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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05
신자에게 고난이 지속되는 이유[롬 5장 1-11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270  

앞에서 '고난과 신앙'이란 주제로 '죄악의 존재 이유'와 '인간의 불행과 심판의 존재 이유'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신자에게 고난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신자에게 고난이 지속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이해된다.
첫째,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인간에게 고난이 지속되는 이유를 약속 불이행과 무책임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의 권리를 희생하면서 까지 인간과 계약관계를 맺는다. 이로써 인간은 로봇처럼 살지 아니하고 이성과 감성과 의지와 사회성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약속관계, 인간끼리의 약속관계, 자연과의 약속관계에서 살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본의든 타의든 자기가 맺은 약속들을 잘 지키지 않는다. 약속이 깨지면서 관계가 깨지게 되고 관계가 깨지면서 불편해지고 불안해진다. 불편해지고 불안해지면서 불신과 반목이 커진다. 성경은 이런 관계를 원수된 관계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 원수된 관계를 화목된 관계로 바꾸기 위해서 친히 외아들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었다. 이 하나님의 행위를 두고 우리는 아가폐의 사랑 또는 희생적인 사랑이라고 말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이 은총을 받아드리고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신자들은 원수된 관계를 화목된 관계로 바꾸는 하나님의 방법을 잘 알고 또 잘 믿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삶 속에서는 그대로 행하지 않는다. 본의든 타의든 이런 이유 때문에 신자들이 고난을 당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것은 그 분이 인간과의 원수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약속을 저버린 인간의 책임을 인간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그 책임을 지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평화가 깨지고 불안과 고통이 커지는 것은 남의 책임을 자신이 감당하기는커녕 자신의 책임까지도 남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도 책임지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고난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신자에게 고난이 지속되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이성과 감성과 의지에 따라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성과 감성과 의지와 사회성을 주시고 책임적 존재로 살아가게 하셨지만, 결국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약속대로 살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피조물의 한계점을 깨닫지 못한 채 불완전한 이성이나 양심에 호소하여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보려고 한다.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은 인간의 본능을 통제하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만 완전 통제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본능은 하나님이 자연에 내린 생명력이며 귀중한 선물이지만, 본능은 길들이기에 따라서 천사도 되고 마귀도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시고 책임성을 부여하신 목적이 마귀의 속성을 통제하고 천사의 속성을 개발하라는 것인데, 결론은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사회가 타락할수록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도 비례적으로 타락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로써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성령에 따라 살지 아니하면 구원받은 신자일지라도 결코 고난을 극복하지 못한다.
셋째, 인간의 고난은 육체의 타락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신자에게 고난이 지속되는 이유는 신자의 육체가 아직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원은 영혼구원과 육체구원 또는 현재구원과 미래구원으로 구분된다. 먼저 현재구원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현재구원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영혼구원, 둘째 마음의 평화, 셋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바로 현재구원의 특징들이다.
현재구원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주후 30년 오순절날 성령 강림과 교회 출범으로 시작되었고, 개인적으로 볼 때,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침례 받고 거듭남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또는 신자의 심령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이다. 그리고 신자가 받은 축복은 영혼구원과 성령의 임재와 심령의 평화이다.
현재구원의 성격에 관해서 살펴보겠다. 현재구원은 미래구원의 약속, 인침, 보증, 선취를 뜻한다. 신자와 함께 하시는 성령은 하나님께서 신자와 맺은 미래구원의 계약서이며, 도장이며, 보증금이며, 미래구원을 미리 받아 누리는 경험 그 자체이다. 따라서 현재구원은 완성된 구원이 아니라, 성령의 약속과 보증과 인침 속에서 완전한 구원을 향해서 다가가는 '현재 진행중인 구원' 또는 '맛봄의 구원' 또는 '앞당김의 구원'이다.
현재구원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성령의 활동으로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지속되는 것을 뜻하며, 개인적으로 볼 때, 신자가 점진적으로 성화 되는 것을 뜻한다.
이제 미래구원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미래구원은 개인구원론에서 볼 때 육체의 부활을 말하고, 우주구원론에서 볼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육체 부활과 우주 회복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진다. 예수께서 이 천년 전 처음 세상에 오셨을 때에 현재구원이 시작된 것처럼,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 미래구원이 시작된다. 미래구원은 인간의 구원뿐 아니라, 자연만물의 구원까지도 포함한다.
현재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영혼구원이며, 약속과 도장찍음과 보증과 맛봄의 구원이다. 미래에 우리가 받게 될 구원은 육체구원이며, 배고프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하며, 죽음이 없고 아픔이 없고 슬픔이 없는 완전한 구원이다. 신자들은 이 구원을 보장받고 있다. 하나님이 이 구원을 신자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서 도장찍고 선금주어 약속하고 보증한다. 그러나 아직 육체구원을 약속으로만 받고 실제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신자라도 육체로 인한 고난을 피할 길이 없다.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글에서 세상의 악은 인간의 육체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가 빈곤이나 사랑 또는 증오나 공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육체가 인간에게 근원적인 문제들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피조물의 문제는 육체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육체를 갖지 않았다면,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도 느끼지 못할 것이며 고통도 죽음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는 인간의 구원을 불교와 같이 수련이나 수도에다 초점을 맞추지 아니하고 육체의 회복인 부활에다 맞추고 있는 것이다.
고난은 결국 육체의 타락에서 비롯된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고난은 쉬지 않는다. 인간의 고통이 자연의 재해로 인한 것이든, 자기 죄로 인한 것이든, 신앙 때문에 당하는 것이든, 신령한 몸을 덧입기까지는 어느 누구라도 육체로 인한 고통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고난을 즐거워한다고 바울은 고백한다. 구원받은 신자들은 미래구원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고난은 인내와 연단 과정을 통해서 신자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바를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신자들은 신령한 부활의 몸을 덧입게 되고,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
신자들이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이유는 단지 장래의 소망 때문만은 아니다. 신자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다. 성령이야말로 신자들의 소망의 보증이 되시고 인침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로마서 5장 1절부터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한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다.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하게 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공동번역).
이제 정리를 해 보겠다. 우리는 '죄악의 존재 이유'에서 고난이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배웠다. 신자에게 고난이 지속되는 이유도,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고난 때문에 책임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고,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반에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무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내 주신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과 평화를 주신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축복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여전히 우리에게 지속되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영혼구원뿐이고, 아직 육체구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체구원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미래의 축복이다. 영혼구원은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육체구원의 약속과 인침과 보증과 맛봄에 해당된다. 이 미래 축복을 확증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고 성령으로 보증하시고 도장찍어 주신다. 성령으로 미래 축복을 미리 맛보게 하시며,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이룬 존재가 아니라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이미' 우리가 받은 것과 '아직' 우리가 소망하는 것 사이에는 죄도 있고, 고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도우심 때문에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긴다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그리스도께서 이기셨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