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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00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골 1장 18-23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062  

 
 앞에서 세 번에 걸쳐서 '뽑힌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기름부음 받은 자인 성도,'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란 제목으로 교회와 교인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란 제목으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는 특별히 뽑힌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이 공동체의 머리는 인간이 아니다.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다. 권사도 아니고, 집사도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가 아무 것도 아니란 뜻이 아니다. 조직체로써의 교회는 질서를 위해서 반드시 집사 권사 장로 목사와 같은 직책과 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단순히 인간들의 집단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집단이기 때문에 이 조직의 우두머리는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이 자리를 탐내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다. 적그리스도가 멀리 있지 않다. 그리스도를 자기 머리보다 높은 곳에 세우지 아니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요, 우상숭배자이다.
흔히들 교회를 방주에 비교한다. 방주에 탄 사람들은 특별히 뽑힌 사람들이다. 그러나 방주의 선장은 인간이 아니다. 또 교회를 구원열차에 비교한다. 구원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은 특별히 뽑힌 사람들이다. 그러나 구원열차의 기관사는 인간이 아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탄 방주를 움직인 분은 하나님이었다. 방주에는 기관실이나 키나 돛대가 없었다. 방주를 움직인 사람은 노아의 여덟 식구가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최고 책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값 주고 산 하나님의 것이다(행 20:28). 교회는 예수의 목숨만큼이나 특별한 것이다. 외아들의 목숨과 맞바꾸어 얻은 것인 만큼 매우 고귀한 것이다. 교회가 특별하면 할수록 교회는 인간들의 것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교회당의 주인은 인간일 수 있다. 교회당이 세워진 땅주인은 인간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위에 군림하면서 주인 행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다.
셋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몸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 내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의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신이 주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종'에 비교했다. '종'이란 말은 '얽매인 자' 즉 '노예'란 뜻이다. 바울 당시에 노예의 신분은 짐승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신분을 그리스도 앞에서 노예로 낮추었다. 이뿐 아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하나님의 종,' '순종의 종,' '의의 종'이라 하였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주인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초대교회가 실제로 왕이 아니었던 예수를 왕으로 인정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았고, 민중으로부터 왕으로 환영받았다. 예수는 로마 총독 빌라도로부터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는 심문을 받았으며, 예수는 "네 말이 옳도다." 또는 "내가 왕이다."(요 18:37) 라고 대답했다. 또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달고 고난을 받으셨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었던 적은 없다. 예수 당시 유대지방은 분봉왕 헤롯대왕의 아들 아켈라오가 죽은 주후 6년부터 41년까지 왕 없이 로마의 총독에 의해서 지배를 받았다. 비록 민중이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세운다해도 로마는 이를 허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정황 속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고백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예수는 결코 유대인들이 바라는 정치 군사적 메시아가 아니었고, 유대인들이 원하는 왕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왕으로, 또 대제사장으로 인정했다. 왜 그랬을까?
예수의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예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의 나라는 문자적인 유대인의 나라가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나라가 바로 교회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나 메시아가 아니라 교회의 머리요, 진리의 왕이요, 구세주이시다.
예수를 자신의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참 예수의 제자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다. 자기 자신을 왕으로 삼는 사람은 예수를 대항하는 적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예수께 굴복하고 예수를 자신의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참그리스도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와 성도의 소유권(ownership)이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머리가 되시고, 하나님이 성도들의 주인이 되시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 그 자체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요즘 직장 잃고 고개 숙인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최근 각 기업체에서 밀려나는 사람, 물러나는 사람, 쫓겨나는 사람이 추풍낙엽 같다고 한다. 최근 조기퇴직 바람으로 썰렁해진 직장인들 사이에 명퇴, 동퇴, 황퇴, 조퇴라는 말들이 유행한다고 한다. 명퇴는 명예퇴직, 동퇴는 겨울에 하는 명예퇴직, 황퇴는 황당한 명예퇴직, 조퇴는 조기퇴직을 줄인 약어들이다. 그래서 직장인들 사이에는 "명태가 좋으냐, 조기가 좋으냐?" 또 백수 건달은 '가택관리사'라는 자조적인 유행어까지 나돈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사회 전반에 퇴직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과민성 대장염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남의 일이 아니다'는 '생존자 증후군'(Survivor's Syndrome)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성도들이 해야할 일은 예수를 우리 가정교회의 머리로 인정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우리 가정교회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 공동체의 몸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이 어려운 현실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기독교적인 방법은 자신을 해결사로 믿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자신이 문제해결의 열쇠를 쥔 주인공이란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런 해결사병에는 빠떼루를 주어야 한다. 성도들의 해결사는 그리스도이시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쥐고 계신다. 그분을 진정으로 머리와 주인으로 인정하는 곳에 참된 교회가 있고, 그분을 진정으로 교회의 몸으로 인정하는 곳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의 머리와 주인과 몸으로 인정한다면, 모든 일의 결정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이다. 교회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가 아니다. 따라서 사람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삶의 중심에 놓인다면, 모든 일의 결정에 있어서 제일 먼저 '그리스도라면 이 일을 어떻게 결정하실 까'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 분의 뜻과 생각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삶의 중심에 놓인다면,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진다면, 그 분만이 존귀하게 되며, 그분만이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며, 그분만이 따름과 실천의 대상이 되실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절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고 했다.
인간 사회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모두가 다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이기적으로 살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일 욕심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가 내리실 결정으로 결정하고,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린다면, 우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우리 안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임의대로 살수 없고, 우리의 가정은 그리스도가 주인이시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주관하지 못하며, 오직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목사나 장로나 집사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뜻과 성서의 가르침에 의해서 일의 우선 순위가 결정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주종관계는 질그릇과 같아서 깨어지기 쉽다. 인간관계는 언제나 이해관계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문제가 있든지 아랫사람에게 문제가 있든지 인간의 주종관계란 언제나 이해관계 속에서 손익계산에 좌우된다. 그로 인해서 빚어지는 법정투쟁은 말할 것도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명예퇴직을 당하는 사람은 오히려 괜찮은 편에 속한다.
주종관계의 비극은 우리 나라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순자가 88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회고록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쏟은 우정은 전설에 가깝다고 적고 있다.
전두환은 노태우를 일찍부터 후계자로 생각했을 뿐아니라, 대통령 수업을 철저하게 시켰고, 결국 대통령까지 만들고 있다. 전두환은 노태우를 청년기에 만나 40년 우정을 쌓고 있다. 그들은 단순한 친구관계가 아니라 동지관계였다고 한다. 수십 년간 그들은 언제나 같은 세계, 같은 웅지, 같은 시간 속에 있었고, 종국에는 감옥에까지 함께 가고 만다. 그러나 그들의 주종관계는 권력 앞에서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는 동향이며 동기생인 김재규와 깊은 우의와 신뢰를 쌓았지만 결국 그들의 주종관계는 권력 앞에서 배신과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 되시고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는 결단코 우리를 배신하거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우리 배후에서 작용하시며 예수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지 그분을 인정하는 일뿐이다. 그분께 우리의 모든 권한을 내어 드리고 그분이 결정하고 일하실 수 있도록 그분을 신뢰하는 일뿐이다. 사람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