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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04
인간의 불행과 심판의 존재 이유[창 2장 16-17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65  
 
앞에서 '고난과 신앙'이란 주제로 '죄악의 존재 이유'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인간의 불행과 심판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앞에서 우리는 인간을 인성을 갖춘 책임적 존재라는 말로 정의를 내려보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 하시고 계약관계 속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하신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절대자의 주권을 제한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 체결된 모든 약속을 지키고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닌 책임적 존재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서 관계가 깨지게 되고, 불편한 관계 속에서 악이 파생하게 되고, 악이 자라서 죄를 짓게 된다'고 죄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였다.
여기서의 주제는 '인간의 불행과 심판의 존재 이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불행은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며, 인간을 책임적인 존재로 예우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인간의 약속이행여부를 묻게 된다는 점이다. 심판이 존재하고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타는 불 못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로봇으로 만들어졌다면 심판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사회성을 가진 인격체로 만들어졌고, 하나님께서 절대자의 주권을 제한하시면서 까지 인간을 인격자로 예우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인간의 삶의 결과를 묻고 심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보기에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본래 좋았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 가운데 나쁜 것이 없었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도 디모데전서 4장 4절에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 너무나 많다. 전쟁과 기근과 지진, 그리고 각종 사고와 범죄와 질병으로 만연되어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그 원인일까? 보기 좋았던 세상이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이 혼탁하고, 인간이 불행해 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인간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인간의 무책임에서 비롯된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맺어진 약속이다. 인간 편에서는 선악과를 먹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인간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책임은 인간을 축복하시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명령이나 훈계로 나타난 것이다. 십계명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 결정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다. "∼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이다.
인간은 누구나 계약자의 입장에서 살아간다. 루소는 인간 사회를 계약사회라고 말했고, 실제로 우리 인간은 법이든 관습이든 약속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먼 옛날 아담이 하나님과 선악과를 놓고 서약을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에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놓고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침례 때에 하나님과 교인들 앞에서 서약을 한다. 부부는 결혼식 때에 하나님과 친지들 앞에서 서약을 한다. 국민은 태어나면서부터 국가와 약속관계를 맺는다. 국가의 법은 국가와 국민 사이에 합의된 약속이다.
약속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십계명과 같은 법을 주신 것은 약속관계를 지속시키고, 자유를 제한하며,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약속을 지키고, 주어진 자유를 제한하며, 책임 있게 살아가는 길목마다에 선악과가 열려 있다. 이 선악과는 창세기 3장 6절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런" 열매라고 했다. 사람의 관심을 끌고, 본능을 자극하며, 사람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열매였다. 이 열매는 세 가지 유혹거리를 가지고 있다. 첫째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의 유혹, 둘째 눈으로 보는 것들의 유혹, 셋째 머리로 생각하는 것들의 유혹이다. "먹음직도 하고"라는 말씀은 먹거리 종류의 유혹거리를 말한다. 의식주와 같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보암직도하고"라는 말씀은 볼거리 종류를 통한 유혹거리를 말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인 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는 말씀은 두뇌를 통해서 나오는 유혹거리를 말한다. 부와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많이 나타난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기 위한 사악한 두뇌플레이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런 유혹에 아담과 이브가 무너졌다. 이스라엘 민족이 넘어졌다. 우리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판도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판도라는 제우스로부터 에피메테우스와 살도록 인간세계에 보내어진 여인이다. 판도라는 '모두의 선물'이란 뜻이다. 제우스는 정말 모두의 선물이 될 만큼 멋진 여인을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했다. 두 사람은 행복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그런데 판도라는 제우스한테 받은 상자가 하나 있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절대로 그 상자를 열어보아서는 안된다고 일러주었다. 상자를 열어 보는 순간에 모든 행복은 끝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판도라는 아무래도 그 상자 속이 궁금했다.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왜 열어 보아서는 안될까? 살짝만 열어본다면 별 탈 없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판도라는 무심결에 상자의 뚜껑을 열고 말았다. 아뿔싸, 판도라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마자, 상자 속에 있던 괴상한 형체들이 순식간에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놀란 판도라가 엉겁결에 뚜껑을 닫았을 때에는 하나만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나머지는 다 날아가 버리고 난 다음이었다. 상자 속에서 날아 나온 것들은 온갖 질병과 죄악들, 전쟁과 재해, 폭력과 살인 등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상자 속에 남은 것은 오직 한가지 희망뿐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때부터 불행에 몸을 맡기고 희망에 의지하여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선악과와 판도라의 상자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가? 인간이 책임감을 가지고 약속을 지키면 행복할 수 있고, 무책임하게 약속을 저버리면 불행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행복한 가정, 성숙한 사회, 살기 좋은 나라는 약속이 지켜지고 책임이 완수되는 곳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약속과 책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유혹들이 있다. "약속은 지킬 필요 없다. 약속을 저버리면 더 멋지고 더 재미있고 더 신나게 살 수 있다." 이런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런" 유혹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이런 유혹들을 믿음으로 이기는 책임감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란다.
둘째, 인간의 책임은 자동차에 달린 브레이크에 비교될 수 있다. 교차로에 접근하는 운전자가 경고 신호 또는 정지 신호를 확인하고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그대로 달린다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그에게 발생될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이 될 것이다. 좌회전하고 있는 차와 출동하거나 교차선 도로를 직진하는 차와 충돌하거나 또는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것이다. 그 운전자는 밟아야 할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1997년 2월 23일 영국 에딘버러에 있는 로스린연구소의 아이언 윌머트 박사가 6년생 암 양의 DNA 유전자를 조작하여 유전적으로 똑같은 새끼 양을 낳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이후로 '인간 복제'가 사람들의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인간복제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옴으로써 벌써부터 사람들은 인간 존엄성의 상실과 대 재난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복제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가져다 줄 많은 유익에도 불구하고 자연질서의 파괴는 결국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다. 복제된 인간의 신체 일부를 강제로 떼어내 다른 인간에게 넘겨주는 잔혹한 행위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히틀러나 후세인과 같은 독재자나 지존파와 같이 잔악한 무리의 대량 복제로 불운한 생을 마쳐야 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엄청난 비극의 몫은 인간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비극을 초래했던 것처럼 인간 복제는 또 다른 인간 바벨탑의 붕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인간 복제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와 같은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 그리고 원본과 복사본이 다르듯이 창조와 복사는 엄연히 다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생명을 창조해 내거나 죽음을 막을 수 없고 죽은 자를 또한 살려낼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가 인간에게 언제나 유익한 것도 아니다. 두 얼굴을 가진 야뉴스처럼 인간의 기계기술 과학문명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고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있으며,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이브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 도한" 선악과를 보고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던 것처럼, 인간들은 음지를 버리고 양지만을 택하거나 마이너스를 버리고 플러스만을 택하거나 부정을 버리고 긍정만을 택하지 못했다. 만일 인간이 자신에게 부과된 책임을 무시한 채 또 정지신호를 확인하고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 달려간다면, 그의 운명은 엄청난 비극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인간 복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경고신호 단계를 넘어서 이제 정지신호 단계에 도달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모든 만물보다 뛰어난 동물로 만드셨다. 동물하고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인간을 기계처럼 운전자에 의해서 작동되도록 만들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활동하도록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조작 당하는 기계처럼 살게 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주셨다. 그 대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책임의 중요성과 자유의 한계선을 그어 주셨고, 인간의 행동에 따라 상도 주고 벌도 주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심판은 반드시 있다.
심판이 있을 것으로 믿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심판이 있어야 정의롭기 때문이다. 만일에 심판이 없다고 한다면, 인간은 인간답게 살기를 거부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사회를 보더라도 재판관이 있고, 각종 시합 때마다 심판을 세워 공정한 시합이 되도록 애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둘째, 세상에서의 심판과 상벌제도는 반드시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경고의 표시이다. 인간세계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증거이다. 살아 생전에 우리 인간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상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한다. 어떤 건축가가 튼튼하고 보기 좋은 건물을 짓고 부와 명성을 얻었다면, 그 건축가는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다. 또 어떤 건축가가 부실 공사로 인해서 자신이 건축한 건물이 붕괴되었다면, 그는 이미 벌을 받은 것이다. 그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잃게 될 것이다. 교통법규를 지키고 조심운전을 하는 사람은 안전을 보상으로 받지만,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과속운전을 일삼는 사람은 남에게 해를 가할 뿐아니라, 자신도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된다.
인간은 발달된 언어나 첨단 기구를 이용할 만큼 고등한 동물이다. 인간은 기계과학문명과 도시문명을 이루었으며, 법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사회제도를 만들만큼 고등한 동물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있고, 감정을 자제하여 미술이나 음악, 연극이나 춤과 같은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본능적인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추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인간에게 책임을 물어 심판하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9장 27절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겠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