필요는 없지만 성령 충만은 반복해서 받아야 한다. 말라비틀어진 스펀지처럼 메마른 영혼이 되면 안 된다. 전력이 소모된 축전지처럼 능력 없는 영혼이 되면 안 된다. 시들어 가는 초목처럼 목마른 영혼이 되면 안 된다. 냉랭한 온돌방처럼 차가운 영혼이 되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불을 반복해서 지펴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생수가 반복해서 넘쳐흐르게 해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이 반복해서 힘껏 발휘되게 해야 한다.
셋째,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 번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의 말씀대로 성령을 소멸치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한다. 성령을 소멸하는 것은 방문을 열어 놓아 온기를 빼는 것과 같다. 물 꼭지를 열어 놓아 식수를 흘리는 것과 같다. 자동차의 미등을 켜놓아 배터리를 방전시키는 것과 같다. 우리 가슴에 냉기가 돌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가슴을 메마르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이 방전된 배터리처럼 힘없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령의 불을 지펴 식어진 가슴을 데워야 한다. 메마른 가슴에 성령의 생수를 채워 시원하게 해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전하여 힘차게 살아가야 한다.
두 번째, 에베소서 4장 3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약정하시고 성령으로 도장찍어 보증하신다. 이렇게 성령이 우리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에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역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도우시며(롬 8:26),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롬 8:27), 우리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좋은 결말을 지어 주신다(롬 8:28). 우리가 성령의 이와 같은 일들을 거절할 때, 우리의 구원은 점차 멀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서 성령은 근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착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모성을 가진 성령에게 효도하고, 우리는 착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령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세 번째 갈라디아서 5장 16절의 말씀처럼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 16-23절은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면, 성령을 거슬리는 육체의 욕심을 극복할 수 있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된다고 하였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육체의 욕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지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는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한다고 말씀하였다. 사람은 성령의 도움으로 구원의 길에 접어들게 되고,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게 된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라도 구원에 도달할 자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성령세례는 영구적이지만, 성령 충만은 거듭해서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마치 먼길을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