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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5:05
아브람함과 꿈과 믿음[창세기 12장 1-9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689  
마태복음 1장에 예수의 족보가 소개되고 있다. 2-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라고 했고, 6절을 보면,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되고 있다. 여기 이 예수의 족보에 실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베레스, 다윗, 솔로몬은 그 어느 누구도 맏아들이 아니다. 대부분 둘째거나 말째이다. 이스라엘은 남자 중심의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의 주제를 고난과 승리라고 말한다. 성경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장식하고 있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야곱에서 보듯이 형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열등감을 극복하고 승리한 이야기는 성경의 주제를 더욱 빛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맥락에서 아브라함은 말째 심리를 극복한 위대한 승리자였다. 창세기 11장 26절을 보면,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맨 먼저 기록되었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장자는 아니다. 이삭은 이스마엘의 동생이지만 항상 먼저 기록되고 있고(창 25:9; 대상 1:28), 아론의 동생인 모세도 마찬가지이다.
또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는 말은 데라가 70세에 세 아들을 한꺼번에 낳았다는 뜻이 아니다. 데라는 나이 130세에 아브라함을 낳았다. 아브라함과 동년배였던 조카 롯은 큰 형님 하란의 아들이었고, 둘째 형님 나홀의 아내는 큰 형님 하란의 딸이었으며, 아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둘째 형님 나홀의 증손녀였을 정도로 형제간에 나이 차가 심한 말째였다. 맏형 하란과 아브라함의 나이 차가 60세 정도 된다.
우리말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나홀의 형인 것처럼 번역되어 있지만(창 22:20,23; 24:15,27,48), 이것도 '형제'라는 말을 '동생'이라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형제라는 말이 동생이란 말로 잘못 번역된 것은 아브라함의 이름이 이들 삼 형제들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오기 때문에 번역자들이 아브라함을 맏형으로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맨 손으로 시작한 삶의 개척자였다. 아브라함은 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배경도 없었고, 자식도 없었다. 말 그대로 맨 손으로 시작한 개척자였다. 아버지 데라는 맏아들 하란이 죽자 나홀과 아브라함과 하란의 아들 롯과 이들의 가족들을 데리고 유프라테스 강 하류지역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강 상류지역인 하란으로 강변의 목초지를 따라 서서히 이주해 올라갔다. 이들은 유목민이었다. 아버지 데라는 많지 않은 재산의 대부분을 둘째 나홀에게 넘겨주고 떠돌이 유목민의 삶을 하란에서 마쳤다. 가산을 이어받은 나홀은 비옥한 유프라테스강 상류지역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 그대로 정착했다.
그러나 막내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재산도 많지 않은데다가 아버지까지 돌아가신 상태에서 나홀의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지역에서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 지중해 연안의 목초지를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이미 75세였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 전에 이미 사라와 결혼했지만 75세가 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고대 근동사회의 가부장제에서 아들을 두지 못했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요 저주받은 자의 상징일 수 있다. 이런 그가 나이 75세에 큰 민족을 이루어 국가를 세우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누가 들어도 실현될 것 같지 않은 그런 꿈을 꾸면서, 그에게 열린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단지 개척정신과 야훼신앙만으로 무장한 채 떠돌이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결단이요 믿음의 행동이요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드린 순종의 행위요,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였다.
우리 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는 제주도의 유배지로써 유배당한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어 먹다 죽어가곤 했던 한 많은 무인도였다고 한다. 이 무인도에 뛰어들어 원시림을 개척하고 최초로 정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의 성함이 김성오(金成五)이다. 이분이 1880년 후반에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마라도에 들어가는 것은 10대인 소녀 때였다.
제주도 대정(大靜)골에서 살았던 소녀는 아버지가 무덤 쓸 땅 한 평 남기지 못하고 죽자, 졸지에 소녀 가장이 된 김성오는 마라도에 가면 화전 일구어 먹을 땅도 있고 무덤 쓸 땅도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린 두 동생과 아버지의 뼈 항아리를 들고 원시림들이 무성한 이 무인도를 찾아갔다. 100년전 어린 소녀에게 이만한 용기와 모험과 개척정신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녀가 들고 간 것은 잡곡 씨앗 몇 줌, 농기구 몇 자루, 물질 뜨개박 그리고 불을 일으키기 위한 부시가 고작이었다. 산불을 나서 화전을 일구는 동안 어린 동생들이 캐온 메마(山苧)로 허기를 달랬고, 뱀에 쫓겨다니기도 수없이 했다고 한다.
그런지 십여 년만에 처음으로 외지 사람이 찾아들었는데, 이들은 난파당해 거의 죽어가던 오키나와(류큐:琉球) 출신 아버지와 아들 두 어부였다. 어린 소녀 김성오의 두 달에 걸친 보살핌으로 살아 돌아간 이 오키나와의 아들 어부가 소 두 마리를 싣고 은혜를 갚으러 이 섬에 찾아온 것은 다시 십 년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다. 그러고서 퍼뜨린 후손이 1960년대에 이르러 90여 명이었다고 한다.
땅 한 평 없이 떠돌았고 후손이 없었던 아브라함과 김성오는 살아간 장소와 시간과 남녀의 성별은 달랐어도 자신들의 거친 삶을 성공으로 이끈 위대한 개척자들이었다는 점에서는 다른 점이 없다.
남극에는 천지가 온통 백색이 되어 방향 감각이 없어지는 기상현상이 있다고 한다. 이를 화이트아웃(whiteout)이라고 한다. 햇빛이 구름 위와 구름 아래의 눈 덮인 평지나 산에서 동시에 난반사를 하면 물체들의 그늘이 사라진다고 한다. 빛만 있고 그늘이 없어지면 방향도 거리도 알 수 없고 또 크기도 모양도 가늠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집안에 있어야지 이동했다가는 사고를 당한다고 한다.
빛이 있어야 물체가 보이지만 빛만 있고 그늘이 없으면 물체가 보이지 않듯이, 인생도 그늘이 있어야 인물이 부각되고,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커지고, 실패가 있어야 성공이 돋보이고, 가난했어야 그 성공이 값진 법이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성공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아브라함에게는 그늘이 많았고, 시련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그늘 때문에 성공이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는 사람 가운데 올해 나이 26세인 마크 앤드리슨이란 젊은이가 있다. 마크 앤드리슨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라는 웹브라우저 하나로 백만장자가 된 '넷스케이프사'의 수석 부사장이다. 그는 주민이 1,50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농작물 씨앗 판매상이었고, 어머니는 공장 근로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책을 사서 읽고 독학으로 컴퓨터에 관한 기초지식을 쌓았고, 베이직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터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청운의 꿈을 품고 일리노이 주립대에 입학한 앤드리슨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던 1992년에 국립슈퍼컴퓨팅응용센터에서 시간당 5,500원 정도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때 앤드리슨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할 것이라는 열린 미래 세계를 보았고, 넷스케이프 개발에 착수하여 만 5년동안 그가 벌어들인 수입은 엄청난 액수에 이르고 있다.
아브라함은 꿈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꿈은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었다.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는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꿈이었다. 아브라함은 75세가 되도록 아들이 없었고, 무덤으로 쓸 땅 한 평이 없는 떠돌이였기 때문에 그의 꿈은 크다못해 허황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큰 이상과 꿈은 결코 자신의 허황된 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께서"(롬 4:17) 보여주신 비전이라 믿었다. 그가 75세에 고향과 친인척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코자 했던 것도 자신만의 결정이라고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렸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창 12:2-3) 라는 강한 확신을 심어 주셨고, 낮에는 바닷가의 은빛 모래를 통해서 밤에는 찬란한 별들을 통해서 큰 환상을 보여주셨고, 아브라함은 그 꿈의 씨앗을 믿음으로 가슴에 심고 25년간 열심히 키웠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꿈의 씨앗은 25년 동안 싹이 돋지 않았다. 마치 그것은 싹을 띄울 수 없는 씨앗 같았다. 25년 동안 아브라함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 기간 동안에 오히려 많은 난관에 부딪혀 시련을 면치 못했다. 기거하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고, 이집트에서는 부인을 빼앗길뻔 했고, 팔레스틴에서 유목에 성공한 후에는 물 부족으로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조카 롯과 헤어져야 했고, 분가한 롯이 두 차례나 생명의 위협과 재산의 피해를 입자 아브라함이 도움을 줘야 했고,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그 일로 인해서 가정에 분란이 끊이지 않아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하는 시련을 맛보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25년간이나 싹트지 않은 꿈의 씨앗으로 인한 좌절을 예배를 통해서 극복했다. 그는 25년간이나 변함없는 믿음의 눈으로 자신에게 열릴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팔레스틴을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 주리라는 확신을 갖고 제단을 쌓고 예배하였다. 그는 백세가 다 되도록 자식이 없었고, 부인이 묻힌 굴무덤말고는 소유한 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75세 때에 품었던 꿈을 버리지 않았고, 25년을 한결같이 높은 곳에 올라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이 자기와 자기 자손의 것이 된다는 비전을 키웠고, 낮에는 바닷가의 은빛 모래를 보면서, 밤에는 찬란한 별들을 보면서 자기의 자손이 많아져 셀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비죤을 키웠으며, 제단을 쌓고 예배함으로써 밀려드는 좌절과 의심을 극복했다. 이와 같이 끊임없는 예배는 아브라함에게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고, 결국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꿈과 믿음, 이 두 가지가 바로 아브라함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