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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28
새 술은 새 부대에[눅5:37-3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411  
프랑스의 유명한 문학가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는 "오늘 우리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다. 내일 우리의 문제는 승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일의 영예로운 승리를 위해서 오늘 열심히 싸워야 할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학생의 신분은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서 훈련을 받고 있는 군인과 같습니다. 군인은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훈련을 받습니다. 학생도 사회의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훈련을 받습니다.
군인이 전투에 참전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첫째, 군인에게는 점령해야 할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 목표를 반드시 점령하고 말겠다는 각오와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치밀한 계획과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군인은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학생도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싸움은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 실제로 싸운다든지, 학생이 학업을 마치고 생업전선에 나가 살아 남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학업 하는 과정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참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학생이 목표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군인이 열심히 군사훈련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훈련 중에 흘리는 한 방울의 땀은 전쟁터에서 흘리는 한 방울의 피와 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만큼 훈련과 노력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매우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나 새 학기를 맞이하면서 목표를 설정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굳센 각오와 다짐으로 자신을 절제하며 훈련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새 학기는 새로운 마음가짐과 다짐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포도주를 양가죽 부대에 담아 보관했던 같습니다. 숙성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담아 두게되면, 술이 익어 가면서 팽창하기 때문에 약한 부대를 터뜨리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내용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새 학기를 전혀 새로운 마음의 다짐도 없이 계획도 없이 목표도 없이 시작한다면 그것이 바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잘못된 행위인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학기를 말합니다. 새 부대는 과거의 나쁜 습성과 태도를 버린 새로운 출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 그리스도인을 예수의 군사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4절에서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9장 24-27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에서 뿐아니라, 모든 생활에 있어서 군인처럼 혹은 운동선수처럼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훈련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결코 후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삶을 술회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새 학기를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십 년 혹은 이십 년 후에 보기를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는 지부터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에 관계없이 수십 년 후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그려보아야 합니다. 그 모습이 기술자의 모습인지, 목회자의 모습인지, 정치가의 모습인지, 상인의 모습인지, 학자의 모습인지, 사회사업가의 모습인지, 음악가의 모습인지, 혹은 교육가의 모습인지, 머리 속에 청사진을 그려 두어야 합니다. 집을 한 채 짓더라도 설계도가 있어야 되고, 마스터 플랜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청사진 있어야 합니다.
간발의 차이로 형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동생으로 태어난 쌍둥이 야곱은 먼 훗날 자신이 형이 되어 있는 모습을 머리에 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형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을 때에 동생 야곱은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배가 몹시 고팠던 에서는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때 야곱은 팥죽 한 그릇에 형 동생을 맞바꾸자고 형에게 제안했습니다. 야곱이 형이 되고, 에서가 동생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 제안을 받은 에서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형이 밥먹여 주느냐, 동생이면 어떠냐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팔고 말았습니다.
훗날 야곱은 형이 받아야 할 축복까지도 아버지를 속여 받아내고 맙니다. 이렇게 한 야곱의 행동은 물론 야비하고 교활하고 못된 짓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의 행동을 옳았다고 칭찬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행동은 어느 사회에서도 용납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곱에게서 한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야곱은 형이 된다는 명분과 형이 누리는 권리를 갖고자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에서는 형이 된다는 명분에 대해서 진지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족장 시대에 맡아들은 한 가정의 신앙을 책임지는 제사권, 재산을 관리하는 재산권, 가족을 다스리는 가장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장자권을 값싼 죽 한 그릇에 팔아먹었다는 것은 곧 에서에게는 장자가 될 자격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야곱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확실한 믿음과 연결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8장 10-22절에 보면, 젊은 야곱이 고향을 떠나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갑니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딛기 위한 도보여행이었습니다. 날이 어두워 들판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는 돌을 주어 베개로 삼고 하늘을 지붕 삼아 누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개척해야 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에서의 추격이 걱정이 되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두 눈은 별보다 더 초롱초롱 빛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든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나 봅니다. 그제야 야곱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고 자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 고 고백했습니다. 이 때부터 야곱은 자신의 꿈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머슴살이로 살면서 그 꿈을 일구어 냅니다.
야곱의 열 한 번째의 아들 요셉도 꿈꾸기를 좋아했습니다. 막내나 다름없는 요셉은 형들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언제간은 형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말겠다는 꿈을 꿉니다. 창세기 37장 7-10절에 보면 요셉이 꾼 꿈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야곱의 아들들이 밭에 나가 곡식을 묶을 때에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입니다. 또 다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이 꿈으로 인해서 요셉은 형들로부터 더 큰 미움을 샀지만, 요셉의 꿈은 결국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극심한 가뭄에서 온 가족을 구했습니다.
이와 같이 간절한 열망은 큰 일을 해내고 맙니다. 그 때문에 '하고 싶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라는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염원하고 꿈을 꾸게 될 때에 우리는 소원을 이루게 됩니다.
강한 바램과 소원은 목표를 갖게 합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이 동기를 부여하여 행동을 유발합니다. 사람에게는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고 싶다', '해야 한다', '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질 때에 그리고 설정된 목표를 향하여 힘차게 약진할 때에 인간의 잠재력과 영력은 크게 발휘됩니다. 같은 시간에 출발선을 떠나도 목표와 꿈이 있고 없는 정도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집니다. 여러분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를 아시죠?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는 빨리 달릴 수는 있었지만, 목적의식이 없었고, 거북이는 비록 느리긴 했지만, 정복해야 할 목표가 있었습니다. 토끼는 자만했지만, 거북이는 겸손했습니다. 자기의 부족을 알았습니다. 토끼는 경기 중에 낮잠을 잤지만, 거북이는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덜 자고 덜 놀고 경주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 느린보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거북이의 목적의식 때문 이였습니다. 정복해야 할 목표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성공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사람의 능력에 있지 아니 하고, 성실과 노력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을 탓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한 달란트를 받은 악한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의 비유에서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칭찬을 받고 상급을 받은 것은 그들이 재능이 많고 능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상업의 목표가 있었고, 이윤을 남기겠다는 신념과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신 것으로 심판치 아니 하시고, 인간의 노력의 결과를 가지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에 아들 하나를 둔 거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매우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거지라는 것 말고는 나무랄 때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부부가 삼대 째 거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그들이 이 생활에서 탈출해 보려는 생각을 조금 치라도 가졌더라면 적어도 삼대 째 거지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생활에 안주해 버렸고, 오히려 이 생활을 편안하고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또 구두 수선을 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젊어서도 다른 직업을 가져 보려고 하지 않았고 이 일만을 계속해 왔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수선 기구 몇 가지와 나무 궤짝 하나만 있으면 그럭저럭 밥은 먹고사니까 별 불만 없이 그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6.25 후에 그 분의 친구 한 분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그 할아버지 옆에서 조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배운 기술도 없고 해서 구두수선을 하기보다는 옆에서 보따리 펴놓고 비누나 칫솔 같은 일용품을 파는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보따리 장사가 발전이 되어 구멍 가게를 차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구두수선 아저씨는 자기의 구두 궤짝이 고맙기도 하지만 이 궤짝이 없었더라면 자기도 보따리 장사를 해서 자기 친구처럼 부자가 되었을 텐데 잘못 살아 온 것 같다면서 후회를 했습니다.
이들 에피소드에서 우리들은 사람의 꿈과 삶의 목표와 신념과 의지와 노력의 중요성을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구두 수선하시는 분들이 없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보다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구두수선이나 거지 생활과 같은 작은 일에 만족하고 안주해 버린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앙의 위대함을 가진 우리는 훨씬 위대한 꿈을 가지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빛을 주면서 살아야 할 사람이 아닙니까?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고든 올포트는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보다 높은 이상과 정신적인 차원의 욕구를 가진 사람이며, 남의 입장에서 자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이며, 일관된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전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자신을 완성된 자로 보지 아니하고 언제나 완성을 향해서 전진하는 도상의 존재로 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3-14절에서 말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목표를 가진 사람은 어떠한 시련도 참아냅니다. 그리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에서를 피하여 고향을 떠난 꿈의 사람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머슴살이를 불평없이 해냈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14년간이나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도 염소 새끼 한 마리 야곱의 몫으로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야곱은 자기가 사랑했던 라헬을 부인으로 맞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마지막 6년간을 더 참아 내면서 자신의 몫을 위해서 투쟁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했으며,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얼마나 성실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정직과 성실과 열심으로 이겨냈습니다. 이런 야곱을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여서 야곱은 창세기 32장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 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이런 신앙고백이 멀지 않은 장래에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시련과 갈등을 이기지 못해서 성공과 승리를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목적을 성취하고자 할 때에 장애물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물이 흐를 때에 부딪히는 돌과 바위가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도 많은 장애물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정직과 성실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전진해 나갈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토끼처럼 팔짝팔짝 뛰다가 지쳐서 잠들지 말고, 거북이처럼 꾸준히 성실하게 자신의 위치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해 봅시다. 우리에게 좋은 목표가 있고, 올바른 계획이 있고, 성실한 노력이 있다면, 승리는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크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야곱의 성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로운 각오 새로운 다짐으로 새롭게 출발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 출발하는 믿음, 헌신적인 믿음으로 새 학기에도 반드시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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